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21대 국회에 들어서는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본회의 장면. 사진=박은숙 기자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측이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지 하루 만인 1월 7일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탈당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병욱 의원은 “결백을 밝힌 후 돌아오겠다”고 했다.
김 의원에 대한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긴급회의는 취소됐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윤리위원회, 당무감사위원회 등 절차를 밟아 의결하려고 했다”며 “이제 사법기관이 조사해봐야 알지 않겠나”라고 선을 그었다. 배준영 대변인 역시 “비대위 차원의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비대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오늘(7일) 논의하려고 했는데, 논의 대상과 상황 자체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도마에 오른 의원들이 제명·탈당을 통해 징계를 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21대 국회가 들어선 이후 7개월여 동안 논란에 휩싸여 탈당·제명된 의원은 6명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정당에선 양정숙 김홍걸 이상직 의원, 국민의힘에서는 박덕흠 전봉민 김병욱 의원이다.
양정숙 의원은 지난해 4·15 총선 직후 부동산 허위신고 의혹으로 더불어시민당에서 제명됐다. 김홍걸 의원은 2020년 9월 부동산투기와 재산 축소신고 의혹 등이 제기돼 민주당에서 제명됐다. 이상직 의원은 이스타항공 대량해고 사태와 임금체불 문제 등으로 민주당 윤리감찰단에 회부되자, 탈당을 선언했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도 2020년 9월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의힘을 나왔다. 전봉민 의원의 경우 2020년 12월 증여세 탈루의혹과 부친의 기자 금품 회유 주장 등에 휩싸여 탈당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소속 정당에서 나가면 당은 조사와 징계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렇게 당을 떠난 의원들은 의원 신분을 유지하며 여론의 비난을 잠시 피한 뒤, 나중에 슬그머니 복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태가 가능한 이유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리특위는 국회의원 윤리의식 제고와 자율적 위상 정립을 위해 설립된 특별위원회다. 윤리특위가 제소된 의원을 심사한 뒤 그 결과를 국회에 제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징계 의결한다. 징계는 공개사과부터 제명까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로 윤리특위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따라서 당 차원에서 징계를 내리지 않으면 국회 징계는 없다고 볼 수 있다.
21대 국회 들어 윤리특위에는 모두 8건의 징계안이 제출됐다. 민주당에서는 윤영찬 윤미향 황희 장경태 윤호중 김용민 의원 6명이 국민의힘의 징계 청구로 윤리특위에 회부됐고, 국민의힘에서는 박덕흠 유상범 의원 등 2명이 제소됐다. 대부분 여야 정쟁에 따른 것이다. 앞서 제명·탈당한 의원 중 윤리특위에 회부된 이는 박덕흠 의원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재 계류된 상태다. 여야 가리지 않고 서로 잘못을 따지며 상대 당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하지만, 막상 징계안 심사를 위한 회의는 열리지 않고 있다. 윤리특위는 2020년 9월 위원장 및 위원 선임을 위한 첫 회의만 열었을 뿐, 징계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윤리특위 위원장으로 선임된 김진표 의원은 첫 회의에서 “헌법 64조는 국회로 하여금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와 징계에 대한 준사법적 자율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스스로의 자정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평가는 아직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라며 “윤리특위가 국회의원의 윤리 수준을 높이고 국회의 자정 능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소임을 다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윤리특위 무용론은 21대 국회 문제만이 아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 따르면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4년간 47건의 징계안이 올라왔으나 실제 징계는 결국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1948년 제헌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따져보면 징계안은 총 360건이 발의됐지만, 그 가운데 277건이 폐기됐다. 4건 중 3건(76.94%)은 심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폐기한 것. 징계안 철회도 46회에 달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징계 여부가 판단된 경우는 29건이었다. 그중에서도 본회의 부결이 15건, 윤리위반 통고 8건이었다. 실제 가결된 징계안은 6건으로 1.67%에 불과했다.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는 무소속 김병욱 의원.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윤리특위가 유명무실하게 된 이유는 제도적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윤리특위는 의원 징계안에 대한 심사기간이 규정돼 있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심사하지 않는 게 가능하다. 20대 국회 후반기였던 2018년 7월 상설 위원회에서 비상설로 위상이 격하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 또한 위원조차 그 이후 제대로 선임되지 않아 유명무실해졌다. 또한 자문위원회가 국회의원의 자격심사, 징계안을 심사해 의견을 내도 강제력이 없고, 윤리특위가 징계를 미룰 수가 있었다.
‘제 식구 감싸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여야는 윤리특위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2020년 6월 발표한 ‘일하는 국회법’ 개정안 초안에는 윤리특위를 상설화해 윤리위로 만들고 이를 사법위와 합쳐 윤리사법위로 바꿔 의원 징계안 심사를 담당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2020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할 때 여야 합의로 전부 삭제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초 개정안에는 윤리사법위 방안이 ‘일하는 국회법’에 담겼다가 삭제됐다. 본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법안은 뺀 것 아니겠느냐”며 “의원들이 징계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민주당이 밝힌 윤리사법위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재의 비상설 윤리특위와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아니라,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상설 징계심사 윤리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윤리위원회는 징계안 심사기간을 제한하고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또한 별도의 의회윤리법을 제정하거나 이해충돌 회피를 위한 사전 정보공개 대상 확대, 국민 윤리심사청구제도 도입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