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여왕으로 등극하면서 그녀가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어찌 잊을까. 혹독한 인내의 세월이 한순간에 응축되어 보석처럼 빛났던 눈물, 그 깊고도 화려한 눈물을. 그렇게 우는 건 삶의 절정이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울고 나면 삶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어떻게 전환될까, 궁금했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끌리듯 화면 앞으로 모여들게 한 드라마! 사람들이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연아에게 박수를 보낸 건 연아가 사상 최고의 점수로 피겨여왕에 등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민의 딸로 태어나 포기하지 않고 혹독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 속에 내재된 힘을 일깨우며 개발하여, 모든 것이 풍족한 상황에서 일찌감치 세계 최고였던 아사다 마오를 넘고, 아사다 마오를 저만치 따돌리고 피겨의 여왕이 된 그 드라마 때문이었다.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지만, 삶은 계속된다. 드라마가 끝나고 그녀의 어머니가 회사를 설립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괜히 허전했다. 우리의 여왕이 상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계 최고의 상품이 된 그녀가 오서 코치와 결별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는 왠지 안타까웠다. 물론 무엇을 해봐도 모두 거름이 되는 꽃다운 나이 이십대 초반의 그녀를 비난할 수도 없고 그녀에게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더구나 그녀는 선구자 아닌가. 선구자가 무서운 건 롤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길 없는 곳에서 자기 힘으로 길을 내며 자기 힘이 아니면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는 선구자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수에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어야 선구자 아닌가.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이론은 생물학에만 적용되는 이론이 아닌가 보다. 연아의 생이 전쟁이 끝나고 폐허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경제강국을 이룩한 우리 현대사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연아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려한 거울이기도 하다.
이제 피겨의 여왕 자리에 오른 연아가 지금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잘 살아보세”와 “국민성공시대”라는 표어에 공감하며 한눈팔지 않고 경제적인 부와 성공을 향해 달려왔던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이 얼마 전에 내한했었다. 모리 교수를 만나기 전 그는 성공지향적인 한국인을 많이 닮았었다. 그랬던 그가 죽음을 앞둔 은사 모리 교수를 만나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해간 책이 바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었다. 그가 한국인을 말한다. “한국인은 성공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큰 거 같다.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당신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충돌하면 무엇을 하는가? 혹시 언제나 해야 하는 일만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예 잊은 것은 아닌지. ‘나’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신은 분명하게 알고 있는가.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