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타이어산업협회는 내수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국내산 타이어에 추가 관세 부과를 결정하면서 향후 수출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미국 상무부는 반덤핑 예비판정을 통해 한국타이어 38.07%, 넥센타이어 14.24%, 기타 업체 27.81%의 추가 관세율을 산정했다. 이는 오는 5월 미국 상무부의 최종 결정과 6월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을 거쳐 7월 최종 확정된다.
과거 제네시스 일부 모델은 신차용 타이어로 한국타이어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해외산 타이어만 쓰고 있다. 안 그래도 한국앤컴퍼니그룹은 관세율이 가장 높게 측정돼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성남시 한국앤컴퍼니그룹 본사.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제공
업계에서는 대부분 대한타이어산업협회가 언급한 ‘국산 고급 승용차’를 현대자동차 제네시스로 보고 있다. 과거 제네시스 일부 모델은 신차용타이어(OE)로 한국타이어를 사용했지만 2015년 해당 타이어에 결함이 발생해 약 4만 3000대 규모의 리콜을 실시한 바 있다. 이후 제네시스는 미쉐린 피렐리 등 외국산 타이어만 채택하고,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의 제네시스 OE 납품은 중단됐다. 또 그랜저 쏘나타 등 현대자동차의 주요 제품들도 트림에 따라 외국산 타이어를 장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안 그래도 한국앤컴퍼니그룹은 관세율이 가장 높게 측정돼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대한타이어산업협회의 움직임도 한국앤컴퍼니그룹이 주도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대한타이어산업협회가 제안했지만 지금까지 협회는 별다른 활동 없이 유명무실했던 곳이었다”며 “다른 업체들이 협회에 뭔가를 요청할 때는 대부분 반응이 없었는데 한국앤컴퍼니그룹이 관련 움직임을 보이니 협회도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한타이어산업협회 관계자는 “타이어업체들의 요구가 있었던 건 아니고 협회가 산업부에 독자적으로 요청한 것”이라며 “정부를 통해 현대자동차에 압박을 넣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대화의 장을 만들어달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주도한 곳이 어느 쪽이건 한국앤컴퍼니그룹으로서는 현대자동차와 관계 회복이 중요한 일이다. 최근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은 지주사 한국앤컴퍼니 대표에 취임하면서 경영권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최근 실적이 하락세에 있어 조 사장으로서는 시작부터 상황이 좋지 않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조 사장은 나름 오랫동안 경영 준비를 해왔고, 최근 인사에서 본인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실질적 경영을 맡고 있다”면서도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동창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그룹 부회장과 달리 조현범 사장은 현대자동차와 전략적인 관계를 맺을 정도의 사이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앤컴퍼니그룹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조현범 사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2019년 11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참석한 조현범 사장. 사진=연합뉴스
최근 한국앤컴퍼니그룹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조 사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여기에 실적까지 부진하면 여론이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2019년 초 조 사장 주도로 한국타이어그룹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회사인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호 사용 금지 소송을 제기하면서 2020년 12월 29일 한국앤컴퍼니그룹으로 다시 사명을 바꿨다.
앞의 재계 관계자는 “당초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할 때 내부 반대가 있었지만 조 사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안다”며 “한국테크놀로지와 소송에서 패해 하락한 회사 이미지도 문제지만 상표나 로고 등을 고치는 데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진행 중인 한국앤컴퍼니-한국아트라스BX 합병과 관련해서도 잡음이 나오고 있다. 양사의 합병비율은 1 대 3.39로 한국아트라스BX 1주당 한국앤컴퍼니 3.39주가 배정된다. 한국앤컴퍼니는 한국아트라스BX 자사주(58.43%)에는 신주를 배정하지 않기로 해 한국아트라스BX 소액주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자사주에 대한 신주는 한국아트라스BX 주주의 공동재산인데 이를 한국앤컴퍼니 측이 가져간다는 것이 소액주주들의 주장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2020년 12월 한국아트라스BX 소액주주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합병신고서의 정정을 요구했다. 한국앤컴퍼니 측은 세 차례에 걸쳐 정정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아직 금감원 심사는 통과하지 못했다. 한 한국아트라스BX 소액주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1250억 원에 해당하는 소액주주의 가치가 합병 후 500억 원으로 축소되는 것”이라며 “그 차액은 대부분 조현범 사장과 그 일가의 부로 이전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한국테크놀로지 ‘조현범 밀어주기’에 개미들 뿔난 이유).
합병이 완료되면 한국아트라스BX 주주들은 한국앤컴퍼니 주주가 된다. 조현범 사장은 형인 조현식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어 소액주주들을 외면할 수 없다. 2020년 7월 조현식 부회장과 누나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조희원 씨, 3명은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조양래 회장이 한국앤컴퍼니 지분 23.59%를 조현범 사장에게 넘긴 것이 자발적 의지인지 확인해야 한다는 취지.
성년후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경영권 싸움은 원점으로 돌아가 지분싸움으로 번진다.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조현식-조희경-조희원 남매와 국민연금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37.22%로 조현범 사장과 5.68%포인트(p) 차이다. 조현범 사장은 지난 4월 횡령 등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약 6억 원을 선고받은 바 있어 국민연금의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조희경 이사장 측 관계자는 “조 사장은 실적뿐 아니라 한국앤컴퍼니그룹이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가져가기에는 여러 면에서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조현범 사장이 제네시스 납품 재개에 성공하면 소액주주들에게 그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내산 타이어를 사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타이어업계는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처럼 보호무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전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외국산 타이어가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제네시스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당장은 국내산 타이어를 쓰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 관계자는 제네시스 납품 계약이나 현 그룹 경영 상황 등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만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