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공매도 재개 여부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재보궐 선거를 앞둔 여야의 셈법이 담겨 있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3000선을 돌파한 지난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금융위는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자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모든 종목의 공매도를 6개월 동안 금지했다. 이후 한 차례 연장, 공매도 금지 시한은 오는 3월 15일까지다. 금융위가 현재까지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어 오는 3월 16일부터 공매도는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리면 이를 싼 가격에 다시 사들여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기법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이 같은 공매도 기법을 활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시장조성자들에 의해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이유에서 공매도 영구 폐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이 나섰다. 여당 내에서 공매도 금지조치를 연장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금융위가 공매도에 대한) 제도적 손질을 했다고 하지만 현재의 공매도 제도는 불법행위에 구멍이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불공정한 제도, 부실한 금융당국의 대처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은 다름 아닌 개미투자자(개인투자자)들”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공매도 재개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신중한 태도와 결정을 재차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양향자 최고위원도 지난 11일 “공매도 금지 해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기고 이로 인한 손해는 개인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공매도 역기능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면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공매도 금지 연장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오는 4‧7 재보궐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선거를 앞두고 동학개미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본격화하기 전에 금융당국이 이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볼 필요도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더욱이 국회는 지난해 12월 9일 불법 공매도 처벌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 13일 시행령을 마련해 발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공매도의 허점을 개선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제 적용하려는데 공매도 재개를 미루자고 하면 그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겠나”라고 아쉬워했다.
국회는 지난해 불법 공매도 처벌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 법에는 △유상증자 기간 공매도 한 자의 증자참여 제한 △차입공매도 목적 대차거래정보 5년 보관 △불법공매도에 대한 과징금 부과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정무위 간사)은 “이 법이 공매도 제도의 기울어진 축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일부 민주당 의원의 공매도 금지 연장 요구가 일종의 출구전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정무위 한 관계자는 “여당은 지금의 주식시장 과열 상황 뒤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공매도 재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출구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금융위의 ‘공매도 재개’ 방침을 따라야 한다 할지라도 이를 위한 명분이 필요한데, 책임감을 가진 여당으로서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목소리와 달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공매도 문제와 관련해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공매도 재개 여부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민주당이 이를 선거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정치적 문제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역시 정치적 행보라는 데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치권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공매도 이슈를 선점했으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제 나서면 뒷북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 정치적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야당 입장에서는 공매도 문제를 언급해 개미들 표심에 호소하는 것보다 부동산 같은 정부의 실책을 공략하는 전략이 차라리 낫다고 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