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대표가 1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발 권력투쟁설 두 축은 이낙연 대표와 정세균 총리다. 닮은 듯 다른 호남 주자인 이들은 21대 총선 과정에서 국무총리와 서울 종로를 맞교대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 대표는 여의도로 복귀하면서 정 총리로부터 ‘정치 1번지’ 종로를 이어받았다. 서울 종로 사수는 물론, 헌정사상 유례없는 180석(민주당과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 콘크리트 지지도가 승패를 갈랐지만, 총선을 진두지휘한 이 대표 역할도 컸다. 역대급 슈퍼 여당 탄생에 일조한 이 대표는 이후 ‘선 당권·후 대권’으로 방향을 틀면서 이른바 ‘문재인 모델’을 따랐다.
그사이 정 총리는 종로 재선을 뒤로하고 내각 참여를 택했다. 정 총리는 자신이 추천한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진보진영 반대로 국무총리 지명을 받지 못하자, 선당후사의 각오로 문재인 정부 2대 국무총리직을 수락했다. 정 총리는 한때 “종로에서 열심히 뛰겠다”며 총리직을 고사했다. 하지만 청와대 참모진과 친문계 의원들의 전방위 설득에 끝내 문 대통령 지명을 받아들였다. 정 총리 한 관계자는 “대권 꽃길(종로)을 버리는 큰 결단이었다”고 전했다. 21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 땐 이낙연 캠프 측에서 정 총리 측의 기존 조직이 원활히 돌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양측 간 물밑 경쟁은 한동안 지속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는 4월 재보선 전후 퇴임한 뒤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선다. 애초 내부에선 ‘취임 1주년(1월 14일)’이나 2월 등을 퇴임 시기의 데드라인으로 정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확산하면서 4월 재보선 전후로 대선 시계추를 늦췄다. 코로나19 백신을 2월부터 순차적으로 접종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3월 중후반께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앞서 이낙연 대표는 대권·당권 분리 규정에 따라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3월 초 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 대표의 임기 연장 논의는 쏙 들어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3월, 국정 동반자인 이들이 대선 레이스에서 맞붙는 셈이다.
관전 포인트는 제3 후보 찾기에 나선 친문계 움직임이다. ‘기존 후보냐, 새로운 대안이냐’를 결정짓는 변수는 4월 재보선이다. 보수진영이 서울·부산 탈환에 성공한다면, 여권은 ‘이낙연 책임론’을 둘러싸고 극심한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친문계와 이 대표 간 전략적 동거도 사실상 끝난다. 이 경우 이 대표의 대선 공간도 급속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친문계의 현미경 검증에서 ‘이낙연 대세론’이 탈락한다는 얘기다.
친문계는 재보선 직후 ‘민주주의 4.0 연구원’을 매개로 적자 찾기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주의 4.0 연구원은 친문 의원들로 이뤄진 당내 모임이다. 정가에선 사실상 친문계의 ‘대선 전초기지’로 평가한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가 패권주의 논란으로 해체됐던 ‘부엉이 모임’의 재현이란 말도 뒤를 잇는다.
친문계 데릴사위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 주류 의원들이 이낙연 대세론을 인정한 것은 ‘높은 지지도’ 때문이었다. 재보선 패배로 정치적 내상을 입은 이 대표 지지도가 하락한다면, 이낙연 대세론을 옹립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여의도 정치권의 한 분석가는 “대체재를 찾는 것은 정치권력의 속성”이라며 “친문계가 마지막까지 제3, 제4의 후보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범주류인 정 총리를 비롯해 ‘신친문’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원조 친노’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이 꾸준히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020년 11월 20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서거 5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눈여겨볼 대목은 재보선 패배 등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이 대표가 취할 정치적 포지션이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이 대표가 기댈 곳은 호남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남지사 출신인 이 대표는 전남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문제는 호남 필패론에 묶이는 데다, 차기 대선 정국에서 불거질 ‘친문계와 호남’의 갈등이 확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잔혹사에 번번이 걸린 민주당은 어김없이 분당의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창당도 친문계의 원조인 친노(친노무현)계와 호남 갈등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집권 1년 차 당시 집권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에선 ‘난닝구(동교동 등 호남 세력) vs 빽바지(친노계·운동권 그룹)’ 논쟁이 일었다. 열린우리당 창당파였던 친노계와 운동권 그룹은 동교동계를 척결 대상으로 몰아붙였다. 주류에서 밀려난 동교동은 민주당에 잔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반노(반노무현)의 선봉장이 됐다. 2015년 4·29 재보선 패배 후 새정치민주연합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도 ‘2003년 난닝구 vs 빽바지’의 데자뷔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해 정동영 주승용 유성엽 전 의원 등은 신당을 창당, 반문(반문재인) 선봉장으로 탈바꿈했다. 친문계에 맞서 이 대표가 호남 기치로 맞설 경우 당내 분열이 최고조에 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당이 수세를 뒤집고 재보선에서 승리한다면, 이낙연 대세론 불씨는 다시 살아난다. ‘이 대표의 지지도 반등→이낙연 대세론 가속화→당내 경선 승리→본선 직행’ 등의 최상의 시나리오도 연출할 수 있다. 다만 이 대표가 문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할 땐 친문계와 충돌할 개연성은 있다. 지지도에 탄력을 받은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 대표가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꺼낸 이후 민주당 권리당원들은 게시판에서 ‘이낙연 퇴진’과 ‘이재명 출당’을 놓고 투표 전쟁을 벌였다. 이낙연 퇴진에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반면 이재명 출당에는 찬성 의견이 반대의견을 압도했다.
그러나 당 게시판 여론과는 달리, 신년 여론조사 이후 당내 의원들 사이에선 “확장성은 이 대표보다는 이 지사”라는 기류가 널리 퍼졌다. 이 지사는 2020년 12월 26∼30일 사이 조사해 새해 첫날 전후로 공개된 10개 기관의 여론조사 중 8곳(오차범위 내 포함·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앞섰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곳에서 선두였다. 이 대표는 단 한 곳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자 친문계도 분화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친문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이 지사를 차기 대선 주자로 지지할 것이라고 공개 선언한 것이다. 청와대 참모진 출신이자, 호남 인사인 민 의원 지지로 이 지사의 대권 행보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귀환이 임박한 정 총리 행보도 뜨거운 감자다. 중요한 포인트는 문 대통령의 후속 개각이 정 총리 측 내부 스케줄과 일치하느냐다. 순장조 찾기에 난항을 겪는 문 대통령이 정 총리 내부 스케줄에 맞춰 개각을 단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정세균 카드’에 문심이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어서다. 친문계가 정 총리를 콕 집어 ‘이재명 대항마’로 내세울 경우 여권 내부 권력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광화문포럼을 조기 가동한 SK(정세균)계는 이원욱 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여론전을 개시했다. 이 의원을 비롯한 SK계 의원들은 물밑에서 대선 조직력 가동에 나서며 ‘정세균 대망론’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정세균 캠프 합류를 고민하는 한 관계자는 “인물난에 허덕이는 친문계가 택할 수 있는 카드로 정 총리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라며 “인지도나 호남 구심력, 경제통, 협치 리더십 등 대선 주자에게 필요한 요소는 다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대선 지지도 ‘마의 5%’ 벽은 여전히 넘지 못했다. 다만 내부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유의 스킨십 덕에 계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인사들이 캠프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측근들 사이에선 “탈계파 캠프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정 총리의 또 다른 과제는 친문계의 지지를 받더라도 문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느냐다. 현재 권력의 눈치만 보다가 차별화에 실패하면, 대권 도전의 꿈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 김무성 전 의원은 2014년 당 대표에 오른 뒤 20% 이상의 지지도를 얻었다. 그러나 수직적 당·청 관계의 전환도, 새누리당 정풍 운동도 공수표에 그치면서 미래 권력을 스스로 걷어찼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