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새벽 5시쯤 쿠팡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사람이 죽었다. 쿠팡 사업장에선 작년 한 해 밝혀진 것만 5명이 사망했다. 이번엔 경기 화성시 신동에 위치한 동탄 물류센터였다. 사진=일요신문DB
“동생이 그 새벽 추운데 난방도 안 되는 데서 절 1시간 동안 기다렸어요. 그게 걸리네요.” 최 씨의 언니 A 씨는 미간을 찌푸렸다. 최 씨는 언니 A 씨와 함께 사건 전날인 10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11일 새벽 4시까지 쿠팡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언니 A 씨가 1시간 잔업을 하느라 새벽 5시가 돼서야 일을 마쳤다. 새벽 4시에 일을 마친 최 씨는 지하 1층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휴게 공간에서 언니를 기다렸다. 11일 새벽 4시 화성시 신동 부근의 기온은 영하 10.3℃였다. 회사에서 준 단 한 개의 핫팩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새벽 5시가 돼 언니 A 씨의 일이 끝났다. 곧장 최 씨와 A 씨는 함께 화장실에 들어갔다. 각자 다른 칸으로 들어가고 얼마 뒤 최 씨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볼일을 보고 나온 언니가 동생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한 시각이 새벽 5시 17분이었다. 경찰은 최 씨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최 씨는 언니를 기다리는 1시간뿐만 아니라 일하는 내내 추위와 사투를 벌였을 것이라는 게 직원들의 증언이다.
동탄 물류센터에서 1월 10일과 11일에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고 밝힌 B 씨는 “그날(1월 10일)은 정말 추웠으며 (물류센터 내엔) 난방이 아예 안 되기 때문에 마스크에서는 입김으로 인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앞머리는 다 젖는 지경이었다”며 “핫팩 하나로는 절대로 체온 유지가 불가능하다. 핫팩을 따로 들고 가도 보안 검색대에서 압수된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에 따르면, 최 씨의 죽음 이후 동탄 물류센터는 직원들에게 핫팩을 ‘마음껏’ 가져가라고 말하고 있다. 최 씨의 죽음 이전 직원들에게 주어진 핫팩은 오직 한 개였다. 개인 핫팩을 가져오면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었다. 동탄 물류센터 직원들은 10시간 이상의 근무 시간 동안 핫팩 하나에 의존해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
B 씨는 “따뜻한 물을 담고 들어갈 텀블러조차 금지하고 따뜻한 물을 투명한 텀블러에 넣고 들어가도 그날은 물이 금세 식어서 살얼음이 생길 정도의 추위였다”며 “원래 핫팩을 하나 주며 엄청 아까워했는데, 사건 발생하고 나선 핫팩을 마음껏 가져가라는 말을 하는데 기가 찼다”고 덧붙였다.
동탄 물류센터 직원 C 씨는 “특히 고인 최 씨가 일했던 출고 파트는 다음날 받을 수 있는 로켓배송 때문에 더더욱 관리자들의 재촉이 심한 공정이다. (관리자가) 한 시간에 한 번씩은 와서 재촉하고 직접 안 오면 안내 방송으로 번호를 부르며 재촉하기도 한다”며 “사실 난방을 안 트는 이유가 어쩔 수 없이 일을 빨리하라는 의도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직원 C 씨는 “쿠펀치(쿠팡의 근태 관리 시스템)를 찍을 때 원래 비상 연락망을 작성 안 해도 되는데 사건 발생하고 난 뒤 작성하지 않으면 출근이 안 되게 바뀌었다”며 “쿠팡의 행태를 보면서 다음 사망자는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고인 최 씨를 향한 직원들의 추모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물류센터 직원들은 최 씨의 사망 장소인 화장실에 추모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했다.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쿠팡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유가족은 14일 고인 최 씨의 발인을 진행했다. 고인 최 씨에겐 20대 중반의 아들과 20대 초반의 딸이 있었다. 13일 저녁 빈소에서 만난 고인의 아들 이 아무개 씨는 “20세에 취업해 타지역에서 일했다.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다. 지금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눈물을 삼켰다.
유가족에 따르면 쿠팡 본사는 빈소를 찾아 유가족에게 3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돌아갔다. 유가족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오라며 본사 직원을 되돌려 보냈다.
쿠팡피해자지원대책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기온이 굉장히 낮아졌을 때 심근경색 등 상당한 건강상의 장애가 올 가능성이 높은 건 당연하다”며 “신선식품을 다루지도 않는 물류센터에서 작업자의 체온유지를 하지 않았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39조 1항(보건조치)은 사업주는 작업자의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 가운데엔 ‘환기·채광·조명·보온·방습·청결 등의 적정기준을 유지하지 아니하여 발생하는 건강 장해’도 포함된다.
고인 최 씨의 언니 A 씨는 “동생이 평소에 아프거나 그런 건 없었다. 본사는 책임을 지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동탄 물류센터엔 왜 난방을 틀지 않느냐는 일요신문의 질문에 쿠팡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곤 기사가 나간 뒤 쿠팡이 서면을 통해 답변을 보내왔다. 쿠팡은 “냉동 창고와 같은 특수목적 창고가 아닌 일반적인 물류센터의 경우에는 상품의 입출고 및 안전한 보관을 위한 구조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소방 안전상의 이유로 물품 입출고 및 보관 장소에 냉난방 설비를 설치하지 않는다”며 “신 식당, 휴게실, 화장실 등과 같은 별도의 휴게 공간에는 냉난방 설비를 설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위 쿠팡은 “회사에서는 모든 직원들에게 핫팩 등을 제공하면서도 각 작업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에게는 방한복 등의 보호 장구를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