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판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를 공격하는 내용을 올리는 계정을 말한다. 인스타그램 등 미국 소셜미디어 회사들은 명예훼손 소송 등 한국 수사에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공격적인 내용을 올릴 수 있다. 인스타그램 메신저인 DM은 계정을 삭제하면 과거 보냈던 사진까지 사라지기 때문에 흔적을 지우기 용이하다. 황 씨와 그의 지인들 그리고 까판까지 복잡하게 얽힌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2020년 12월로 돌아가 본다.
경찰은 마약 및 절도 혐의의 황하나 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황하나 인스타그램
이 사건으로 인해 2019년 황 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및 40시간의 약물치료 프로그램 수강, 220만 560원의 추징을 선고받았다. 박 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황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화장품이나 의류 등을 판매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하나 씨와 남편 오 아무개 씨는 마약 투약을 같이 하는 친구가 있었다. 김 아무개 씨(여)와 김 씨 남자친구인 남 아무개 씨였다. 오 씨와 남 씨는 친구사이다. 이들 4명은 같이 마약을 하곤 했는데 MBC 뉴스에서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남 씨가 ‘수원에서 필로폰 투약했을 때 그때는 진짜 퀄리티가 좋았어’라고 하자 황 씨가 ‘퀄리티 정말 좋았어’라고 말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다 2020년 12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황 씨와 오 씨, 김 씨와 남 씨가 다른 편으로 갈라선 것이다. 김 씨가 황하나 씨를 사실상 지목하며 ‘어떤 거지인지 몰라도 옷 여벌 등등 훔쳐간 게 한두 개가 아닌데 CCTV 공개해서 얼굴 못들고 다니게 해도 되나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갈등이 터지기 시작했다. 김 씨는 11월 마약으로 자수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황 씨가 자신의 명품 의류를 훔쳤고 이를 판매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황 씨도 인스타그램에 ‘김 씨와 남 씨에게 4억짜리 차인 벤츠 마이바흐를 도난당했다’며 ‘이게 진짜 도둑이지. 차 갖다놔라’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황 씨가 도단당했다고 주장한 마이바흐는 렌터카로 밝혀지면서 황당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어 김 씨는 남 씨와 황 씨의 대화 녹취를 공개하기도 했다. 남 씨가 ‘김 씨가 CCTV 다 봤다’고 하자 황 씨가 ‘나도 인스타로 봤다. 네가 패딩이랑 이것저것 챙겨오라고 했다고 말해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후 황 씨는 절도 내용에 반박하지 못하고 엉뚱하게도 주사기에 액체가 들어간 사진을 올리며 김 씨와 남 씨가 마약을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12월 17일 갑작스럽게 황 씨는 자해하는 사진을 올렸다. 황 씨는 ‘일단 다 용서할 테니까 4억짜리 차 훔쳐 간 거 가져와라’라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같은 날 남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중태에 빠졌다. 남 씨는 ‘황 씨와 오 씨 꼭 처벌받게 해달라’는 글을 남겼다.
17일 황하나 씨가 자해 사진을 올리면서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사진=황하나 인스타그램
이때쯤 황 씨 남편 오 씨가 주변에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오 씨는 9월 경찰에 ‘황 씨가 자고 있을 때 몰래 마약을 투약시켰다’라며 속칭 몰래뽕을 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황 씨 마약 투약 혐의를 뒤집어 쓴 셈이다. 그런 오 씨가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또한 오 씨 지인인 이 씨가 공개한 카톡 메신저에서 오 씨는 너무 힘들다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야겠다’고 말했다.
결국 21일 황 씨도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때 조사를 받은 이유로 황 씨와 대립한 인스타그램 계정들의 고발이 큰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까판을 잘 아는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내용을 100% 믿을 수 없다. 과장과 거짓을 섞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황 씨와 다투기도 했던 인스타그램 이용자 박 아무개 씨는 ‘황하나가 조사를 받고 가족과 같이 차를 타고 귀가 중 정차한 차에서 뛰어내렸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황 씨 가족은 오 씨에게 ‘차에서 사라진 황 씨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며 황 씨가 담뱃갑에 쓴 오 씨에게 남기는 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유서는 남편인 오 씨에게 보내는 내용으로 ‘내 마음 잊지 말고 내 인생에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 현재 마음도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 뒤인 22일 황 씨 남편 오 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며 사망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남편이 사망했는데도 황 씨는 이틀이 지나서야 전화를 걸어 장례 일정을 물어봤다는 점이다. 또한 유서에는 오 씨가 당초 ‘몰래뽕은 없었다’면서 진술을 번복하겠다는 입장과 달리 ‘황하나를 마약에 끌어들여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황 씨가 오 씨에게 쓴 담뱃갑 유서. 사진=황하나 지인 인스타그램 캡처
1월 7일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터졌다. 앞서 중태에 빠진 남 씨가 마약조직의 일원이었던 게 밝혀지면서다. 경남경찰청이 국내 최대 규모 마약공급책인 ‘바티칸 킹덤’을 포함한 마약 조직을 붙잡았다. 바티칸 킹덤은 필리핀 유명 마약상인 텔레그램 아이디 ‘마약왕 전세계’로부터 마약류를 공급받아 국내에 유통하는 일을 했다.
‘마약왕 전세계’는 2016년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필리핀 현지에서 두 번의 탈옥에 성공했고 이후 마약을 유통해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퍼트리기도 했다. 바티칸 킹덤 조직 내에 있던 남 씨와 황 씨가 어떻게 연결됐는지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약 한 달 동안 급박하게 진행됐던 사건은 결국 지난 14일 서울 용산경찰서가 집행유예 기간에 마약 투여와 절도 혐의를 받아 구속된 인플루언서 황하나 씨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나왔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황 씨의 마약 투약, 절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면서 사건을 서울서부지검으로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황 씨 사건을 수사한 시간을 보면 검찰 송치까지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처리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