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왼쪽부터)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진=국회사진취재단·이종현·박은숙 기자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러 차례 후보의 자질로 ‘신선함’과 ‘전문성’을 꼽았다. 정치 신인들에 기회를 주겠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윤희숙 김웅 의원 등 당내 초선들에게 보궐선거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와 공천관리위원회 역시 경선룰을 확정하면서 예비경선 결과 상위 4인에 신인이 없을 경우 신인 중 최다득표자를 본경선에 최종 진출시키기로 했다.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능력을 갖춘 후보들을 올려 국민들에 직접 검증 받게 하겠다며 ‘미스트롯’ 방식의 후보 선출 포맷이 논의되기도 했다.
실제 국민의힘 내에서 조은희 서초구청장,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 나름 새로운 얼굴들이 앞장서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보수 야권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레이스엔 정치 신인이 끼어갈 틈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선언 이후 국민의힘 기류가 확연히 바뀌었다. 안철수 대표는 2020년 12월 20일 국회에서 출마회견을 열고 “야권 단일후보로 당당히 나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대표는 각종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올라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안철수 대표의 보수진영 단일화 제안에 공감하면서도, 제1야당이 후보 자리를 순순히 내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안철수 대표에 맞설 수 있는 중량급 정치인이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 등이 거론됐고, 실제 출마로 이어졌다. 오세훈 전 시장은 1월 7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 단일화를 위해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 안으로 들어오라. 합당을 결단해주면 더 바람직하다”며 “안 대표의 입당·합당이 이뤄지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조건부’ 출마선언을 했다.
나경원 전 의원 역시 1월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반드시 야권의 서울시장 선거 승리로 불의와 결별을 선언하고 공정과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며 “나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오만에 가장 앞장서서 맞서 싸운 소신의 정치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 오세훈 나경원 등 대어급 정치인들이 서울시장 선거에 본격적으로 등판해 여론의 관심과 조명이 쏠리면서, 기존 출마의사를 밝히거나 출마를 준비했던 후보군들은 저조한 지지율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BS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실시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대표가 26.9%로 1위, 오세훈 전 시장과 나경원 전 의원이 각각 12.1%과 7.4%로 뒤를 이으며 약 절반을 차지했다. 반면 금태섭 전 의원, 조은희 구청장, 이혜훈 전 의원, 윤희숙 의원, 김근식 교수, 박춘희 전 구청장, 이종구 김선동 전 의원 등은 0~3%대를 기록했다(입소스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군소 후보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안철수 대표 등을 향해 날 선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조은희 구청장은 1월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안철수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면 서울시민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시장이 다 된 듯이 대권 행보를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며 “나는 안 대표뿐만 아니라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등 대선주자급의 출마도 환영한다. 참신한 인물들과 대선후보급 인물들이 경쟁하는 모습은 야권에 인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흥행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는 1000만 서울시민의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춘희 전 구청장은 1월 12일 입장문을 통해 “안철수 대표는 지난 몇 차례 선거 패배의 원인 제공자임을 인정, 사과하고 즉각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1월 14일 당 전·현직 의원모임인 ‘더좋은세상으로(마포포럼)’에 참석해 나경원 전 의원에 대해서는 후보군 중 ‘가장 보수적’이라며 “끊임없는 구설수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근식 교수 역시 1월 14일 자신의 SNS에 “10년 전 과거 회귀가 서울시민에겐 영 불편하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고 서울의 미래를 논의해야 하는데, 10년 전 사퇴와 10년 전 양보와 10년 전 후보가 다시 등장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게인 2011이 아니라 비욘드 2011이 돼야 한다. 올드보이가 아니라 뉴페이스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퇴는 오 전 시장, 양보는 안 대표, 후보는 나 전 의원을 가리킨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당초 취지가 퇴색돼 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져서는 안 되는 선거에서 거물급 주자들이 등장해 선거판이 커지고 흥행에 성공하는 있는 것에 대한 호의적 견해들이 더 많아 보인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젊고 참신한 신인이 나와 주면 좋은데, 현실적으로 적당한 인물이 없어 아쉽다.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승리가 필요하다. 당 입장에서는 부득이하게 대어급 위주로 선거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대선주자급이 등판하며 야권에 도움이 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통합이나 원샷 경선은 불가능하다. 결국 국민의힘에서 뽑힌 후보와 안철수 대표가 단일화하는 2단계를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앞장서 안철수 대표에 대해 공격하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향후 대선을 이기기 위해서도 이번 보궐선거 과정이 야권통합의 계기가 돼야 한다.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다.”
현재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군소 주자들은 본경선에만 올라가면 반전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한 후보는 “지금은 10명이 넘는 후보가 있어 여론이 분산돼 있다”며 “예비경선을 통과해 본경선 4명 안에만 들어가면 관심과 조명이 집중된다. 그때 토론회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이면 시민들의 관심을 모아 충분히 역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국민의힘은 본경선 4인 중 한 자리는 정치 신인에게 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 요건에 맞는 후보가 출마할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치 신인은 모든 종류의 공직선거 출마 경험이 없는 자에 한한다”며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군에는 정치 신인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 신인이 등록할지 아직 알 수 없다. 인재 영입 논의는 별도로 없었다”며 “요건에 맞는 신인이 없으면 신인 진출 보장 규정은 적용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3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선언했던 당시 우상호(왼쪽) 박영선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이런 상황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현재 우상호 의원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양자대결 구도로 경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둘은 서울을 지역구로 4선 의원을 지낸 중진이다. 박영선 장관은 2011년과 2018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바 있다. 우상호 의원은 2018년 박영선 장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민주당 경선에서 맞붙었다.
이들 외에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제3후보 차출론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데 논의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여론조사 등 선거 분위기도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신인이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