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은 부임 당시 하위권을 전전하던 롯데를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사진=연합뉴스
메이저리그(MLB) 밀워키 감독 출신인 로이스터는 2008년 롯데 사령탑에 앉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전까지 롯데는 ‘8-8-8-8-5-7-7’이라는 ‘전화번호 별명’으로 놀림을 받곤 했다. 8개 구단 체제였던 시절에 4년 연속 꼴찌를 하고 그 후로도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롯데의 현실을 비유한 숫자였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첫해 롯데는 8년 만에 가을야구를 했다. 정규시즌 3위였다. 공격적인 야구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직구장에 다시 만원 관중이 들어찼고, 신문지 응원과 주황색 쓰레기봉지 응원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선수들은 로이스터 감독을 만나 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더그아웃에 있는 흰색 칠판에 ‘노 피어(No Fear)’라는 단어를 적어놓고 두려움 없는 플레이를 독려했다. 투수는 홈런을 맞아도 좋으니 자신 있게 몸쪽 승부를 하고, 타자는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마음껏 자신의 스윙을 하고, 주자는 도루에 실패해도 좋으니 이때다 싶으면 언제든 뛰라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롯데 선수들은 그렇게 했고, 결과가 좋아졌다. 선수가 감독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더그아웃에서 감독의 어깨를 주무르는 장면도 종종 눈에 띄었다. 감독과 선수가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를 맺은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포스트시즌 진출 후 한복을 입고 서툰 한국어로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한국 야구에 최적화된 외국인 감독으로 보였다.
그러나 약점이 점점 눈에 띄었다. 지나치게 정면승부를 강조하다보니 아시아 야구의 특징인 섬세함과 거리가 멀어졌다. 승리를 위해 단 한 점이 필요한 순간에도 무조건 강공으로 밀어 붙이다 기회를 놓치는 일이 생겼다. 무엇보다 포스트시즌에서 ‘닥공(닥치고 공격)’ 야구의 허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내일이 없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정공법만 추구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이 재임한 3년 내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한 번도 다음 시리즈로는 올라가지 못했다. 2008년에는 1승도 못 한 채 가을야구를 끝냈고, 2009년에는 1승 후 3연패, 2010년에는 2승 후 3연패로 탈락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를 ‘포스트시즌 진출’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팀으로 올려놓았지만, 그와 함께라면 우승까지 가기는 어렵겠다는 인상을 동시에 심어줬다. 결국 계약기간 3년이 끝난 뒤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보여준 메이저리그식 리더십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여러 팀에서 수많은 감독이 교체되는 동안, 로이스터 감독이 종종 후보군으로 거론된 이유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