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그룹 삼형제가 올해 독립경영을 본격화했다. KCC 정몽진 회장(왼쪽)과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사진=KCC 제공
KCC는 최근 자회사 모멘티브에 그룹 내 실리콘 사업부문을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KCC는 앞서 모멘티브 지주사인 MOM홀딩컴퍼니의 유상증자에 4000억 원 출자를 결정하고, 지분율을 기존 ‘50%+1주’에서 60%까지 끌어올렸다. MOM홀딩컴퍼니는 자금조달의 목적을 운영자금(119억 원)과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3881억 원)이라고 밝혔다. 모멘티브가 KCC가 출자한 자금을 활용해 KCC그룹 내 △KCC 실리콘 △영국 바실돈 △KCC 광저우 등으로 흩어진 실리콘 사업부문을 인수하게 되면서 실리콘 사업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이루게 된 셈이다.
이번 매각에 대해 KCC 측은 “그룹 내 실리콘 사업부문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시너지 극대화 및 당사의 MOM에 대한 지배력 강화 목적”이라고 밝혔다. 시장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기룡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KCC의 실리콘 지배구조 재편은 당초 모멘티브 인수 배경이었던 실리콘 중심의 성장 전략 지속, 간접비 절감 및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원가 경쟁력 확보, 실리콘 기술력 및 네크워크 공유를 활용한 판매망 확대 등 실리콘 부문의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긍정적인 지배구조 재편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KCC는 모멘티브 인수 이후 재무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이다. 그룹 규모에 비해 다소 버거울 수 있는 모멘티브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부채 비율이 높아진 것. KCC는 3조 6000억 원가량을 들여 모멘티브를 인수하면서 1조 6000억 원은 컨소시엄의 출자와 대여금, 나머지 2조 원은 인수금융을 통해 조달했다. KCC는 인수 과정에서의 출자금 6000억 원에 모멘티브가 기존에 보유한 차입금까지 합산되면서 2조 6000억 원가량의 순차입금이 증가했다.
2019년 5월 모멘티브 인수 당시 제기된 우려도 현실화됐다. 시장에서는 인수 이후 모멘티브 실적에 따라 KCC그룹 전체의 희비가 갈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KCC는 2020년 1월 모멘티브를 종속기업으로 편입한 직후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만나며 기대했던 인수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KCC는 모멘티브 편입 직후인 2020년 1분기 매출액 1조 2564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6350억 원)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영업이익은 206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201억 원)와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2020년 3분기에는 당기순손실 477억 원을 기록, 오히려 영업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연결기준 누적 매출액은 3조 7429억 원으로 전년 동기(2조 176억 원) 대비 1조 원가량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799억 원으로 전년 동기(1162억 원)보다 줄었다.
더구나 KCC는 모멘티브 인수와 동시에 유리, 홈씨씨, 상재 사업부문을 인적 분할해 KCC글라스를 설립했다. 장남 정몽진 회장과 차남 정몽익 회장이 각자 KCC와 KCC글라스를 나눠 갖기 위해서다. 그러나 KCC는 실적이 좋은 유리 사업부문이 떨어져 나가면서 이를 만회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모멘티브의 자체적인 상황도 좋지 않다. KCC의 공시를 살펴보면 MOM홀딩컴퍼니와 그 종속기업은 2020년 3분기 매출액 1조 8286억 원, 분기순손실 1579억 원을 기록했다. 2020년 1분기 6289억 원이던 매출액이 세 배가량 증가했으나, 순손실 또한 502억 원에서 세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KCC그룹은 삼형제 독립경영을 위해 교통정리를 하고 덩치를 키우는 중 코로나19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재무안정성 저하 가능성이 높아졌다. KCC 본사 건물 야경. 사진=박정훈 기자
이런 가운데 모멘티브 인수로 KCC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 내려앉았다. 한국신용평가를 비롯한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지난해 5월 KCC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강등했다. 모멘티브 인수합병이 수익성과 재무안정성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CC는 회사채 발행에서도 쓴맛을 봐야 했다. 비슷한 시기 KCC가 채무상환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3년 만기 회사채 1500억 원어치를 발행하기 위해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600억 원의 미매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KCC는 지난해 8월 모멘티브의 실란트 사업부문을 2428억 원에 독일 헨켈사에 매각키로 하는 등 재무 건전성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차입금 규모가 큰 탓에 빠른 시일 내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보유 중인 현금성 자산을 사용하거나 자산 유동화를 선택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KCC의 장기차입금은 총 2조 117억 원, 단기차입금은 1조 3625억 원이다. 상환 계획을 살펴보면 지난해 10월 1일부터 오는 9월 3일까지는 장기차입금 1107억 원, 사채 3000억 원을 상환할 계획이다. 특히 이 가운데 3000억 원의 사채 상환일은 당장 오는 2월 26일이다. 반면 지난해 3분기 기준 KCC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6282억 원이다. 이 외에도 KCC는 삼성물산 지분 8.97%와 한국조선해양 지분 6.6%를 보유 중이다.
KCC는 2월 사채 상환을 위해 장기 기업어음(CP) 발행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경험한 탓에 수요예측을 진행하지 않는 장기 CP를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KCC 측은 현금 상환 등의 방법 대신 장기 CP를 발행키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KCC 관계자는 재무 건전성 우려에 대해 “투자를 하면 부채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도 “KCC는 아직까지 부채비율이 150%로, 이전에 비해 높아졌지만 다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은 아니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모멘티브가 미국과 유럽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을 크게 받았다”며 “KCC는 실리콘 사업부문을 한데 모으는 등 실적 개선을 위한 효율성 강화 등을 추진하며 코로나19 이후를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