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10여 년간 함께했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오른쪽)와 계약을 해지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추신수는 10년여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스캇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에이전트로 제프 보리스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추신수는 자신에게 1억 3000만 달러의 대형 FA(자유계약)를 안긴 보라스와 왜 헤어지기로 한 걸까. 그 내용을 살펴본다.
추신수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활약했던 시절의 에이전트는 옥타곤 베이스볼 대표인 앨런 네로였다. 추신수는 자신의 첫 번째 FA를 앞두고 앨런 네로와 계약을 이어갈지 아니면 새로운 에이전트와 계약할지 오랜 고민 끝에 앨런 네로와 계약을 해지하고, 보라스코퍼레이션의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았다. 당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온 이유가 메이저리그에서 최고가 되기 위함이었고, 최고가 되기 위한 내 꿈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앨런 네로도 훌륭한 에이전트였지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는 선수 뒤에 어떤 에이전트가 있느냐에 따라 구단에서 선수를 보는 평가에 차이가 있다. 비즈니스 논리가 팽배한 이곳에서 ‘정’으로 가느냐, 아니면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고 이성적으로 움직이느냐를 놓고 숱한 고민 끝에 스캇 보라스를 선택했다.”
당시 앨런 네로는 추신수에게 클리블랜드 구단과 재계약을 제안했고, 그 내용은 5년간 2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스캇 보라스는 추신수와 미팅에서 자신이 추신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부분을 두고 2시간가량 프리젠테이션을 벌였다. 선수의 연봉을 산정하는 데 관중 수, 중계권료, 선수단 전체 연봉, 마이너리그 운영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해 자신이 받아낼 수 있는 최고액을 제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추신수는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고, 결국 앨런 네로와 눈물의 이별을 감행, 스캇 보라스와 손을 잡았다. 스캇 보라스는 2013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 3000만 달러의 FA 계약을 이끌어냈다.
2020시즌을 끝으로 텍사스와 계약을 마무리 짓고 다시 FA 시장에 나온 추신수.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 3~4년은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2020시즌 60경기를 치르고 커리어를 마무리 짓는 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추신수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뛰고 싶다”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신수는 향후 3~4년간 선수생활을 계속할 뜻을 가지고 있다. 사진=이영미 기자
문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FA 시장이었다. 코로나19로 2021시즌 개막이 예정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메이저리그 구단은 재정난을 호소하며 선수 영입에 느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년 전 FA 자격을 취득했을 때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대어급으로 분류됐지만 지금의 추신수는 39세 베테랑 선수로 지난 7년간 799경기 출전, 타율 0.260 출루율 0.363 장타율 0.429의 성적을 기록했다. 거액의 몸값이 오가는 FA ‘대어’들의 거취가 결정되거나 내셔널리그 지명타자 도입 여부가 정해진다면 추신수의 다음 행보가 가시권에 들어올 전망이다.
추신수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자신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에게 새로운 팀을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부탁했다. 보라스코퍼레이션에서도 추신수의 FA 계약을 위해 다방면으로 움직였고, 추신수에게 관심 있는 팀의 이름을 거론하며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추신수는 좀 더 구체적이고,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팀이 나오기를 원했다. 그런 과정에서 추신수는 최근 시카고 컵스에서 뛰었던 거포 외야수 카일 슈와버의 워싱턴 내셔널스 입단에 자극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카일 슈와버의 2020시즌 성적이 크게 부진했다(59경기에서 타율 0.188 11홈런 24타점). 나이가 어리다(28세)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장점이 없는 선수가 워싱턴 내셔널스와 1년 1000만 달러(약 109억 원)에 계약한 것이다. FA 시장에서 계약 규모가 큰 선수들 위주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스캇 보라스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처럼 나이가 있는 선수는 대형 에이전시보다 나의 다음 행선지를 위해 좀 더 관심을 갖고 뛰어줄 수 있는 에이전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에이전트인 제프 보리스와 계약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추신수의 선택이 앞선 박찬호, 김병현의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박찬호는 2007년 1월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다음 스캇 보라스가 제대로 계약을 추진하지 못하자 결별을 발표하고 제프 보리스와 손을 잡았다. 당시 제프 보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보라스와 쌍벽을 이루는 거물 에이전트로 홈런왕 배리 본즈와 강타자 앨버트 푸홀스 등 스타 선수 80여 명이 고객이었다. 김병현도 2008년 보라스를 떠나 제프 보리스와 새로운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추신수는 최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제프 보리스와 미팅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제프 보리스는 추신수에게 메이저리그의 연봉 협상기간 마감일(한국시간 16일 오전 3시까지)이 지나면 구단들이 본격적으로 선수 영입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자신이 어떤 계획을 갖고 구단들과 협상에 임할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고 한다.
새 에이전트인 제프 보리스와 또 다른 야구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추신수에게 언제쯤 새로운 소식이 들릴까. 추신수는 1월 안에 자신의 거취가 결정돼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