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물론, 삼성그룹 모두 비상이 걸렸다. 재판부의 이번 판단에 따라 이 부회장은 남은 구속 기간 1년 6개월가량을 채워야 한다. 그 전에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면뿐이다. 이 부분 역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최소 3개월 이상은 구치소 신세를 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오전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지만,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함께 사면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예상 밖 실형·법정구속 판단에 법원도 술렁
이재용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총 298억 2535만 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2017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결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이 무죄로 본 혐의 중 일부에 대해 다시 ‘유죄’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내려 보냈다.
앞선 2심 재판부의 판단(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보다는 높은 양형이 불가피했던 상황에서, 2심 재판부는 다소 이례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유무죄 판단이 이미 나온 상황에서 양형만 고려하면 됐지만,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가 미비한 점을 지적하며 ‘대응을 양형에 고려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재판부의 준법감시제도 설치 제안에 삼성은 2020년 1월 준법감시위원회를 급히 꾸렸다. 이재용 부회장 기소 및 공판에 참여한 박영수 특검팀에서 이에 대해 ‘재판부 기피신청’까지 해가며 항의했지만 재판부는 끄덕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선고 기일까지 시간이 흘렀다. 통상 한두 번이면 끝나는 파기환송심 공판이 10회 이상 열린 것도 준법감시위원회 때문이었다.
당연히 서울고등법원 다른 부장판사들마저도 ‘집행유예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 양형 등을 고려할 때 소극적이지만 뇌물 공여자 입장인 이재용 부회장이 실형을 받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재판 과정만 보면 집행유예를 주려는 느낌이 강해 다들 그렇게 예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관측을 깨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실형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18일 선고에서 “피고인의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함은 분명하다”면서도 “새로운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의 기준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요구한 준법감시위원회가 실질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새로운 행동에 대해 선제적 감시활동까지는 못하는 점 △준법감시방안이 구체적이지 않은 점 △협약 체결 외 회사 내 위법행위 감시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고려할 것이라고 당부했지만, 정작 감형 사유가 되지 못한 셈이다.
재판부는 삼성준법감시제도를 이 사건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 것인지에 대해 “삼성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며 “당시 실효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사건 범죄는 방지됐을 것이고, 피고인들도 이 법정에 서는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에 따른 횡령액을 86억 8000만여 원으로 보고 “이 부회장에 대해 실형 선고 및 법정구속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의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부 입장에서 ‘양형에 반영하겠다’며 제대로 된 방지 대책을 당부할 때만 해도 다들 집행유예를 예상했지만, 삼성 측이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부분을 재판장이 문제 삼았다. 그만큼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미흡하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삼성 측이 재판부가 준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보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8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지만,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함께 사면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과 ‘패키지’ 사면론 등장
선고 후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이 사건은 본질이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으로 기업이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당한 것”이라며 “그러한 본질을 우리가 고려해 볼 때, 재판부의 판단은 유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한 번의 대법원 판단을 받기 위해 재상고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징역 9년을 구형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재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인데 법조계에선 재상고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무의미한 법정 다툼이 될 여지가 크다. 이미 앞서 유무죄 판단을 내린 것을 대법원이 스스로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설명이다.
18일 법정구속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2018년 2월 5일 항소심 재판부의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된 지 정확히 1078일 만에 재수감되게 됐다.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검찰 수사 때부터 2심 집행유예 선고까지 이미 350여 일을 구치소에 있었기 때문에, 남은 형량은 1년 6개월가량이다. 이 부회장의 법정구속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한 대목이다.
같은 날 오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사면에 대해 “그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하는 건 비록 사면이 대통령의 권한이긴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재계를 상징하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는 사면 여론이 우호적일 수 있다는 추론이다.
이 부회장 사건이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 형이 그대로 확정되려면 최소 2~3개월의 시간은 필요하다. 국정농단 사건에 함께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을 함께 사면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사면 여론이 비교적 상쇄되고 동시에 형 확정 기간까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문 대통령 역시 사면 시점에 대해 “언젠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아마 더 깊은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에 대해서도 대전제는 국민에게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고 언급하기도 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문 대통령이 오늘 사면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이재용 부회장 사면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이제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 부회장 사면이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시점이 됐다. 추후 사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묶는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이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을 묶은 ‘국정농단 사건 관련인들의 사면’이 가능한 옵션 카드가 됐다”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