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선진형 지배구조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LG는 지속적으로 사업 영역과 경영관리 역량을 전문화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LG신설지주 소속 직원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특히 젊은 직원을 중심으로 “이제 우리는 LG 직원이 아닌 것이냐”고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기업 집단 총수들이 젊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나이로 일흔이 넘은 구본준 고문이 그룹을 이끄는 점, 구 고문과 함께 일했던 ‘올드보이’들이 신설지주로 넘어온다는 점 등도 직원들이 동요하는 이유로 꼽힌다.
서울 여의도 소재 LG트윈타워 건물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LG 브랜드 사업에 도움 되는데…”
LG 브랜드를 떼게 되면서 가장 난처해하는 곳은 LG하우시스다. 건축자재업체 LG하우시스는 2019년 11월 창호 브랜드 지인(Z:IN)을 LG지인(LG Z:IN)으로 변경했다. 보통 브랜드명에는 그룹 이름을 붙이진 않지만, LG는 이미지가 좋아 판매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
브랜드명에 LG를 붙였기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단 숫자만 봤을 땐 브랜드명 변경이 긍정적인 효과를 준 것으로 보인다. LG하우시스의 건축자재 부문 실적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음에도 양호했다.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970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5% 증가했다. 연간으로는 30%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LG하우시스가 B2C(소비자 상대 비즈니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브랜드명 변경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 분할로 인해 더는 LG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불과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브랜드명을 바꾸는 것이다. 다시 지인이라는 브랜드만 쓸지, 아니면 신설지주의 그룹명을 앞에 붙일지는 아직 논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는 LG 브랜드를 계속 쓰고 싶다는 의견이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하우시스가 홀로 분할한다면 모를까, 다른 지주회사가 있는데 LG 브랜드를 사용한다는 것은 언급만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종합물류기업 판토스도 내심 사명에 ‘LG’를 붙이기 위해 노력하던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토스는 원래는 구본준 고문의 6촌 동생인 구본호 씨 회사로, 일감 몰아주기 논란 속에 LG상사가 2015년 인수했다.
판토스 관계자는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려면 비용이 들더라도 LG 이름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내부 요청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LG 측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LG 계열사가 된 지 5년 만에 다시 소그룹으로 분리된다고 하니 직원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LG상사 또한 “이번 분할로 인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직원들이 LG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는 점”이라며 “사실 인력 이탈도 좀 있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 2018’ 행사장에서 당시 구본준 LG 부회장이 LG전자 전시장에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에다 이른바 ‘구본준 사람들’이 대거 LG신설지주로 넘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소문만은 아니다. 앞서 송치호 LG상사 고문, 박장수 LG 전무가 합류했고, 노인호 전 LG화학 전무 등이 입사 절차를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신설지주 직원들이 특히 더 우려하는 이유는 상사 및 물류, 건자재 등에 대해 잘 모르는 인사들이 대거 합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구본준 고문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LG필립스LCD 대표이사로, 2010년부터 6년간은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일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있었지만 아무래도 구 고문 또한 전자 부문의 전문가로 분류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나 전자에 ‘구본준 라인’이 아직 남아있다는 평가도 있다.
LG신설지주 소속 한 직원은 “LG전자에서만 일해 온 사장급 임원이 구 고문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곧 합류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그처럼 평생 다른 일만 해온 대표이사급 인사가 줄줄이 들어온다면, 기존 인력과 부딪히는 사태가 안 일어나려야 안 일어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직원은 “최근 재계 분위기는 세대교체와 젊은 총수 아니겠느냐”면서 “구본준 고문의 아들 형모 씨(1987년생, LG전자 과장)가 승계에 나설 즈음 분할될 것으로 봤는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진행돼 당황스러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새로운 사명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 우리끼리는 구본준이란 이름의 약자로 BJ그룹이라고 부를 정도인데, 이름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건 그만큼 희망이 없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공격적 M&A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반면 시기상으로는 분할하기에 적기라는 평가도 있다. 백신 개발 덕분에 코로나19 종료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등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LG상사나 판토스, LG하우시스 등은 경기 회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업종이다.
다만 구본준 고문의 관심사가 기존 사업군보다는 M&A(인수합병)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기존 사업군 모두 ‘드라마틱’하게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일단은 그룹 덩치를 불리는 데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LG상사 등은 모두 안정적인 기업으로, 그만큼 유동성을 동원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특히 LG에서 분할되는 신설지주회사는 부채비율 0.3%라는 경이적인 재무제표로 떨어져 나올 예정이다.
판토스를 상장시킴으로써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판토스는 2019년 매출이 2조 4808억 원, 영업이익이 709억 원이었는데 지난해는 코로나19 특수를 타고 대폭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LG신설지주는 재계 순위가 30위권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구본준 고문의 성향상 빠른 속도로 그룹을 키우고자 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반도체 등에 관심이 클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