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채널 OCN 개국 26년 만에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여지나 작가가 돌연 극본에서 하차한 이유에 대한 제작진의 설명이다. OCN 역사상 시청률 신기록까지 수립하면서 승승장구한 히트작을 집필해온 작가가 갑작스럽게 펜을 놓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케이블채널 OCN 개국 26년 만에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여지나 작가가 돌연 극본에서 하차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홈페이지
시청률 부진이나 이야기 방향에 대한 시청자의 비판으로 드라마 작가나 연출자가 중도 하차하는 경우는 종종 일어났다. 하지만 ‘경이로운 소문’처럼 해당 방송 채널을 대표하는 히트작의 작가가 결말의 내용을 집필하기 직전 관두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 제작진은 “후반부 전개에 대한 의견이 달라 여지나 작가가 빠지기로 했다”고 밝힐 뿐,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작가 하차에 따른 시청자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여지나 작가가 집필한 마지막 방송분인 12회(1월 10일)는 ‘경이로운 소문’ 방송 이후 최고 시청률인 10.6%(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OCN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이다. 하지만 여지나 작가가 하차하고 연출자인 유선동 PD가 긴급 투입돼 극본을 쓴 13회(1월 16일) 시청률은 9.4%로 하락했다. 14회(1월 17일)에서는 9.9%로 소폭 상승했지만, 이야기 전개가 다소 어색하고 엉성하다는 시청자의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10여 년 만에 참여한 작품, 갑작스러운 하차
배우 조병규, 유준상, 김세정, 염혜란이 주연한 ‘경이로운 소문’은 악귀를 잡는 사냥꾼을 칭하는 ‘카운터’들이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지상의 악귀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그린 히어로 물이다. 인간미 넘치는 히어로들의 투혼과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오컬트 장르의 영리한 접목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동명 웹툰이 원작이지만 각색 과정을 통해 드라마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해 호평을 받으면서 새해 안방극장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특히 여지나 작가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와 부패한 권력을 향한 응징 등 흥미로운 소재를 녹여내 드라마 성공을 이끈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시월애’ 각본을 쓰고 드라마 ‘9회말 2아웃’ ‘결혼 못하는 남자’ 등을 거친 베테랑으로 10여 년 만에 참여한 이번 작품으로 실력을 과시했지만 갑작스러운 하차로 인해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사실 ‘경이로운 소문’은 한창 상승세를 타던 2020년 12월 말 돌연 2회 분량의 휴방을 결정했고, 이때부터 방송가에서는 작가 교체 여부에 대한 소문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휴방 이후 방송을 재개하자 시청자들은 극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다고 지적했고, 캐릭터의 미묘한 변화도 감지됐다. 작가 교체는 결국 시청률 상승세도 끊기게 했다. 여지나 작가가 빠진 13회는 연출자인 유선동 PD가 직접 극본을 썼고, 14회부터 김새봄 작가가 투입돼 마지막 회까지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본 리딩 당시의 유선동 PD와 여지나 작가. 사진=OCN ‘경이로운 소문’ 홈페이지
방송가에서는 고공 행진하던 드라마를 둘러싼 작가와 제작진의 ‘이견’이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을 꺼내고 있다. 시청률 신기록을 수립한 성공작에 불필요한 ‘잡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작가를 교체한 데는 ‘특별한 내막’이 있을 것이란 추측도 제기된다. 이를 의식한 듯 ‘경이로운 소문’ 제작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굳게 입을 다문 가운데 방송가에서는 웹툰 원작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불거졌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경이로운 소문’은 현재 후속 시리즈까지 구상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원작인 웹툰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이야기와 캐릭터의 연속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입장이다. 만만치 않은 과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작가·감독 교체…이유도 각양각색
한창 방송 중인 드라마의 작가나 연출자가 교체되는 일은 ‘경이로운 소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의견 충돌에 따른 작가나 PD의 중도하차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MBC 주말드라마 ‘호텔킹’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MBC는 ‘호텔킹’의 메인 연출인 김대진 PD를 하차시키고 최병길 PD를 투입해 잡음을 일으켰다. 연출자의 돌연 하차가 석연치 않은 ‘외압’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 속에 MBC 드라마국 평PD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드라마국의 침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PD들이 목소리를 낼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했다. PD 교체가 ‘작가의 요구’로 알려지면서 진통은 거듭됐다.
비슷한 경우는 더 있다. 2010년 배우 고현정 주연의 드라마 ‘대물’은 방송 4회 만에 작가를 바꿨다. 의학드라마 ‘뉴 하트’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황은경 작가가 하차하고, ‘여인천하’ 등 사극을 주로 집필한 유동근 작가가 투입돼 작품을 맡았다. 당시 제작진은 연출자인 오종록 PD와 작가 사이에서 ‘작품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라고 설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 PD 역시 도중하차하면서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작가와 PD의 줄 하차의 배경이 정치적 소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따랐다. ‘대물’은 여성 대통령을 그린 이야기로 시작하자마자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한편으론 집권 여당과 대통령 등을 소재로 하는 만큼 정치색이 짙다는 시선에도 시달려왔다. 특히 검사 역을 맡은 권상우가 비리를 저지른 여당 의원들에게 “들판에 쥐새끼들이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풍요를 바라겠느냐”고 일갈하는 대사 등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면서 제작진이 줄줄이 교체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남았다.
영화 현장도 예외일 수 없다. 오랜 시간 작품을 위해 의견을 모으고 첫 삽을 떴다고 해도, 의견 차이와 갈등으로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일어난다. 다만 최근에는 영화의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기획단계인 프리 프로덕션을 철저하게 거치는 만큼 과거보다 감독 교체 등 리스크는 흔하지 않다.
그나마 최근 사례는 2013년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당초 전재홍 감독이 연출하기로 했지만, 제작사와 의견 차이를 좁하지 못해 도중 장철수 감독으로 교체돼 완성됐다. 잡음에 휘말렸지만 영화는 개봉 이후 6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