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피고인은 재판에서 만취한 샐러리맨을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고 밝혔다. 사진=간사이TV 방송
2020년 9월 오사카부 경찰은 오사카시립 중학교 교사 호조 다카히로와 회사원 야가미 다이스케(44)를 준강제성교 및 음란행위 혐의로 체포했다. 두 사람은 남성 10명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력 등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호조와 야가미는 인터넷 동성애자 교류 사이트를 통해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먼저 교사인 호조가 SNS에 “학교 수업에 사용할 정장차림의 남성 사진이 필요하다”며 촬영에 협조해줄 사람을 찾는 모집공고 글을 올렸다. 사례금은 1만 엔(약 10만 원). 그리고 응모해오는 남성이 있으면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문을 열거나 인사하는 모습, 걷는 장면 등을 촬영해 상대에게 신용을 심어준다. 이후 “식사 풍경 사진도 필요하다”며 술을 마시게 하는 것. 술잔에는 몰래 수면제를 넣어둔 상태다. 경찰은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틈을 타 두 사람이 음란행위를 벌여왔다”고 밝혔다.
입건된 것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범행이다. 하지만 수사 관계자들은 “훨씬 많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재판에서 검찰이 “언제부터 그런 행위를 했냐”고 묻자, 호조 피고인은 “26세 때부터”라고 털어놨다. 그는 “만취한 샐러리맨을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며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욕구를 채웠다”고 답했다. 또 “들키면 체포될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슬프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호조 피고인은 징계면직 처리를 당해 교사직을 잃었다. 호조와 함께 일했던 동료 교사는 “그가 평범한 교사로 보였기에 더욱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출신지도 오사카시라 현지 일도 잘 알고, 무엇보다 교육에 열심인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동성애자라는 것은 뉴스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아 ‘몸이 아픈 건가’ 걱정했더니 이런 사건이 일어나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호조는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건넨 후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틈을 타 음란행위를 벌였다.
16년에 걸쳐 성범죄를 저질러온 호조 피고인. 경찰은 호조의 집에서 수천 장의 사진과 동영상 데이터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를 3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조는 셀카봉을 이용해 외설행위를 직접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압수품 중에는 피해자의 면허증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것을 비추면서 호조가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도 있었다”고 한다.
왜 이만한 범행이 그동안 발각되지 않았을까. 간사이TV 뉴스 프로그램 ‘보도 러너’는 “10여 년 전 호조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하는 남성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피해자는 “퇴근길에 술을 마시던 중 필름이 끊겼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그만 잠들어 버렸던 것. 깨어나 보니 모르는 남자의 방에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도움을 받은 줄로만 알고, 답례를 할 요량으로 연락처를 물었다. 호조는 웃기만 했다. 뭔가 꺼림칙해 돌아가려고 하자 호조가 “어젯밤 일이 기억 안 나냐”며 말을 꺼냈다. 이후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가해 사실을 알려왔다.
피해자는 “자는 동안 ‘외설 행위’를 당했다는 걸 안 순간, 으스스 한기가 들었다”며 “술이 덜 깬 상태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망치듯이 집을 뛰쳐나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피해자는 “그 사람과 다시 얽히는 것이 두려웠다. 치욕감이랄까. 창피한 마음이 들어 차마 경찰서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후회하고 있다”고도 했다. 남성은 “뉴스에서 보니 피해자들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내가 그때 신고를 했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2019년 일본 경찰이 발표한 ‘남성 피해 성범죄’ 건수는 성폭행 같은 ‘강제성교등죄’가 50건, 강제로 몸을 만지는 ‘강제추행죄’가 139건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피해자일 경우 신고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2001년 설립된 란카(RANKA)는 성폭력 남성 피해자를 지원하는 모임이다. 운영자는 구로노 다케토 씨로, 그 역시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아픔이 있다. 구로노 씨는 “성 피해의 심각성은 남성도 여성도 동일하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성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 ‘당해도 상처받지 않는다’ ‘상처받아도 지원은 필요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 있다. 구로노 씨는 “이로 인해 남성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상처를 받고 사회로부터도 상처를 받아 2중의 피해를 떠안게 된다”고 전했다.
“성폭력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일생의 기억’이다.” 구로노 씨는 “피해당했을 때의 기억이 항상 영상처럼 재현됐다”고 한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그것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고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그는 “회복하는 데 20년 정도가 걸렸다”고 고백했다.
호조 피고인에게 피해를 당한 남성의 인터뷰. 사진=간사이TV 방송
일본은 2017년 7월 형법 개정에 따라 ‘강간죄’가 ‘강제성교등죄’로 바뀌면서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도 죄를 물을 수 있게 했다. 이전에는 남성이 피해를 당한 경우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가 적용됐었다. 이에 대해 구로노 씨는 “사법·행정 관련 대응은 변했다. 이제 사회 인식이 변화할 차례다. 혼자 떠안지 말고 피해 사실을 털어 놓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범죄심리학자인 하라다 다카유키 쓰쿠바대 교수는 “‘남자면서 왜 그때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등 고정적인 성역할 의식에 근거해 남성 피해자를 힐난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사회적 풍조 속에서는 피해자가 은연중에 자책하거나 부끄러워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어떤 범죄라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피해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있다든지, 피해자가 피해를 신고하는 것을 주저하면 그에 편승한 범죄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하라다 교수는 “피해자 보호시책의 충실화, 보도상의 배려는 물론, 우리 자신도 스스로의 인식에 문제는 없는지 자체 점검하고, 편견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잡아 나갈 필요가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방범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인 교시 미카 씨는 트위터에 “아이도 여아뿐만 아니라 남아도 성 피해를 당하는 일이 의외로 적지 않다”고 적었다. “가령 남자화장실에 아이가 혼자 들어가 있는 동안 피해를 당한 일도 있었다”며 “아이가 혼자 남자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외부에서 ‘엄마 여기 밖에 있을게’라고 말을 건네 보호자가 있음을 알리는 게 좋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