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의 국정운영이 불공정했다는 비판이 많다. ‘고·소·영’으로 대변되는 편중인사, 영포회 사건으로 집약되는 사찰비리, 부자정책으로 귀결되는 감세, 예산을 낭비하고 환경을 훼손하는 4대강 사업 등의 평가가 비판의 근거다. 이런 상태에서 6·2 지방선거가 여당의 패배로 끝나 여론이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이 확인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공정한 사회를 이념으로 내걸고 새로운 기조의 국정운영 의지를 밝혔다.
공정한 사회는 국민 모두가 추구해야 할 절대적 가치다. 과거 50년간 우리는 고도성장에 매진하여 경제대국을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계층 간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분열의 고통을 잉태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먼저 불공정했던 과거의 국정운영을 스스로 성찰하고 시정하여 새로운 국정운영 기조가 정치수단이라는 의문을 불식시켜야 한다. 다음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밝히고 이를 구현하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방법을 제시해 차질 없이 실천에 옮겨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공정한 경제가 공정한 사회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계속 쓰러지고 서민경제가 무너지면 어떤 일을 해도 공정한 사회 실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경제가 공정한 경제인가? 첫째, 모든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능력에 따라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노력하면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셋째,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사회적 배려와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이런 경제와 거리가 멀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덫에서 숨도 쉬기 어렵다. 서민들은 일자리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일을 해도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워킹푸어’의 고통을 겪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져 돈이 없으면 자녀 교육 시키는 것도 어렵다. 여기에 기득권층은 편법과 비리로 특혜를 누리고 약자에 대해 희생을 요구한다.
정부는 공정한 경제발전을 위해 친서민 정책을 내놓았다. 이번 친서민 정책은 빈곤층을 단순 지원하는 과거 정책과는 달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서민금융과 조세제도 개선 등 시장의 질서와 구조를 바꾸는 진일보한 정책이다. 실로 공정한 사회를 위한 첫 정책으로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경제발전의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대기업 등 일부 계층에 대한 비판이나 압력 등의 형태로 추진되고 있어 인기영합주의라는 의문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벌써 친서민 정책이 정부와 대기업의 일회성 정치적 타협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정한 사회의 첫 단추로 친서민 정책을 올바르게 추진해야 한다. 서민경제를 근본적으로 일으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강력한 의지로 추진해야 한다. 친서민 정책의 실패는 공정한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다. 한마디로, 정부는 서민이 살지 않으면 공정한 사회는 허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