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전력이었던 외국인 선수(완델손)가 떠났고 시즌 중 주전 수비수(심상민, 김용환)가 입대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양강’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한 점이 고평가를 받았다. 그간 감독상은 대개 우승 감독에게 돌아갔고 2위팀 감독의 수상조차 단 2회에 불과했다. 생애 첫 감독상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 시즌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김기동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기동 감독은 3위 팀 감독 역대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K리그 역사를 새로 썼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시즌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있는 시점, 김 감독에게 시상식에 대해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전혀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위였기 때문에”라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영광스럽고 선수들과 내가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다수의 감독들이 시상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예견된 수상 아니냐’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김기동 감독은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시상식이니까 다른 감독들도 참석하는 줄 알고 갔다. 전북과 울산은 FA컵 일정이 남아있어 감독님들이 안 오시나보다 싶었다”며 웃었다.
전북, 울산 등 ‘부자 구단’에 비해 한정된 자원으로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포항은 또 다시 전력 유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오팔팔(일류첸코-오닐-팔로세비치-팔라시오스)’로 불린 외국인 선수 4인 중 팔라시오스만이 팀에 남았다. 지난 시즌 득점 2위 일류첸코(19골)와 4위 팔로세비치(14골)는 각각 전북 현대와 FC 서울로 이적했다.
팔로세비치와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그는 “얼마전에 통화를 했는데 ‘아직 확정 안됐다. 미스터(김기동 감독)과 함께하고 싶다’며 립서비스를 하더라”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FC 서울 이적 소식이 나왔다. 김 감독은 “다른 팀으로 간 선수들이 우리와 만날 때는 살살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애들이 아니다. 그 친구들 프로다”라며 웃었다.
팀 공격을 이끌던 외국인 선수 일류첸코와는 이번 시즌부터 적으로 만나게 됐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팀에 남은 팔라시오스는 유독 각별함이 느껴지는 선수다. 많은 기대를 받고 FC 안양으로부터 영입했지만 시즌 초반에는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시즌 초반 약 10경기를 치르고 나서야 제자리를 찾아 갔다. 김 감독은 “저돌적인 패턴은 가지고 있지만 공격에만 치중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우리는 함께 움직이며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팀이다. 그래서 이적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설명했다.
시즌 초반 내내 김 감독은 팔라시오스 적응시키기에 공을 들였다. 그는 “매일같이 따로 불러서 협박도 했다가 타일러도 봤다가 선수와 씨름을 했다(웃음). 한번은 선발로 내보냈다가 전반에 빼기도 했는데 교체돼 나와서 망연자실해 있는 모습이 영상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더라.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중에는 잘 적응해서 시즌이 끝날 땐 같이 웃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머지 공백에 대해서는 영입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김 감독은 “선수는 정해졌다. 문제는 언제 팀에 합류하느냐다”라며 “코로나19 탓에 어렵다더라. 비자를 받는 절차를 밟고 자가격리 기간까지 거치면 2월 중순은 돼야 훈련에 합류할 것 같다. 우리는 그래도 선수를 빨리 결정해서 이 정도인데 다른 팀들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포항의 이번 시즌 첫 공식 경기는 오는 2월 2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로 예정돼 있다. 미뤄질 수 있지만 예정대로 경기가 치러진다면 일부 외국인 선수 없이 나서야 할 수도 있는 상황.
이외에도 포항은 신광훈, 임상협, 이현일, 신진호, 김성주 등을 영입했다. 특히 신광훈과 신진호의 영입에 많은 눈길이 쏠렸다. 포항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를 했고 다른 팀에서 활약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포항으로 돌아오게 된 이들이다. 김 감독 역시 선수 시절 포항에서 데뷔 이후 타 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으로 돌아온 경력이 있다. 그는 “둘 다 선수생활도 포항에서 함께했기에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다. (신)광훈이와는 코치와 선수로도 생활을 했었다. 이제는 감독이 돼서 만났다. 능력 있는 선수들이기에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신진호와는 유독 특별한 인연을 밝히기도 했다.
“신진호가 포항에 신인으로 입단할 때 나는 은퇴를 앞둔 시점이었다. 구단에서 내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미드필드에서 신인이던 진호와 함께 뛰어보니 앞으로 이 선수가 포항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단에 ‘진호에게 내 번호를 넘기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정했다.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후계자’라고 할까(웃음). 그래서 진호가 6번을 달았다. 5년 만에 포항에서 다시 6번을 달고 뛰게 됐는데 잘해줄 것이라 믿는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에서 프로로 데뷔해 수석코치, 감독 등 지도자 커리어 또한 포항에서 보내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포항만의 공격축구는 이번 시즌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시즌 포항은 27경기에서 56골을 넣으며 리그 12개 구단 중 최다골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당연히 골이 많이 나와야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서 “아직 올해는 얼마나 들어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많은 골을 위해 준비할 것이다. 찬스를 많이 만드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예고했다.
포항 다득점의 비결은 ‘공격적인 교체카드’였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김 감독의 교체카드 선택은 미드필더 또는 공격수였다. 그는 “수비수를 넣은 적이 거의 없다. 수비수가 들어가면 오히려 점유율을 내주고 위기를 맞게 되더라. 공격수나 미드필더 투입으로 주도권을 가져가면 상대를 지속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 축구에는 뼈아픈 기억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초보 감독이었던 2019시즌, 기록적인 대역전패를 당했다. 강원 FC를 상대로 4-0으로 앞서다 후반에만 5골을 허용하며 패한 것이다. 김 감독은 “그 경기 이후로 수비수를 안 넣는다(웃음)”라며 “축구가 참 의도대로 되지 않더라. 손 쓸 도리가 없는 경기였다. 경기 끝나고 선수들에게도 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나도 성장하고 선수들도 성장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좀처럼 연패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포항의 강점으로 꼽힌다. 2019시즌 4-5 역전패 이후 축구계에선 포항의 분위기 저하를 걱정했다. 팀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성적이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 것이다. 하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이들은 우승후보 전북을 상대로 비기며 승점을 따냈다. 2020시즌에는 2연패를 단 1회만 경험했을 정도로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김 감독은 “이번 시즌은 2연패조차 없는 시즌으로 만들고 싶다”며 의지를 보였다.
포항의 가장 큰 라이벌 울산에 큰 변화가 있다는 점 또한 이번 시즌의 재미요소다. 울산에는 김기동 감독의 프로 입단 동기인 홍명보 감독이 부임했다. 김 감독은 “홍명보 선배의 현장 복귀를 환영한다. 감독으로서 맞대결을 펼친다니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도 “존경하는 선배(김 감독은 고졸, 홍 감독은 대졸로 프로 입단)이지만 울산 감독이 누구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동해안 더비는 꼭 이겨야 하는 경기다. 팬들에게 승리를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감독 타이틀을 달고 세 번째 시즌을 맞게 된 김 감독에게 목표를 물었다. 그는 “감독이라는 자리가 성적이 좋아도 부담이고 안 좋아도 부담이다”라며 지난 시즌의 호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어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지난해처럼 재미있는 축구를 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섣불리 ‘우승’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현실적으로 우승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기는 어렵다. 우리가 하던 대로 ‘좋은 축구’를 하다보면 기회가 올 것이고 기회가 온다면 그걸 잡으려 노력하겠다. 말만 앞서기보다는 경기장에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