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국내외 증권사에 상장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보냈다. 입찰제안요청서 발송은 상장 심사 및 공모를 앞두고 관련 작업을 도울 증권사를 찾는 단계로, 상장 절차 진행을 위한 첫 단계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1월 마지막 주에 제안서를 낸 증권사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PT)을 비롯 정량평가를 진행하고, 2월 주관사단을 뽑을 계획이다.
주관사 선정 후 1분기 지정감사를 받아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면 상반기 안에 승인받을 수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이르면 3분기, 늦어도 4분기에는 상장할 수 있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입찰제안요청서에 코스피와 나스닥 중 상장 행선지는 적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선 지난해부터 관심을 모았던 나스닥 상장은 아닐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내·외 증권사가 동시에 초대 받은 만큼 코스피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IPO 작업을 본격화 했다.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사진=박은숙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2월 1일 LG화학 전지사업 부문의 물적분할로 설립됐다. LG화학이 석유화학 사업을 핵심으로 해왔던 기업이라 분야가 다른 배터리를 따로 떼어내는 것이 실익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대규모 투자자금 유치, 즉 실탄 확보가 주된 목적이었다.
최근 수년 사이 각국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장 선점 경쟁이 벌어지고 있어 LG화학도 증설과 설비 재정비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수주와 공급 사이에 2~3년의 시차가 있어 사전 투자가 중요하다. 그밖에 해외 전기차 사업 관련 업체들이 여러 경로로 LG 측에 조인트벤처 설립이나 상호 지분투자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동안 LG화학은 기초소재 부문 등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개발비 등으로 일부 끌어 썼으나 필요 자금이 크게 불어나면서 적잖은 부담을 느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LG화학도 물적분할을 발표하며 “연간 3조 원 이상의 시설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대규모 투자자금을 적기에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분할을 통해 대규모 투자자금을 유치할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금 확보 방안은 회사채 발행 등도 있지만 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독립법인이 된 만큼 IPO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해왔다. 다만 그 시기가 2021년 말 또는 내년 초로 전망됐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예상보다 일찍 상장에 나섰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최근 세계 전기차 시장 분위기상 투자는 빠를수록 좋고,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국내 증시가 활황을 보이며 IPO 흥행 여건도 좋아져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 가치는 최대 100조 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60조~70조 원, 최소 50조 원 안팎이라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향후 수십 년 동안은 이 정도 빅딜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소 10조 원 이상의 자금 조달을 기대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기차용 2차 전지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중국 CATL과 상대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LG에너지솔루션이 출하량과 생산능력 기준으로 2022년부터 CATL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돼 IPO 진행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 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의 IPO는 거래 규모가 워낙 커 변수가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역대 최대 공모액을 LG에너지솔루션 단독으로 모아야 한다. 2020년 연간 IPO 공모액은 5조 9000억 원이었고 최대 공모액 기록을 세웠던 2017년도 7조 9000억 원이었다.
올해는 SK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페이,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등 최소 1조 원부터 20조 원에 달하는 몸값을 가진 기업들이 IPO에 나선다. 지난해 부동산 규제 풍선 효과로 증시와 발행시장에 상당한 자금이 몰렸지만, 빅딜들이 많아 상장 시기에 따라 앞선 IPO에 투자자들의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큰 손’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지난해 SK바이오팜 IPO부터 경쟁적으로 6개월 의무보유확약을 걸고 있다. 1주라도 더 받기 위한 전략인데, 의무보유확약을 건 기간만큼 대규모 기관자금이 활용되지 못한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빅딜들이 올해와 내년으로 나눠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투자 계획을 세우는데 고심이 크다”고 말했다.
거품 논란이 한창인 최근 증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올해 들어서자마자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어선 가운데, 기업가치가 반영됐다기보다 갈 곳 잃은 시중 유동성이 몰려 만들어진 상승세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증권업계에서도 올해 하반기까지 이 분위기가 이어질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에 대해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이제 막 관련 절차를 시작했다”며 “향후 확정된 내용들은 공식적으로 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사진=박은숙 기자
상장 작업의 첫 단추인 주관사 선정 과정도 LG에너지솔루션 IPO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이목을 끌고 있는 건 국내 IPO시장 빅3 중 두 곳인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가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초대형 IPO에서 선두권 증권사가 완전히 배제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증권사 가운데 공격적으로 IPO부문을 확대하고 있는 삼성증권도 초대받지 못한 것으로 증권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현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 상장을 주관하고 있다. SK IET는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의 소재 부문이 분할·신설된 2차전지 분리막 제조사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전지와 ESS(에너지 저장 장치)를 양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비슷한 사업을 한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수년째 배터리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주관사단이 선정되면 LG에너지솔루션 실사가 시작되는데, 특히 소송 관련 내용은 기업의 대표적인 리스크로 꼽히는 만큼 면밀히 살피게 된다. SK IET 주관사들이 LG에너지솔루션 IPO까지 맡는 건 LG는 물론 SK 입장에서도 불편한 일이다.
삼성증권 역시 삼성SDI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대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IPO 분야 증권업계 빅3 가운데 유일하게 NH투자증권만 초대장을 받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최근 업계에선 NH투자증권도 배제됐다는 설이 파다하다. 제안서를 받은 국내 증권사는 현재까지 KB증권, 대신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로 파악된다. 외국계 IB는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가 초대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증권업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모험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동안 초대형 IPO에서 빅3 증권사가 빠진 경우는 드물었다. KB증권, 대신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등은 아직까지 공모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하는 IPO 대표상장주관을 맡아본 경험이 없다. 다만 이들 증권사가 지난해부터 IPO부문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어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통상 IPO를 추진하는 기업들은 다양한 전략 검토 차원에서 일단 제안서까지는 받는다. 앞서 주관사를 선정한 카카오 계열사들도 경쟁 업체와 이해관계가 있는 증권사들의 제안서를 받기도 했다”며 “그밖에 마케팅과 홍보 측면에서 경험 많은 주관사를 선정하기도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이번 선택은 이해상충에 따른 보안 우려가 가장 큰 배경이겠지만 경쟁 그룹 간 자존심과 상장 성공에 대한 자신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