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의 이름과 얼굴은 공개돼도 괜찮을까. ‘정인이 사건’은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경찰의 안일한 대처, 잔혹한 학대 내용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긋 웃는 정인이의 모습은 시민들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결국 정인이 양모는 ‘아동학대치사죄’에서 ‘살인죄’ 혐의로 기소됐다. 정인이 이름과 얼굴 공개는 ‘좋은 결과’를 낳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정인이에게 이름과 얼굴을 공개해도 되는지 묻지 않았고, 허락을 받지 않았다. |
2013년 ‘울산 여아 아동학대 사망 사건’ 때 A 양의 실명이 그대로 언론에 공개됐다. 이후 피해 아동의 신상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이 생겼고, 최우선으로 아동 신상은 보호된다는 조항이 마련됐다. 8년이 지난 뒤 피해 아동의 신상은 더욱 적나라하게 공개됐다(관련기사 8년 전 ‘울산 A양 사건’ 겪었지만 피해 아동 신상 보호는 ‘퇴행’).
#‘앞으로도 피해 아동을 공개할 건가’ 우려와 지적
특수한 정인이의 상황을 고려해 정인이 신상을 공개해서라도 여론을 모으는 것이 정인이를 위하는 일이라는 여론이 현재 압도적이다. 하지만 정인이 신상 공개 등 과도한 언론 보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인이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1월 13일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경찰청 프로파일러로 활동했던 배상훈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사건이 현재 파괴력이 있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의미에서 ‘정인이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도 “정인이 신상이 너무 쉽게 공개된 면이 있다. 원칙은 피해자는 물론 그 가족도 노출하면 안 된다. 사실 ‘양천 입양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라고 지명을 붙이는 것도 편견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합의를 정하고 기준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선한 의도가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모자나 휴대전화 케이스 등 ‘정인아 미안해’ 문구가 새겨진 굿즈가 판매돼 논란이 됐다. 정인이의 영혼을 만났다는 무속인 유튜버도 등장했다.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운동이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등 계정을 광고하는 데에 활용되면서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따가운 시선도 존재한다.
신수경 변호사는 “언론이 아동 학대 사건을 보도하는 것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범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너무 과다하게 보도되고 있다. 보도할 땐 최대한 담백하고 가치중립적으로 해야 한다. 왜 아이가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도구화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아이에게 이와 관련해 누구도 허락받은 적이 없다. 아이는 자신의 얼굴이 공개된 이 상황을 좋아할까. 선한 의도가 악용될 소지 또한 다분하다. 소아 성범죄 사이트에 정인이 사진이 돌아다니지 않으리란 보장 또한 없다. 그땐 누가 책임질 거냐”고 지적했다.
정인이 사건이 학습돼 피해자 신상 공개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동시에 정인이 양부모의 친자식 또한 정인이의 신상이 공개된 지금 2차 피해 대상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보는 사람 입장에선 아동이 특정될 경우 감정이입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피해 아동 신상 공개가 학습될까 우려된다.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이 기사화해서 여론의 호응을 얻으려면 이 정도는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사실 2차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일단 정인이가 아닌 다른 아이도 그 가정에 있다. 그 아이 또한 다른 아동의 학대 장면을 목격한 피해 아동으로 봐야 한다. 정인이 신상 공개로 이 아동이 특정되면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인이가 성인이었다면
보통 사망한 범죄 피해자의 신상 공개는 피해자를 대변할 수 있는 가족의 의사를 따른다. 여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유가족은 피해자 신상 공개를 결정한다. 피해자가 특정되면 더 큰 연민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동학대 사건이 대부분 그렇듯 정인이의 경우 정인이를 대변해줄 가족이 가해자였다. 사실 신상 공개를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없었다. 언론과 시민들이 스스로 정인이의 대변인이 된 셈이다.
정인이의 신상 공개가 용인되는 이유를 우리 사회 ‘셰어런팅’ 문화에서 찾는 해석도 나온다.
정인이가 성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한 성인이 끔찍한 흉악 범죄를 당해 잔혹하게 사망했고, 보호자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피해자의 이름과 얼굴을 대중에 알릴 수 있었을까. 대중은 이를 받아들였을까. 정인이의 신상 공개가 용인되는 이유를 우리 사회 ‘셰어런팅’ 문화에서 찾는 해석도 나온다.
‘셰어런팅’은 공유를 뜻하는 ‘셰어(Share)’와 양육을 뜻하는 ‘페어런팅(Parenting)’를 조합한 단어다. 소셜미디어에 자녀의 사진을 부모가 게재하는 행위를 뜻한다. 자녀 초상권이 부모에게 있느냐, 자녀에게 있느냐를 두고 셰어런팅은 세계적으로도 논란이다. 물론 세계적인 추세는 셰어런팅이 아동의 자기결정권과 초상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예로 할리우드 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2019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딸 애플 마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렀다. 애플 마틴은 댓글을 달아 “내 동의 없이 아무것도 올리면 안 된다”고 항의했다. 이를 본 사용자들은 “자녀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엄마라고 해서 모든 권리를 갖는 건 아니다” 등의 비판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해외에선 치부가 담긴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지워주지 않는다며 자신의 부모를 상대로 고소를 벌이는 일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셰어런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있지만 아직까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자녀를 부모와 같은 온전한 시민 혹은 사회 구성원으로 보지 않은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인이 신상이 공개된 맥락도 있다. 과거 우린 친구랑 찍은 사진을 허락 없이 올렸지만 지금은 대부분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이 대상이 아동이거나 자녀가 됐을 땐 여전히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아동을 소유물로 본다는 전반적인 인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셰어런팅은 아동 안전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공익적 목적이라면 정인이의 신상 공개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던 정익중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정 교수는 “셰어런팅 맥락에서 정인이의 신상 공개 문제를 짚는다면 일리가 있다. 그 부분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배상훈 교수 또한 “만약 정인이가 성인이었다면 우리 사회가 신상 공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전했다.
#언론이 정인이를 소비하는 방식
언론은 ‘정인이 사건’의 가해자인 양부모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양부모 신상을 노출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해자의 신상 또한 공개해선 안 된다. 피해 아동이 사망했더라도 또 다른 자녀가 2차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아동학대처벌법 또한 가해자 신상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정인이 양부가 1월 13일 재판이 끝난 뒤 서울남부지방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법에서 피해 아동의 신상을 보호하는 규정도 있지만 언론은 정인이 얼굴은 드러내고 있다. 이를 두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동시에 여론의 주목을 받으려는 언론의 속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인이는 사망했고, 가해자는 살아 있다.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면 명예훼손 등으로 당연히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여론은 정인이 신상 공개를 두고 ‘잘했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 데다 언론사가 정인이 얼굴을 공개한 것을 두고 법적인 책임을 질 염려도 적다”며 “지금 정인이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기사는 클릭 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얼굴 공개가 정인이를 위한 것인지 따져볼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편 사건·사고를 탐사 보도를 하는 유튜브 채널 ‘김원TV’는 정인이 사건을 다루면서 정인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정인이 양부모 얼굴을 공개했다. 김원TV는 2020년 4월 아내의 친구와 랜덤 채팅에서 만난 여성을 연쇄 살인한 최신종의 신상을 최초로 공개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