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올 뉴 디스커버리 SD4 SE’이 차량이 엔진 교체 이후에도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해 서울시 강남구 도로 한복판에 서 있다. 사진=제보자 제공
#랜드로버 시동 꺼짐에도 나 몰라라
장 아무개 씨는 랜드로버 ‘올 뉴 디스커버리 SD4 SE’ 차량을 운행하다가 시동 꺼짐을 3번이나 겪었다. 지난해 7월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고속으로 주행하던 중 엔진회전수(RPM)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갑자기 시동이 꺼졌다. 장 씨는 급히 차량을 갓길에 세웠다. 차량 통행량이 적은 새벽이 아니었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해당 차량을 점검한 결과 엔진 문제로 판단했고 무상으로 엔진을 교체해줬다.
하지만 엔진 교체 후에도 시동 꺼짐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퇴근길에 서울 강남구 도로 한복판에서 시동이 꺼졌다. 긴급 출동서비스를 요청해 1시간 만에 도로에서 빠져나왔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또 차량을 점검했고 이번엔 볼트가 느슨해져서 시동이 꺼진 것이라는 점검결과를 내놓았다. 이후 차량은 2개월도 채 안 돼서 3번째 시동 꺼짐이 발생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3번째 시동 꺼짐의 원인을 보조 배터리 문제라고 진단했다. 한 차량에서 3번의 시동 꺼짐이 발생했고, 원인은 제각각인 셈이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볼트가 느슨하고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고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 배터리는 시동 걸 때만 필요하고 이후에는 발전기에서 전기가 공급된다”며 “연료, 점화, 시스템 등을 제어하는 장치 불량이 대표적인 시동 꺼짐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장 씨는 3번이나 시동 꺼짐을 겪으면서 문제를 제기했으나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우린 차량을 수입할 뿐, 고객에게 차량 판매한 곳은 딜러사”라는 입장이다. 재규어랜드로버 차량 결함은 오래전부터 지적받아 온 사안이다.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2020년 94건의 결함신고가 접수됐다. 이중 장 씨 차량과 동일한 엔진을 사용한 모델의 시동 꺼짐 신고만 20건에 달한다.
결국 지난해 12월 24일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측에 자료를 요청하고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문제는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동 꺼짐이 수차례 발생한 차량에 대한 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앞서 2018년에는 그룹 잼의 멤버 황현민 씨가 랜드로버 차량을 운행하다 3번의 시동 꺼짐을 겪고서 매장에서 난동을 부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후 국토부가 조사에 착수했고,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조사결과와 제작결함심사위원회에서 3.0L 디젤엔진의 크랭크축 소착 결함으로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같은 해 10월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4, 레인지로버스포츠 등 엔진 이상이 발견된 5개 차종 1만 6022대를 리콜 조치했다.
2016년에는 재규어 XE·XF 승용자동차 2331대에서 시동 꺼짐 및 화재발생 가능성이 발견돼 리콜 조치됐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이보크 총 464대도 전기배선 결함으로 시동 꺼짐 가능성이 드러나 리콜됐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토부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 건 기업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메르세데스-벤츠가 국토부 중재 결과가 나오기 전 소비자들과 협의를 통해 보상을 진행한 사례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랜드로버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주행하던 중 갑자기 시동이 꺼지면서 견인차가 견인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제보자 제공
#‘레몬법’ 소비자 보호에 실효적인가?
정부는 2018년 BMW 화재 사고를 계기로 2019년부터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레몬법을 시행하고 있다. 신차 구매 후 1년 이내(주행거리 2만km 이내) 중대한 하자 2회나 일반 하자 3회 이상 발생하면 제조사에 교환·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교체·환불 여부는 법학·자동차·소비자보호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국토부의 자동차안전·하자 심의위원회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현실은 입법 취지와 동떨어져 있다. 실제 소비자가 국토부에 중재를 신청해 교환·환불을 받기도 쉽지 않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레몬법이 시행된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747건의 중재신청이 접수됐다. 이 중 211건의 중재 절차가 마무리됐다. 중재 개시요건 불충분으로 인한 진행 불가가 233건, 165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138건은 접수된 상태다. 이 중 교환 명령이 내려진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하다. 1월 13일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 ‘레몬법’ 첫 적용의 주인공은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 350d 차량이다.
레몬법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차를 구매할 때 레몬법 적용에 대한 강제성도 없고, 제조사의 협조가 없다면 이를 보장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이호근 교수는 “국내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소비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는 징벌적 배상제도 등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2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된다. 완성차 제조사가 결함을 인지하고서도 시정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손해액의 5배 이내에서 배상해야 된다. 결함 은폐, 축소, 거짓 공개, 늑장 리콜로 인한 과징금도 차종 매출액의 1%에서 3%로 오른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