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가 판팅위와 롄샤오를 연이어 꺾고 춘란배 결승에 올랐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롄샤오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귀공자 같은 피부를 가졌다. 중국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기사다. ‘얼굴 천재’는 느긋한 표정으로 빈틈없이 승기를 닦아나갔다. 어려운 부분도 별로 남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가 중앙 삭감을 들어오자 무심코 꽉 막았다. 한 집 이득이라고 봤다. 그 순간 신진서의 표정이 싹 변한다. 산만했던 손놀림은 멈췄고, 눈빛이 반짝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뒷발차기가 들어갔다. 마침 초읽기에 몰린 롄샤오는 당황했다. 뒤로 물러서다가 이해할 수 없는 빈삼각을 두었다.
자멸이었다. 해설자들에게 마우스미스 이야기까지 나왔다. 절예 승률은 90%대에서 30%대로 바뀌었다. 흑이 거꾸로 3집 이상 앞서는 형세가 되었다. 돌 하나 떨어지니 반상이 극락에서 지옥으로 변했다. 좀 버티다가 결국 돌을 거뒀다. 신진서는 응씨배에 이어 춘란배까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500승까지 기록했다. 신진서는 입단 후 8년 6개월 동안 성적은 500승 1무 161패(통산 승률 75.64%)다. 지난 응씨배 1국에서 만난 자오천위, 춘란배 8강에서 판팅위, 4강에서 롄샤오 모두 불가사의한 패배를 당했다. 신진서가 지닌 강자 프리미엄이 작용했기 때문.
신진서가 준결승에서 이긴 롄샤오(왼쪽)와 결승에서 맞붙게 된 탕웨이싱. 사진=한국기원 제공
기대했던 신-커 결승은 이뤄지지 않았다. 커제는 다시 4강에서 탈락했다. 2016년부터 이어온 ‘춘란의 저주’다. 제11회 춘란배 4강전은 박영훈에게 불계패, 지난 12회 대회 4강전에서 박정환을 만나 1.5집 차이로 졌다. 이번 4강전은 자국 기사 탕웨이싱에게 저격당했다. 결국 춘란배 결승무대에 남은 주인공은 ‘신진서’와 ‘탕웨이싱’이다.
준결승을 통과한 신진서는 “꼭 이겨야겠다는 각오로 대국에 임했다. 마지막까지 내가 진 내용이었다. 정말 어렵게 결승에 올랐다. 내 바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보완점을 찾겠다. 결승도 필승의 각오를 다지고 모두 우승하겠다”고 전했다. 탕웨이싱은 “신진서는 아주 강한 상대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후반감각이 무뎌지고 있다. 결승전에 올라 한국 일인자와 상대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춘란배 결승 3번기는 오는 6월 말에 열릴 예정이다. 우승상금은 15만 달러(약 1억 6600만 원)다.
[승부처 돋보기] 절대 강자 앞에 약해진 판팅위 춘란배 8강전 ●판팅위 ○신진서 190수 백불계승 장면도 #장면도-실전 초반 판팅위의 행마는 차돌처럼 단단했다. 상변 패싸움하는 과정에서 형세가 살짝 기울었지만, 흑의 행마는 여전히 느긋했다. 결국 기회가 한 번 왔다. 판팅위가 노린 목표는 좌상변 백돌(세모 표시)이다. 흑은 X자리로 끊어 수상전을 기획했다. 하지만 좌상귀에서 백이 4로 젖히자 승리의 길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흑이 A로 이으면 백도 B로 이어서 자충이라 한 수가 늘었다. 그런데 실전에서 판팅위가 놓친 귀수가 있었다. 참고도1 #참고도1-일선의 묘수 중국기원 온라인 대회장에서 판팅위는 입구 쪽 자리에 앉았다. 대국 당일 커제는 “지나가다 판팅위 모니터가 보였다. 순간 일선에 흑1과 같은 수단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당연히 판팅위가 이렇게 둘 거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다녀와서 보니 뜻밖에 실전처럼 진행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절예 참고도에도 나오지 않았던 수. 한국에선 TV해설하던 송태곤 9단이 발견했었다. 실전 149수째가 흑1을 둘 타이밍이었다. 만약 백2로 이으면 흑9까지 필연이다. 이후에 백C로 와도 흑은 D로 바로 조여 대마를 모두 잡는다. 참고도2 #참고도2-패가 최선 백은 중앙 두 점을 미리 잡아 뒤를 보강해야 한다. 백4 후엔 필연적인 패싸움. 흑은 E와 F 자리에 자체 팻감이 있다. 이 패를 이기면 이 상변 돌을 이어가는 맛도 남아있다. 형세는 역전이다. 흑이 3집 정도 앞서는 결과라고 인공지능(카타고)은 평가한다. 당시 대국장에선 신진서는 나중 이 수를 발견하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판팅위는 다른 방향으로 수상전을 진행하다 실패했다. 강자 프리미엄이다. 평소의 판팅위라면 금방 찾았을 수다. 누구나 ‘절대 강자’를 앞에 두면 자신의 실력이 제대로 안 나오는 법이다. |
박주성 객원기자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