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적자 규모로 코스닥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쿠팡이 최근 나스닥 상장 예비심사에 통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백소연 디자이너
최근 쿠팡이 나스닥 상장 예비심사에 통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스닥 상장은 쿠팡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쿠팡이 왜 우리나라 코스닥이 아닌 미국 나스닥을 택했냐는 데 의문이 든다. 국내 IT‧벤처기업, 특히 동종업계인 티몬이 코스닥 상장을 노리고 있어 그 궁금증은 더욱 가중된다.
우선 쿠팡의 누적적자가 상당해 현실적으로 코스닥에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쿠팡은 2018년 약 1조 1279억 원, 2019년 720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코스닥 상장 요건에는 사업 이익과 매출, 자기자본 등을 평가하는 ‘경영성과 및 시장평가’ 항목이 필수다. 반면 나스닥 상장 요건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2016년과 2017년, 2019년 적자를 기록한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와 성장성이 높이 평가받는 테슬라가 나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에도 비록 현재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미래 성장성이 높으면 상장할 수 있는 ‘테슬라 요건 상장(이익미실현기업 특례상장)’ 제도가 있다. 그러나 누적적자가 무려 3조 7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덩치 큰 쿠팡에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IB(투자은행) 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은 규모가 크고 적자도 상당해서 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국내 주식 시장 상장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하려면 ‘피어그룹(경쟁기업)’ 기준을 적용받는데 쿠팡의 경쟁사로 꼽힐 만한 기업이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없다는 점도 쿠팡의 코스닥 상장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장된 유통업체들은 대부분 오프라인 중심의 사업자로서 쿠팡과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기 때문에 쿠팡이 적정한 가치를 평가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코스닥에 상장된 코리아센터, 카페24도 쿠팡과 모델이 다르다 보니 적정 피어를 산정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코스닥보다 나스닥에서 기업가치를 더 후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쿠팡이 나스닥에 먼저 도전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대근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국내보다 미국 시장에서 더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시장이 플랫폼 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코스피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둘 다 상장돼 있는 신한금융지주와 한국전력의 PER(주가수익비율)은 21일 기준 4.72배와 5.34배, 173.26배와 225.4배로 NYSE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강대석 유진투자증권 글로벌 매크로팀 연구원은 “외국 증시에서 평가하는 PER이 국내보다 높은 경향이 있어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외국이 더 유리한 부분이 있다”며 “특히 나스닥은 NYSE보다 하이테크 기업에 개방적이고 기술주 상장에서 매출의 연속성만 있으면 이익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 나스닥에 기술 관련 기업들이 몰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자금조달이 필요한 쿠팡은 코스닥 대신 나스닥을 선택했다. 사진은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쿠팡 물류센터. 사진=박정훈 기자
한편에서는 쿠팡의 지배구조와 기업 문화, 특성 등을 볼 때 국내 주식시장 대신 나스닥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쿠팡은 미국 쿠팡LLC의 자회사이고 경영진도 대부분 외국인”이라며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도 미국에서 성장하고 사회경력은 쌓은 만큼 나스닥 상장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범석 의장은 오래전부터 쿠팡의 나스닥 상장 의사를 직접 밝혀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쿠팡이 나스닥 상장 이후에는 지금의 ‘비밀주의’ 기업 문화를 개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동안 쿠팡은 몸집은 엄청나게 커졌지만 기업 정보와 경영 계획 등에 대해서는 ‘비밀’을 고수해 논란을 빚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나스닥에 상장하면 정보공개 등을 소홀히 하기 힘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나스닥은 국내 주식시장과 비교해 지켜야 할 것들이 훨씬 많으며 주식거래와 관련된 제재가 더 엄격하기 때문에 기업공개(IPO)를 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며 “상당한 관리 감독이 요구되고 퇴출(상장폐지)도 훨씬 쉬운 곳”이라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