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사시설 보호구역 해제 및 완화 당정협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최근 이재명 지사 측 내부 분위기다. 특히 청와대 참모진 출신 민형배 민주당 의원(광주 광산을)이 이 지사를 공개 지지하자, 이 지사 측은 한층 고무됐다. 이는 친문계 의원 중 첫 공개 지지였다. 민 의원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과 자치발전비서관 등을 각각 지냈다. 민 의원은 이 지사에 대한 지지와 함께 이 대표에 대해선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이나 기대에 대한 제 나름의 미련을 조금 버렸다”고 했다.
정치권은 술렁였다. 이 지사는 그간 친노(친노무현)·친문계와 끊임없이 불화했다. 그에게 호남은 약한 고리였다. 친문과 호남에 고립될 뻔한 상황에서 민 의원 공개 지지가 터져 나왔다. 이 지사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지사 측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한 관계자는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 선뜻 답하지 못했다. 민 의원의 ‘이재명 공개 지지 선언’은 한 언론 인터뷰 과정에서 나왔다. 민 의원도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호남=이낙연 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민심도 이 지사로 이동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1월 15일 공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이재명 지사(23%)는 이낙연 대표(10%)를 두 배 이상 앞섰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 지사(43%)는 이 대표(23%)를 20%포인트(p) 앞섰다. 진보층에서도 이 지사는 42%로, 21%에 그친 이 대표를 크게 눌렀다. 광주·전라에서도 이들의 격차(이재명 28% vs 이낙연 21%)는 오차범위 밖이었다. 호남 주자인 이 대표가 광주·전라에서 약세를 보인 반면, 이 지사는 권역별 중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32%를 기록했다(95% 신뢰수준에 ±3.1%p·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여의도 한 분석가는 “특정 지역에 대한 구심점 강화는 대권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31대 경기도지사에 올랐던 손학규 전 의원이나 재선(32∼33대 경기도지사)한 김문수 전 의원 등이 차기 대선 고지를 끝내 점령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도 지역 구심점 약화였다. 손 전 의원은 2007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 호남 구애에만 매달렸다. 김 전 의원은 2016년 총선 때 보수층 표심을 끌어안기 위해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37.7%로 낙선했다. 이 지사에게 경기권 대세론은 호남 못지않은 천군만마다.
이 지사 측은 신년 여론조사 1위 직후 친문계 호남 의원의 지지까지 이어지자, 대선 전략을 미세 조정했다. 핵심은 ‘세 규합 속도전·우군 공격 속도조절’이다. 이 지사 측은 친문계 의원의 추가 지지가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물밑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내부 핵심 관계자는 “(나중에 보면) 깜짝 놀랄 만한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민 의원 지지 이후 당내 역학 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친문계 및 NY(이낙연)와 가까운 인사들이 이 지사와 접촉면을 늘리고 있어서다. 그 중심에는 경기 지역 현역 의원들이 있었다. 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박정 의원과 권칠승 김철민 소병훈 정춘숙 민병덕 양기대 의원 등은 1월 18일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이 지사와 정책 회의를 했다. 이들은 “정책 협의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부 의원들은 이 지사와 찍은 사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2020년 7월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수장을 잃은 박원순계에도 손을 뻗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연말 경기도지사 공관에서 박홍근 민주당 의원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동은 이 지사 측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발 공관 정치’가 수면 수위로 부상한 셈이다. 당 내부에선 친문계를 포함한 일부 의원들이 이재명 세 확산을 위한 조직 만들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만 이들이 금명간 이 지사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할지는 미지수다. 이 지사 측이 접촉한 인사 중 일부는 합류에 적잖은 고민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는 친문계 분화 및 여권 분열의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낙인효과가 몰고 올 후폭풍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지사 측도 4월 재보선 이후 본격적인 대선 정국 때나 세력화의 얼개가 그려질 것으로 내다봤다. 민 의원에 이은 친문계 추가 지지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직화에 속도를 내는 이 지사는 당·청과 전략적 공존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지사 측은 이 대표와 각을 세우는 전략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지사 측 예상보다 ‘이낙연 대세론’이 조기에 흔들리자, 공세 칼날을 뒤로 숨겼다. 이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1월 18일)과 겹친다는 이유로, 경기도 ‘2차 재난기본소득 기자회견’을 미룬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지사는 기자회견 취소에 대해 “당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당연한 존중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언론이 ‘이 지사가 재난기본소득 지급과 관련해 당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보도하자, “분열 세력의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방어에도 나섰다. 이 지사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도 사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하자, “공작을 일삼는 자는 공작할 일만 보인다”고 저격했다. 앞서 이 지사는 이낙연발 사면론 당시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몸을 낮췄다.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과 관련해서도 “대통령님께서 그 자리에 계신 게 얼마나 다행인가”라며 ‘핑크빛 기류’를 형성했다. 이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 방송을 보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심한 ‘문비어천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대신 정책적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차 재난기본소득’을 밀어붙인 게 대표적이다. 이 지사는 1월 20일 “전 경기도민에게 1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으로 발표를 미룬 지 이틀 만이다. 다만 지급 시기는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결정하겠다”고만 했다. 앞서 민주당이 요청한 시기 조절은 수용한 셈이다. 당·청과 정책적 차별화를 꾀하면서도 확전은 자제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 지사의 정책적 차별화 전략에 대해 “진보와 호남에서 우위를 점한 이 지사가 중도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지사 전략적 행보의 ‘풍선효과’다. 변수는 친문계 움직임이다. 이 지사가 친문계에 러브콜을 할수록 당 주류의 제3 후보론 띄우기도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도 끊이지 않는다. 친문계 내부에 퍼진 ‘이재명 비토’ 심리 때문이다. 그 중심엔 이 지사의 태생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사는 2007년 대선 때 반노(반노무현)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캠프에서 수석부실장직을 지냈다. 당시 정동영 캠프의 ‘박스떼기·차떼기’ 의혹을 둘러싸고 손학규 캠프는 물론,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충돌했다. 이 지사에게 한동안 정동영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 이유다. 2017년 대선 땐 이 지사가 문 대통령 공격에 앞장섰다. 이 지사 팬클럽인 ‘손가혁(손가락 혁명)’과 문 대통령 지지층 간 앙금도 여전하다. 다만 일부 의원들은 “정치는 생물”이라며 “지금 화학적 결합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이낙연 대세론과의 싸움도 아직 끝이 아니다. 민 의원의 이재명 지지 이후 이병훈 민주당 의원(광주 동남을)은 이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NY계인 이개호 민주당 의원은 1월 14일 KBS ‘뉴스7’ 인터뷰에서 “타 후보에 대한 비지지 언급은 금기”라고 민 의원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도 “이낙연 대세론이 무너졌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월 말 공개할 대선 정책 브랜드인 ‘신복지 체제’를 통해 반전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고용·소득보장 등 경제 불평등 완화를 핵심으로 한다. 이 대표 측은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했던 지난해부터 대선 슬로건 및 정책을 준비했다. 서울 모처에서 학계 등에 조언을 받으면서 세부 정책을 가다듬었다. 반면 이 지사 측은 대선 슬로건 등 구체적인 정책은 미완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 측은 “정책은 우리가 한 수 위”라며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갈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