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그룹의 실적이 매년 하향세를 보이면서 승계 작업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서경배 아모레G 회장이 2016년 과학재단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룹 지주사 아모레G의 2020년 3분기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3.3% 감소한 3조 6687억 원, 영업이익은 62.1% 줄어든 1652억 원에 그쳤다. 종속기업들의 실적 부진 탓이다. 주요 계열사 아모레의 2020년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3조 2752억 원, 1522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22.9%, 60.1%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아모레의 2017년과 2018년, 2019년 영업이익은 5963억 원, 4820억 원, 4278억 원으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중저가 화장품 위주인 로드숍 계열사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니스프리의 2019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519억 원, 626억 원으로 전년보다 7.8%, 22.1% 줄었다. 에뛰드 매출은 전년보다 17.5% 감소한 1800억 원이고, 영업이익은 적자다. 다만 에스쁘아 매출은 2018년 421억 원에서 2019년 467억 원으로 늘고, 영업이익도 동일 기간 18억 원 적자에서 5000만 원 흑자 전환했지만 규모가 작다.
해외사업도 부진을 겪고 있다. 아모레G의 지난해 3분기 공시에 따르면, 해외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20.9% 하락한 1조 2025억 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337억 원 적자다. 아모레G 측은 코로나에 따른 글로벌 오프라인 매장의 임시 휴점으로 매출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이니스프리는 2020년 미국과 캐나다 직영점 10개 매장을 폐점했다. 북미시장 진출 3년 만이다.
실적 악화에는 사드 사태와 코로나 여파가 큰 영향을 미쳤다지만, 중저가 오프라인 위주로 국내외 전략을 펼치면서 면세점과 로드숍에만 의존하는 등 유통채널을 다변화하지 못하고, 디지털화와 럭셔리 제품 수요 증가에 빨리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의존도가 높고, 중저가 브랜드 경쟁이 심화된 점도 이유로 꼽힌다.
아모레G는 전체 매출 중 화장품 사업이 86.9%로 절대적이고, 해외 진출 시 원브랜드숍을 직접 개장하며 고정비 부담이 늘었다. 한 예로 2020년 이전까지 중국에서 이니스프리 매장을 늘리며 오프라인 채널 확장에 집중했다. 아모레G는 최근 뒤늦게 이에 대한 구조조정에 집중하고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판매 채널을 헬스앤뷰티(H&B) 시장 등으로 유통채널을 다각화했어야 했다”며 “중국 매출이 아주 호황일 때 글로벌 전략을 다변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패착”이라고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로드숍과 면세점 채널 실적이 떨어졌고, 중국 내 소비 양극화 심화로 럭셔리 브랜드 수요가 급증하는데 아모레는 이니스프리나 라네즈 같은 중저가에 더 집중했다”며 “요즘 중저가 트렌드는 합리적 가격에 좋은 성분, 구매하기 쉬운 온라인 채널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는 브랜드가 급성장하는데 이니스프리 에뛰드 에스쁘아는 이미지가 신선하지 않다.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회복은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아모레는 중저가 로드숍 매출 비중이 컸는데 온라인화가 진행되면서 타격이 컸다. 한국과 중국에서 다양한 중저가 브랜드가 나와 밀린 것도 이유”라며 “중저가 브랜드가 온라인화하고 오프라인도 올리브영 같은 멀티브랜드숍으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고정비가 많이 드는 원브랜드숍은 당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사업 실적이 전반적으로 악화하면서 3세 경영 승계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6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민정 과장과 홍정환 보광창업투자 투자심사총괄의 약혼식에서 서민정 과장이 손님들을 배웅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아모레G 실적 악화는 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승계를 위해서는 아모레G 지분이 중요한데 서경배 회장은 53.9%를, 서민정 과장은 2.93%를 보유했다. 서 과장은 이니스프리 지분 18.18%와 에뛰드 지분 19.5%, 에스쁘아 지분 19.52%도 갖고 있다. 이들은 승계 핵심 자금줄로 배당금 수령과 상장, 매각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아모레G 지분을 사지 않겠느냐는 시나리오가 오래전부터 거론돼왔다. 서 과장이 이니스프리 지분으로 배당금을 2019년 200억 원, 2018년 23억 원, 2017년 44억 원 등 꾸준히 받은 점은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들 계열사들이 실적 회복에 성공하지 못하면 상장이나 매각을 하더라도 기대만큼 자금을 마련하긴 힘들다. 수익성이 떨어지면 배당금 지원 사격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박주근 대표는 “아모레G는 맏딸 서민정 과장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를 통해 승계 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니스프리 고배당도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아모레G 주가는 너무 높고 덩치가 커 원래대로라면 로드숍 사업을 잘 키워 상장한 뒤 그 자금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 가능했겠으나 지금은 쉽지 않다. 로드숍 계열사들을 통해 최대한 배당하고 이후 매각하거나 사업을 성공시켜서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아모레G의 향후 과제는 체험형 매장이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신선한 마케팅, 좋은 제품 등을 통해 오프라인 실적을 회복하고 유통 채널을 H&B와 온라인으로 다변화하는 것 등이 꼽힌다.
박주근 대표는 “서민정 과장의 과제는 로드숍 계열사 사업을 성공시켜내는 것”이라며 “그래야 경영자로서 실적을 입증해내고 승계 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룹 차원에서도 업종 자체가 다변화하고 중소형 화장품 기업들이 치고 올라오는 지금 코스메틱 사업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요하다”며 “제약사가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듯 코스메틱에서도 기능성 제약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노려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회복세를 전망하기도 한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이니스프리가 중국 내에서 효율화 작업을 하고 있고 설화수도 꾸준히 매출이 나오는 등 전반적으로는 턴어라운드 기조에 다가서는 요인들이 있다”며 “온라인 매출이 늘어나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아모레는 올해 디지털 전환을 통해 실적 회복에 나선다는 입장을 보인다. 작년부터 국내의 경우 직영점에 한해 실적이 나지 않는 오프라인 매장을 폐점하고, 온라인 사업 강화에 힘쓰고 있다. 전부 직영점으로 운영하는 해외 시장도 꾸준히 매장 수를 줄이고 있다. 아모레 측은 다만 “최근 실적 악화된 부분을 승계와 연관 짓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