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안철수, 보석? 짱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를 외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얘기만 나오면 폭발한다.
안 대표는 1월 19일 국회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더니 “국민의힘 경선 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달라”며 야권 대통합 원샷 경선을 요구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예상대로 즉각 퇴짜를 놨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에게 “(안철수 대표가) 제안한다고 수용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안 대표 입장일 뿐이고 국민의힘은 밟아야 할 정상적 당내 경선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단일화를 한다면 국민의힘 최종 후보를 뽑고 난 뒤이며, 그전엔 단일화를 절대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안 대표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이라는 것이 김 위원장 측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중요한 순간 후보 자리를 양보하거나 선거 전선에서 철수해온 안 대표의 정치 여정을 볼 때 그는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자격 미달이며, 의석수가 3석에 불과한 국민의당이 제1야당을 한입에 먹으려는 불순한 의도라는 것이다.
또 안 대표가 최종 경선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까지도 보고 있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1월 21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3자 구도를 이야기하는 건 단일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거기에 불복하고서 출발했을 때 나타날 현상”이라고 언급, 안 대표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욱이 최근 언론에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안철수 변모론’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 폭탄주를 돌리고 ‘형님’이라고 친근감 넘치는 용어를 구사하는 등 스킨십이 달라졌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한때 안 대표와 한솥밥을 먹었던 장진영 변호사가 비판적 SNS 글을 올리자 김 위원장은 동의한다는 듯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더 이상 예전의 안철수가 아니고, 지금의 정치 지형과 국민적 요구를 감안할 때 안철수 대표를 품는 야권 대통합의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SNS에 안 대표의 야권 단일화 방식과 관련한 기자회견 전문을 공유하면서 “미국 민주당이 대선후보 경선에 무소속 버니 샌더스도 포함시켰듯이 안 후보가 우리 당 후보 경선 플랫폼 위에서 함께 경선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오늘 안 후보가 같은 얘기를 했다”며 야권 대통합 원샷 경선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뜻을 내놨다.
국민의힘 한 3선 의원은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느냐. 서울시장은 단일화하지 않으면 무조건 진다. 비대위원장이 ‘3자 구도 승리’ 운운하는 것은 제왕적 고집일 뿐이다. 국민들이 뭐라고 보겠나.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말은 기득권을 누리려는 시도로밖에 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의미 못 읽어낸 사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카드를 던지자, 국민의힘은 이에 대한 의도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당 차원의 목소리를 내놓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사면에 대해 제대로 된 당력을 쏟아내지 못한 것은 정보 판단 미스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당 내부에서 나온다. 집권세력의 단순한 선의인지, 아니면 정치공학적 접근인지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에 응전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버스가 떠난 뒤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 만들어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월 19일 사면불가 방침을 내놓은 문재인 대통령에 “현직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 전직 대통령이 된다. 전직 대통령이 되면 본인이 사면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발언은 강한 후폭풍을 불러왔다. 민주당은 “다음에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정치 보복을 하겠다는 말”이라며 “막말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사면을 받아내지도 못했을뿐더러, 막말 논란에까지 휩싸이며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사면론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통합 화두를 통해 중도 표심 잡기 위한 행보를 하는 것”이라는 해석 기류가 많았다. 하지만 차츰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는 풀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야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꺾기 위한 전술적 카드라는 분석이었다.
‘음모론’을 들고 나온 의원들은 여권의 노림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할 경우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를 지휘한 윤 총장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시작할 것이고, 그럼 보수진영에서 윤 총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져 내부 균열이 발생하게 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의 푸념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항상 상대를 보고 움직인다. 상대를 보고 난 뒤 대의명분을 갖다 붙이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사면 논의의 경우 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통해 윤 총장 등 보수 야권 잠재적 후보들이 뛰게 될 운동장 기울기를 바꿀 수 있다. 국민의힘은 집권세력의 이런 의도를 통찰한 뒤 ‘윤 총장은 우리 앞통수를 때렸지만 뒤통수를 친 배신자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논리로 돌파했어야 한다. 사면 성사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윤 총장에 대한 보호 논리도 살려내는 1타 쌍피 전략을 쓰면 됐는데 당 내부에서 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면 이슈에 대해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결국 대응이 제대로 안됐다.”
#김종인 리더십 다시 도마
안철수 대표와의 연일 난타전에 주호영 원내대표 막말 논란까지 불거진 국민의힘은 1월 21일 나온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결국 나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YTN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1월 18∼20일 실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긍정평가가 전주보다 5.7%포인트(p) 오른 43.6%를 기록, 40% 중반대 수치를 회복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을 제치며 정당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민주당이 2.0%p 오른 32.9%를 보이며, 국민의힘을 8주 만에 앞질렀다. 국민의힘은 3.1%p 내린 28.8%였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2020년 11월 12일 서울 마포구 마포현대빌딩에서 열리는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 정기모임에 강연자로 참석해 환담을 나누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김무성 전 의원.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이에 ‘비대위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당 원로들 중심으로 다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 대선 승리를 위해서도 리더부터 지금 당장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무성 전 국민의힘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을 직격하는 발언을 날렸다. 김무성 전 의원은 1월 21일 마포포럼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전 의원과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초청해 질문을 하던 도중 “단일화를 하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협상은 안 하고 우리 당 후보 뽑아놓고 보자, 이래서 단일화가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당이 벌써 오만에 빠졌다. 우리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데, 착각에 빠져서 우리 당 대표 자격이 있는 사람이 3자 구도 필승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원은 최근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김 위원장을 겨냥해 “당에 오신 지 8개월이 넘었는데, 왜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했느냐. (김 위원장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비대위원장은 공정 경쟁 관리 책임자다. 비대위원장이 누군가를 후보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안철수) 넌 안 돼’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김 위원장에게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1월 20일 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명불허전보수다’ 화상 강연에서 김종인 위원장을 향해 “(김 위원장이) 의원들, 당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좋겠다”며 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문제시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소통 부족을 지적했다.
이어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이 킹메이커이지 누가 킹메이커인가”라며 김 위원장의 킹메이커 역할론도 비판한 뒤 “당이 지도자 중심 정당이 돼서 점점 후진적 모습을 부각한다”고 소통 부재 리더십 구조가 당을 다시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