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알리바바 회장 1월 20일 온라인 상으로 얼굴을 비치며 실종설을 불식시켰지만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윈은 10월 24일 이후 실종설에 휩싸였다. 이날 마윈은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회의에서 “중국 금융당국이 담보가 있어야 대출을 해주는 전당포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공항을 관리하는 데 기차역 관리 방식을 쓸 수 없는 것처럼 과거 방식으론 미래를 관리할 수 없다”고 했다.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 이강 인민은행장 등 중국 정부 주요 인사가 참석한 회의에서 나온 폭탄발언이었다.
11월 3일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은행보험관리감독위원회, 외환관리국 등 4개 기관이 앤트그룹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마윈과 주요 관계자들에 대한 ‘예약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 이후로 마윈의 대외활동은 뚝 끊겼다.
1월 18일 중국 관료 출신 한 소식통은 “마윈은 지금 중국 공산당에 사실상 납치된 상태로 타협이 잘되면 슬그머니 미디어를 통해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타협이 지연되면 실종 기간이 길어진다”면서 “마윈이 자신의 유명세를 믿고 버티면 기업이고 가족이고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 내부엔 중벌주의 성향이 만연해 있다. 마윈이 징역형을 받는다면 징역 18년 정도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됐을 때 마윈이 입는 타격은 두말할 필요 없을 정도로 크다. 시일이 지나면 중국 공산당이 제시한 적당한 선에서 마윈이 타협할 것이다.” 그리고 마윈은 1월 20일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식통은 굴지의 기업인이라도 중국 공산당에 맞설 수 없는 배경적 요인을 설명했다. 그는 “중국 최고지도자에 도전하면 국가 주석급 인사도 한 방에 사라진다”면서 “문화대혁명 당시 국가 주석이었던 류샤오치(劉少奇)는 홍위병에 의해 일거에 제거됐고, 1990년대 중국 양대 세력 중 하나였던 베이징방은 장쩌민(江澤民)이 이끌던 상하이방에 철퇴를 맞고 역사 뒤안길로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또 다른 중국 소식통은 기업인이 중국 당·정 철퇴를 맞은 사례를 언급하며 마윈의 미래를 예측했다. 1월 21일 이 소식통은 “마윈이 얼굴을 드러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다. 소식통은 중국 부동산 재벌 런즈창(任志强) 전 화위안그룹(華遠集團) 회장을 비롯해 샤오젠화(肖建華), 우샤오우휘(吳小暉), 예젠밍(葉簡明) 등 중국 굴지 민영기업 리더들의 천편일률적인 몰락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정책과 시진핑 중국 주석을 비판하다 실종된 뒤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런즈창 화위안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런즈창 전 화위안그룹 회장은 2020년 몰락한 중국 부동산 부호다. 런즈창은 지난해 3월 중국 정부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을 ‘벌거벗은 광대’에 빗댔다. 이 글이 게재된 뒤 런즈창은 실종됐다. 실종 20일 후 중국 정부가 런즈창을 감찰한 사실이 밝혀졌다. 7월엔 당적이 박탈됐다.
실종 6개월 만인 2020년 9월 런즈창은 부패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8년형과 벌금 420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소식통은 “런즈창 행적은 비교적 빠르게 대외에 공개됐다”면서 “그 이유론 런즈창이 모든 것을 빠르게 포기하고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소 거침없는 언사로 ‘대포’라는 별칭을 얻었던 런즈창은 그렇게 몰락했다.
2017년엔 중국 투자회사 밍톈그룹(明天集團)의 샤오젠화(肖建華) 회장이 실종됐다. 중국과 홍콩 매체들은 “샤오젠화가 홍콩 포시즌스 호텔에서 휠체어를 탄 상태로 납치돼 본토로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복잡한 지분 거래를 토대로 금융과 제조업계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100여 개 상장 기업 대주주로 활동했던 샤오젠화는 ‘신비의 사업가’란 별칭을 얻으며 중국 재계 거물로 꼽혔던 인물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샤오젠화의 행적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2020년 중국 당국은 샤오젠화가 이끌던 밍톈그룹과 관련해 “금융시장 안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밍톈그룹 산하 9개 사를 정부가 직접 경영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실종된 뒤 재판정에서 근황을 알렸던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설립자. 우샤오후이는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샤오젠화가 사라졌던 2017년 또 한 명의 중국 부호가 실종됐다. 중국 최대 민영보험사인 안방보험 설립자이자 덩샤오핑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였다. 2017년 체포된 우샤오후이는 징역 18년을 선고받고 자산 105억 위안(한화 1조 7800억 원 규모)를 몰수당했다. 혐의는 불법자금모집이었다. 우샤오후이는 현재도 복역 중인 상황이며 중국 정부는 2020년 9월 안방보험을 공중분해시켰다. 중국 내부에선 시진핑 국가주석이 덩샤오핑 세력에 대한 강력한 견제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소식통은 “과거 북한 신의주 행정특구 장관으로 임명됐던 양빈(楊斌)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 중국 당국의 사법 철퇴를 맞았다”고 덧붙였다. 양빈은 ‘김정일의 양아들’이라 불렸던 네덜란드 국적 화교 기업가였다. 2002년 9월 북한은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고 양빈을 장관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입각의 기쁨도 잠시 양빈은 10월 4일 새벽 중국 랴오닝성 선양 소재 별장에서 중국 공안당국에 연행됐다. 허위투자, 뇌물수수, 사기, 농경 토지 불법 점용 등 혐의였다.
양빈은 체포된 뒤 8개월이 지나서야 얼굴을 드러냈다. 2003년 6월 10일 그가 얼굴을 드러낸 장소는 선양시 중급인민법원이었다. 판결은 한 달 뒤인 7월 14일에 났다. 양빈은 징역 18년과 인민폐 230만 위안 벌금을 선고받았다. 양빈은 즉시 상소했다. 상소 이후 두 달 만에 상소심 결판이 났다. 2003년 9월 7일 하루 만에 심리를 모두 마친 재판부는 한 시간 휴식을 취한 뒤 상소를 기각했다. 양빈은 선양 제1감옥에서 수형생활을 마치고 출소했다.
여기까지 살펴본 케이스들은 모두 중국 당·정이 강력한 사법 조치를 하며 몰락한 부호들이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대부분 중국 부호들의 형량은 공교롭게도 비슷했다. 징역 18년과 벌금이었다. 일요신문은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서 구치소 생활을 했던 한국인 오 아무개 씨로부터 중국의 ‘사법 철퇴’와 관련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 씨는 “구치소에 머물며 양빈을 비롯한 상류층 인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구금당한 뒷얘기들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화교 출신 네덜란드 국적 기업가 양빈, 양빈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은 ‘신의주 행정특구 장관’ 임명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 중국 공안에게 연행됐다. 사진=연합뉴스
오 씨는 먼저 양빈이 감금된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오 씨에 따르면 양빈은 처음 체포된 뒤 ‘허춘란’이라는 조그만 호텔에 감금됐다고 했다. 호텔 방에서 중국 당국 조사를 받았다. 조사 시간을 제외하면 당시 국영공장이 폐쇄되면서 실직한 인부들 여러 명이 일당을 받고 양빈을 지켰다고 한다. 양빈은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불법 행위에 대한 승인과 과오를 반성하라는 강요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중국 정부가 파견한 조사관은 “혐의를 부인할수록 법정 최고형까지 가능하다”며 엄포를 놨다.
오 씨는 “양빈은 변호사 면담은커녕 가족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면서 “혐의가 어느 정도 정리돼 조사가 끝날 때쯤엔 중국 당국이 조사 기간 체류했던 호텔비와 자신을 감시했던 인부들 인건비, 그들의 체류비용 등을 지불하게 했다고 양빈이 말해줬었다”고 했다. 양빈은 랴오닝성 번시시 간수소(구치소)를 거쳐 선양시 간수소로 이감됐고 그 뒤에야 한두 차례 변호사 접견을 허락받았다는 전언이다.
고위급 중국 관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되는 사건도 빈번하게 목격했다는 게 오 씨 주장이다. 오 씨는 “2001년 선양시에 비리 스캔들이 터졌는데 당시 주모자였던 마샹둥(馬向東) 선양 부시장은 사형당했다”면서 “스캔들에 연루된 선양시장, 재정국장, 세무국장, 법원장, 검사장 등은 나와 같은 곳에 수감돼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재를 가족들도 모른다고 했다. 밖에서는 자신들이 실종된지도 모를 것이라며 한탄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실종되는 과정이 거의 데칼코마니처럼 흡사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간수소로 끌려오기 전 모두 3성급 호텔에 체류하며 조사를 받고 반성문을 썼다고 한다. 모든 것을 인정한 다음에야 간수소로 왔다고 했다. 양빈처럼 조사 과정서 발생한 체류 및 부대비용은 자비 부담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양빈이 구금됐었던 허춘란 호텔.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 최초 조사는 ‘3성급 호텔’에서 이뤄진다는 후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오 씨는 “함께 수감돼 있던 중국 고위 관계자들은 ‘만약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조사 범위가 가족까지 확장되는 까닭에 중국 당국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랴오닝성 고급법원장 재직 중 비리 사건으로 체포됐던 톈펑치(田鳳岐)는 자신의 혐의를 극구 부인한 케이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톈펑치가 3성급 호텔과 간수소를 거쳐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자 중국 당국이 톈펑치 부인과 아들은 물론이고 동생까지 수감했다고 했다. 그 뒤에야 톈펑치가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고 가족들은 모두 풀려났다. 톈펑치 본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내가 중국 간수소에 머물 당시 함께 잡혀온 톈펑치 아들이 나와 같은 방을 쓰며 말해준 이야기다.”
오 씨와 복수 중국 소식통들 증언은 일치했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 간부나 기업인, 유명인들이 범죄혐의로 공안 당국에 연행되면, 3성급 호텔 방에 가둬 놓고 조사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의 중국 소식통은 “조사 과정은 끊임없는 자아비판의 연속”이라면서 “공안당국이 제시한 혐의를 인정하지 않거나 자아비판이 없을 경우엔 가족들이 함께 사건에 연루되기 일쑤”라고 했다. 그는 “내 지인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면서 “대부분이 아내와 자식이 구금된 뒤에야 조사관이 불러준 대로 혐의를 인정하고 자아비판을 했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가족을 구하고 자신이 총대를 메는 식”이라면서 “기소 전 조사를 받는 기간엔 변호사 접견도 일체 제한돼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2015년 실종 이후 무사귀환한 ‘중국의 워렌 버핏’ 궈광창 푸싱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중국 당국의 강압적 조사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인사들도 있지만, 당국과 협의 끝에 풀려난 기업인 혹은 유명인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2015년 실종됐던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던 궈광창(郭广昌) 푸싱그룹(復星集團) 창업자 겸 회장이 대표적 예다. 궈광창은 아시아·유럽·북미 전 세계에 걸친 공격적 투자를 바탕으로 푸싱그룹을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인이었다.
2015년 12월 중국 소셜미디어엔 궈광창이 상하이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는 목격담이 등장했다. 푸싱그룹 측은 당시 궈광창이 사법당국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얼마 뒤 궈광창은 회사로 복귀했다. 그가 실종됐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내부에선 시진핑 주석이 선포한 ‘부패와의 전쟁’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돌았다.
2016년 1월엔 상하이 패션업체 미터스본위 창업자 저우청젠(周成建)을 둘러싼 실종설이 불거졌다. 미스터본위는 저우청젠과 연락이 끊겼다고 발표했다. 회사 주식 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중국 매체 차이나데일리는 저우청젠이 경찰에 구류돼 내부자거래와 주가조작 관련 사건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주일 뒤 미스터본위는 선전 증권거래소에 저우청젠의 복귀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저우청젠의 구류 사유나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로 남았다. 중국 현지 소식통은 “궈광창이나 저우청젠의 경우엔 ‘해피엔딩(?)’으로 조사가 마무리된 것”이라면서 “중국 당국 조사를 받았을 경우 이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 관료 출신의 한 소식통은 “그간 사례들을 따져봤을 때 마윈은 비극적 결말과 해피엔딩 사이 어느 중간 지점에 있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그가 실종된 기간을 따져보면 ‘비극적 결말’을 맞은 기업인들과 비슷했고, 온라인을 통해 얼굴을 드러낸 상황은 현업에 복귀한 기업인과 비슷하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1월 20일 마윈이 온라인상으로 얼굴을 비쳤다. 이것은 중국 당국과 마윈 사이의 어느 정도 타협이 이뤄졌다는 뜻이다. 타협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타협이 결렬됐다면 마윈은 어느 날 갑자기 법정에 등장해 ‘징역 18년’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런즈창과 양빈이 정확히 그랬다. 그럴 경우 세계적으로 입지전적인 업적을 내세우는 기업인 마윈의 커리어는 사실상 막을 내리는 셈이었다. 마윈의 엄청난 커리어를 가운데 두고 마윈 본인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피 말리는 협상이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현 상황으로 봤을 때 1차적인 타협이 이뤄진 모양새며, 결론이 맺어질 때까지 마윈은 소극적인 행동범위 안에서 공식 활동을 펼칠 것으로 본다.”
마윈이 상장 예정인 앤트그룹, 중국 공산당의 3각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 마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진=연합뉴스
협상 과정과 관련해선 여전히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없다. 다만 유추할 만한 대목은 미국 언론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12월 20일 미국 언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윈이 중국 공산당 압력에 이기지 못해 기업 지분을 넘기겠다고 제안했다”면서 “중국 정부는 마윈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마윈이 중국 당국에 소환됐을 때 “국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상장 예정인 앤트그룹 지분 일부를 중국에 넘기겠다”면서 “플랫폼을 가져가도 된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보도에 대해 앤트그룹 대변인은 WSJ에 “지분 제안 등은 내부 기밀이어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기업인은 “앤트그룹에 대한 부분적인 국유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 기업인은 “중국 개혁개방 이후 민영 기업인들은 장쩌민 전 주석이 제창한 ‘3개 대표론’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면서 “민영 기업인들이 전성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수난사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쩌민이 2000년 ‘3개 대표론(중국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광대한 인민 근본 이익을 대표한다는 정책 이념)’을 공식화하면서 굴지의 민영기업가들이 공산당으로 편입됐다. 3개 대표론 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중국 민영 기업 총수들이 공산당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총수들의 ‘힘자랑’이 이어졌고, 급기야 공산당은 철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굴지의 부호로 성장하더라도 공산당 눈 밖에 나면 가차 없이 숙청당하고 재산이 몰수된다는 것을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군기잡기’ 미명 아래 눈 밖에 난 민영기업 옥죄기로 몰락하는 기업인들이 속출하는 양상이다.”
베이징의 유력 소식통은 중국 당국이 마윈을 비롯해 민영기업 총수들을 강력히 압박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중국 당국은 기업인들이 공산당 권위에 도전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사기업이라도 공산당 영도력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끊임없이 기업인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기업인이 공산당에 도전하는 말을 툭툭 뱉거나, 공산당이 민영기업 이익 공유를 요구했을 때 응하지 않고 빙빙 둘러 피하려고 하면 중국 공산당은 가차 없이 행동에 들어가고 있다”면서 “최근 이슈가 된 마윈의 경우엔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춘 기업인이다. 마윈의 존재감이 강한 만큼, 중국 당국은 심혈을 기울여 그간 활용했던 방식을 총망라했을 것이다. 유례없이 강력한 압박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