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와 FA 협상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이대호를 만났다. 사진=이영미 기자
1월 19일 오후 부산에서 이대호를 만났다. FA(자유계약) 신분이라 현재 소속이 없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듯이 그는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 올 시즌을 뛰고 싶어 한다. 구단도 이대호가 필요한 상태다. 문제는 협상 과정이다. 이대호에 의하면 최근 롯데 구단과 1차 협상을 가졌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고갈 수는 없었을 터. 서로의 생각을 전하며 탐색전을 마쳤을 뿐이다. 곧 2차 협상을 가질 예정이지만 문제는 2월 1일 스프링캠프 시작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
이대호는 지난 연말 선수협 회장 판공비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이후 한 시민단체로부터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당하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선수 생활 마지막 FA를 앞둔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이대호가 느꼈을 인간적인 아픔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반성과 깨달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대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정말 오랜만에 인터뷰하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작년에 좋지 않은 일들이 불거지면서 생각도 많아지고, 제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계획도 세우며 가족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매일 산에 오르며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보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야구만 하며 살아 왔는데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더라고요. 가슴이 시린 일들도 있었지만 이번 일들을 계기로 제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민단체 고소 관련)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벌을 받아야겠죠. 하지만 아직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습니다. FA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꾹 참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하루 빨리 FA 계약을 매듭짓고 훈련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아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어렵겠지만 선수협 관련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판공비 관련해서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솔직히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선수협 회장으로 보낸 1년 차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가 왜 2년 차 이후 사퇴하는 마당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판공비가 인상됐던 건 이사회에서 선수들과 논의 후 정해진 것이지 제가 스스로 판공비를 인상시킨 건 아니거든요. 알려진 대로 회장직을 맡는 데 대해 모두 부담을 갖고 있으니 판공비라도 올려서 그 부담을 덜어주자고 했던 건데 그 자리를 제가 맡게 되면서 오해를 받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10대 선수협 회장이 2년 가까이 공석이었어요.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구단별 최고액 연봉자 3명씩을 후보로 올렸고, 이렇게 후보에 오른 30명 중 이대호 선수가 최다 득표자가 돼 새 선수협 회장을 맡게 됐죠. 혹시 당시 자신이 선수협 회장을 맡을 거라고 예상했었나요?
“언젠가는 선수협 회장을 맡게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어요. 하지만 앞에 선배들이 계시기 때문에 선배들이 맡고 난 후 그 다음 저한테 기회가 올 줄 알았습니다. 10대 선수협 회장은 다른 선배한테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총투표에서 제가 최다 득표를 얻어 당선된 거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정관에 회장이 무보수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 판공비 규정 자체가 없다는 점 등의 내용이 명시돼 있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그건 제 잘못이고, 제 부족함 탓입니다. 이전의 관행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부분은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이 회비로 낸 돈을 제가 횡령했다, 안했다 라고 말하는 건 진짜 잘못된 내용입니다. 그건 제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줬습니다.”
―체육 시민단체 ‘사람과 운동’에서는 선수협 정관에 나온 내용을 근거로 이대호 선수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 고발 건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진행 상항은 자세히 모릅니다. 제 변호사한테 일임해놨고 아직까지 조사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아직 조사도 안 받았고, 결과도 안 나왔는데 자꾸 추측성 이야기가 나도는 게 안타깝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면 제 입으로 먼저 말씀드릴 테니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대호는 선수협 판공비 논란에 휘말리며 해명에 나서야 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대호는 팬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부분을 아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련의 일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야구인생을 돌아봤고, 자신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제대로 깨달았다고 말한다.
“선수협에서 받는 판공비를 모아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 기부했다면 팬들도 제 입장을 더 이해해줬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하셨던 걸로 압니다. 돈도 많이 받고 야구하는 선수가 왜 그런 돈(판공비)까지 욕심을 냈느냐고 비난하신 이유도 잘 알고 있어요. 이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는 해마다 봉사활동을 했고, 판공비를 모아서든 개인 돈이든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말씀을 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롯데에서만 16년 차임에도 팬들에게, 선수들에게, 구단 프런트에게 다 부족한 선수였더라고요.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보내고 있지만 좋은 교훈도 얻었습니다. 정말 인생 공부 진하게 하고 있는 중이에요.”
―FA 관련해서도 궁금한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 구단과의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새해 들어 한 번 만났습니다. 서로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자는 대화를 나눴고, 긍정적인 답변도 받았습니다. 저로선 기다리는 입장이라 하루라도 빨리 계약이 성사됐으면 좋겠어요. 2월 1일 캠프 전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FA 신청을 하면서 다른 팀과의 협상도 계획에 포함됐었는지요?
“전혀요. FA는 선수의 권리라 신청하게 된 거죠. 만약 구단에서 제가 FA 신청하기 전에 재계약을 제안했다면 저는 FA 신청 안 했을 겁니다. 구단에서 아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FA를 신청한 것이죠. 하루 빨리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계약 기간과 계약 규모 중 어떤 게 더 중요한가요?
“기간이나 계약 규모는 신경 안 씁니다. 저는 구단에서 저란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롯데란 구단이 이대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걸 알고 싶어요. 그 진심이 느껴지면 다른 건 크게 신경 안 쓰일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결국 구단이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계약 기간과 연봉 아닐까요?
“분명히 있겠죠. 그런데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 아시죠? 저는 그걸 보고 싶은 겁니다. 누가 봐도 이대호 하면 ‘롯데맨’이잖아요. 계약이 늦어질수록 구단도, 저도 마음이 급해지거든요. 그래서 빨리 계약하고 싶은 것이겠고요”
―구단과의 첫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나요?
“롯데에서도 제가 필요하다고 했고, 저도 롯데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롯데 우승입니다. 그걸 이루려면 롯데 선수로 뛰어야 하잖아요. 요즘에는 많이 지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요. 프로야구를 2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어요. 몸을 만들면서도 힘이 듭니다. 마음이 편해야 운동도 잘 되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롯데와의 계약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계약이 안 되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잖아요. 가끔은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야구를 계속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그동안 프로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아픈 걸 참고 뛰면서 제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잘못으로 모든 걸 잃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도 사람들 만나는 게 쉽지 않아요. 가끔은 산을 타다가 마주치는 팬들이 제게 “이대호 선수, 힘내세요”라고 말해줄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돈 많이 받고 야구하는 선수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이대호는 자신이 프로에 입문했을 때의 목표가 ‘3할 30홈런 100타점’이었다고 말한다. 그 목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선수 생활 마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그가 이룬 기록과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롯데의 레전드이면서도 KBO리그의 레전드로 기억될 그이기에 그가 지금 겪는 일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만간 롯데와의 FA 계약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