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에서 승부차기를 실패한 호아킨은 여전히 프리메라리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사진=레알 베티스 페이스북
그랬던 호아킨이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이고 있다. 월드컵에서 맞섰던 동년배 1981년생인 박지성 이천수 등이 모두 은퇴한 지 오래지만 호아킨은 현역 선수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베티스 소속으로 뛰고 있는 호아킨은 지난 24일 레알 소시에다드전 맹활약으로 다시 한 번 축구계 화제에 올랐다. 팀이 0-2로 지고 있는 시점, 호아킨은 팀의 마지막 교체선수로 운동장을 밟았다. 후반 40분 날카로운 크로스로 만회골을 도운 그는 추가시간 동점골을 터뜨리며 경기의 주인공이 됐다. 교체 투입 이후 약 13분 만에 경기 흐름을 뒤바꾼 것이다.
2000-2001시즌부터 성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호아킨은 21시즌째 팀 내 주요 전력으로 활약 중이다. 현 소속팀 베티스는 호아킨의 친정팀이다. 베티스에서 월드클래스 윙어로 성장, 2006년 이적하며 팀을 떠났다. 발렌시아, 말라가, 피오렌티나 등을 거쳐 2015년 베티스로 복귀해 주장직을 맡고 있다. 축구계 몇 안 남은 ‘로맨티스트’로서 면모도 과시하고 있다.
2021년, 한국나이로 마흔을 넘긴 호아킨은 단순히 자리만 차지하는 노장이 아니다. 이번 시즌 팀이 치른 리그 20경기 중 10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벤치를 지킨 경기는 4경기뿐이다. 1월 초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2경기 결장 이후 치른 복귀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국내 팬 사이에서 그는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젊은 윙어들이 득세하던 시기 ‘호아킨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생긴 별명이다. 시작은 하락세에 접어든 호아킨을 조롱하는 의미가 담겼지만 계속 빅리그에서 살아남은 그에게는 이제 긍정적 수식어가 됐다.
만 39세 공격수 이브라히모비치는 이번 시즌 AC 밀란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도 노익장이 거세다. 호아킨보다 2개월 보름 늦게 태어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과거의 날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2018년 5월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 갤럭시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미국 땅을 밟았다. 유럽 무대에서 멀어진 선수가 다시 유럽리그에 복귀해 좋은 모습을 보인 사례가 많지 않은데, 그는 달랐다. 2020년 1월 자신이 10여 년 전 몸담았던 AC 밀란으로 돌아온 그는 2019-2020시즌 하반기 18경기에서 10골을 넣으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번 시즌에는 더욱 순도 높은 골감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근육 부상 등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다. 리그에서만 9경기 12골을 기록했다. 만 39세 공격수의 맹활약에 힘입어 밀란은 ‘몰락한 명문’에서 우승 후보로 부활했다. 세리에A 19라운드를 치른 현재 인터 밀란, 유벤투스 등 경쟁자를 따돌리고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로파리그에서도 조별리그 단 1패만 기록하고 32강에 진출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루니(왼쪽)와 달리 1985년생 동갑내기 호날두는 여전히 빅리그 최고 공격수로 활약해 대조를 이룬다. 사진=연합뉴스
오랜 세월 리오넬 메시와 함께 세계 축구를 양분해 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어느덧 베테랑으로 불리는 시기를 맞이했다. 호날두는 오는 2월 5일이면 만 36세가 된다.
지난 9시즌 동안 세리에A 왕좌를 차지한 유벤투스는 이번 시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호날두의 득점포에는 흔들림이 없다. 19라운드까지 15경기에 나서 15골을 넣어 경기당 1골을 기록 중이다. 현재 리그 최다골 기록자다. 지난 시즌 같은 기간 넣었던 14골보다 1골이 많다. 30대 중반 베테랑이 됐지만 여전히 팀 내 핵심이자 가장 위협적인 공격수다.
호날두의 건재는 동갑내기 공격수 웨인 루니가 최근 현역 은퇴를 선언해 더욱 대조된다. 호날두와 루니는 20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함께 열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를 거치며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을 이어간 호날두와 달리 루니는 잉글랜드 에버튼(2017~2018), 미국 DC 유나이티드(2018~2019) 등을 거쳐 2부리그 소속 더비 카운티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에 가까운 나이가 된 노장 스타들의 활약을 보며 팬들은 과거를 추억하거나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한다. 스타들의 자기 관리뿐 아니라 스포츠 과학, 의료 기술 등의 발달로 선수생활은 더욱 연장되고 있다. 노장 스타들의 활약은 스포츠를 즐기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