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낙연 체제를 향한 여권발 당권 레이스의 막이 오르고 있다. 재보궐 선거 정국에서도 여권 차기 당권 주자들은 저마다 몸풀기에 나서며 물밑 경쟁의 불씨를 댕겼다. 4월 재보선 이후 치러질 이번 전당대회는 오는 2022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총지휘하는 중책을 맡는다.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 희생양이냐’를 가르는 분기점인 셈이다. 임기 말 친위 내각 못지않게 ‘순장조 당 대표’는 여의도 권력구도 재편의 핵이 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참좋은지방정부위원장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2020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막차에 탑승하라.”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는 8명에 달한다. 5선의 송영길(인천 계양을), 4선의 우원식(서울 노원을) 홍영표(인천 부평을) 의원 등 3인방은 지난해 말부터 출마 채비에 들어갔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접은 재선의 박주민(서울 은평갑) 의원도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5선의 설훈(경기 부천을), 3선의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도 당권 도전을 놓고 고심 중이다.
정국 변수에 따라 친문(친문재인)계 핵심인 노영민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퇴임 후 권한대행을 맡을 김태년 원내대표도 출마를 권유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원내대표의 경우 전당대회 공정성 시비가 불가피한 만큼, 실제 출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민주당은 4·7 재보선을 시작으로, 5월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 7∼8월 대선 경선까지 숨 가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당권 도전자 중 친문 직계는 홍영표 의원과 노영민 전 실장이다. 홍 의원은 제2의 부엉이 모임 격인 ‘민주주의 4.0 연구원’ 주축이다. 이곳에는 50명 안팎의 친문계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노 전 실장은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내며 문재인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활약했다. 차기 대선을 1년여 앞둔 친문계 앞에 △민주당 장악 △제3의 후보론 찾기 △문 대통령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방지 등 3대 과제가 놓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중 최소 한 명은 전당대회에 완주할 것으로 보인다.
치고 나간 쪽은 홍영표 의원이다. 홍 의원은 지난해 말부터 물밑에서 차기 당권 행보를 개시했다. 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장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과 접촉면을 넓혔다. 특히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를 ‘특례시’로 지정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하는 데 핵심 역할도 했다. 수도권 출신이지만, 전국적 표심을 얻을 수 있는 우군을 만든 셈이다.
여당 관계자들은 홍 의원 장단점으로 ‘강한 추진력’과 ‘낮은 인지도’를 꼽았다. 그는 국정 난맥상이 최고조에 오른 지난해 12월 초 추미애 전 법무부·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 “영원히 장관을 하겠느냐”라며 여권 인사 중 처음으로 교체를 언급했다. 그는 ‘이낙연·이재명’ 양강 구도와 관련해서도 “제3의 다크호스가 나타날 수 있다”며 친문계의 제3후보론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인지도가 턱없이 낮다는 점은 홍 의원이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힌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20년 11월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눈여겨볼 대목은 노 전 실장의 출격 여부다. ‘노영민 출마설’은 올해 초 여의도를 뜨겁게 달궜다. 친문 분화의 서막을 열 수 있어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도 노 전 실장 출마 여부에 대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문 강경파의 귀환으로 문재인 정부 레임덕을 막는다면, ‘선 당 대표·후 충북도지사 출마’ 플랜도 작동할 수 있다.
최근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전셋집을 구한 노 전 실장은 강력한 차기 충북도지사 후보다. 충북도 한 관계자는 “3선의 이시종 현 충북도지사는 이번을 끝으로 퇴임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역 정가에는 ‘다음 차례는 노영민’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충북도지사에 도전하는 노 전 실장에게 차기 당권은 일종의 옵션이다.
원조 친문계인 노 전 실장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잠재적 경쟁자인 홍영표 의원 등과 함께 한때 문 대통령 최측근 그룹이었던 ‘6인회’의 멤버다. 이들 외에 윤호중 김태년 의원, 박남춘 인천시장도 6인회다. 공교롭게도 이 중 3인(홍영표·노영민·김태년)이 차기 당권 후보군이다. 3인방 가운데 복수 출마자가 생긴다면, 친문계 분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노 전 실장이 설사 포스트 이낙연 체제를 이어받는다고 해도 충북도지사에 출마할 경우 2년 임기를 채울 수 없다는 점이다. 강경파 친문계의 당 복귀가 임기 말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 유리할지도 미지수다. 비주류 내부에선 “당은 이미 ‘친문 삼각편대(김태년 원내대표·박광온 사무총장·홍익표 정책위의장)’에 휩싸였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친문계의 당 장악에 대한 비판이 많은 만큼, 6인회 멤버 3인방이 교통정리에 나설 수도 있다.
이들 말고도 친문계는 또 있다. 97(90년대 학번·70년대 생) 세대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교통정리를 한 뒤 차기 당권 도전으로 사실상 턴했다. 그는 서울시장 불출마 입장에서도 2년 전 최고위원 출마를 언급하며 “(당시) 시대교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었다. 이전과는 다른 시대를 만들고 싶다는 의미였다”며 “무리일 수도 있는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최고위원 투표에서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 기세를 몰아 서울시장 준비를 위한 조직을 가동했지만, 끝내 불출마를 택했다. 박주민 돌풍 재연을 가늠할 풍향계는 재보선 결과와 97세대 조직력이다. 여권 안팎에선 교통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박 의원과 박 전 장관 측이 ‘조직을 품앗이하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양측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조직 일부를 주고받는 식이다. 문 대통령 지지층과의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사이다 발언으로 팬덤을 몰고 다니는 정청래 의원도 친문 성향으로 분류된다. 차기 당권 주자 가운데 과반이 친문계인 셈이다.
우원식 의원이 지난해 9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가균형발전 및 행정수도완성 TF 지역순회토론회 중간보고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운동권 그룹도 움직이고 있다.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애초 차기 외교부 장관을 노렸지만, 당권 도전으로 선회했다. 인천시장 출신인 그는 최근 부산시장 보궐선거 최대 이슈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수도권과 호남에 이어 영남권으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내 최대 계파 중 하나인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의 우원식 의원 보폭도 넓어지고 있다. 을지로위원회 1대 위원장인 그는 운동권뿐 아니라, 진보개혁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 지지도 받고 있다. 현재 당의 국가균형발전 및 행정수도 완성 추진 단장인 그는 1월 19일과 21일 강원과 부산을 각각 찾아 당원들과 접촉면을 넓혔다.
우 의원은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당권 행보에 날개를 달았다. 이에 따라 5월 전당대회에서 친문 직계와 당권파 친문계가 맞붙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친노계 원로인 이 전 대표는 당권파 친문계로도 분류된다. 민평련의 한 축인 설훈 의원도 차기 당권 도전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우원식·설훈 의원이 동시 출격할 경우 민평련 등 운동권 그룹 분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핵심 변수는 문심(문 대통령 의중)이다. 민주당의 약 80만 명의 권리당원 중 친문계가 20만 명에 달한다. 누가 문심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는 얘기다. 당 안팎에서 노영민 전 실장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직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자, 친문계 핵심인 노 전 실장이 문 대통령 사인 없인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낮다.
야권 한 관계자는 “최근까지 대통령 옆에 있던 최측근이 상의 없이 (당 대표 경선)에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심에 따라 친문계 분화도 요동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 레임덕과 관계없이 당권 주자들은 문재인 마케팅에 사력을 다할 전망이다. 포스트 문재인도 돌고 돌아 ‘기승전·친문’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