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관련 유튜브를 운영 중인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는 이번 게임스탑 사태를 이렇게 평했다. 게임스탑은 미국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다. 오프라인에서 비디오 게임기나 게임 타이틀을 판매하고 중고 거래도 한다. 또한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책, 피규어 등도 판매한다. 전 세계 약 7000개 매장을 보유한 게임스탑은 미국 도시마다 하나씩은 볼 수 있는 흔한 가게다. 2020년 1월 이 특이할 게 없는 업체가 현재 모든 이슈의 중심에 있다. 바로 공매도와의 전쟁 때문이다.
게임스탑은 게임과 피규어 등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상품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이다. 사진=김태현 기자
미국 최대 커뮤니티 레딧 내에는 주식갤러리와 비슷한 WSB(Wallstreetbets)라는 게시판이 있다. 사실 게임스탑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서히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WSB에서 게임스탑 주식을 주목하게 됐다.
게임스탑이 플레이스테이션5 등 새로운 플랫폼 출시로 실적이 기대되는 데 반해 현재 저평가받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영화 ‘빅쇼트’ 주인공의 실제 모델 마이클 버리도 2019년부터 게임스탑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온라인 쇼핑에 강한 라이언 코언이라는 새로운 임원이 영입됐다는 호재도 발생했다. 주가도 20달러에서 40달러 정도까지 들썩였다.
이때 오프라인 게임 유통의 전망이 좋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헤지펀드인 시트론 리서치, 멜번캐피털 등 공매도 세력이 등장한다. 시트론은 “지금 주식을 사는 사람은 포커게임의 멍청이며 주가는 순식간에 20달러까지 폭락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헤지펀드의 공매도 시작 발표가 역사적인 사건의 발단이 됐다.
특히 시트론의 조롱이 결정적이었다. 과거부터 공매도 세력에 대한 반감이 있던 WSB 사용자들이 ‘다 같이 게임스탑을 사 모으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게임스탑을 두고 주가를 올리려는 개미 투자자와 내리려는 공매도 세력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무조건 사고 게시판에 인증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 때문에 게임스탑은 40달러에서 80달러까지 상승세가 이어졌다. 이때 테슬라 대표이자 개미투자자들의 추앙을 받는 일론 머스크가 “게임스통크!!(Gamestonk!!)”라며 ‘게임스탑을 맹폭격하라’는 트윗을 올리자 가격은 100달러에서 150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공매도는 기본적으로 보유할수록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 주식을 빌려와서 팔아야 하고 그 사이 이자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물 주식은 가진 가치가 0 이하로 떨어질 수가 없어 손해 한계가 있다. 10달러에 산 주식이 회사가 파산해 0원이 되더라도 손해는 10달러 이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공매도는 가격이 치솟은 만큼 그 가치대로 다시 매수해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손해가 무한대다. 게다가 게임스탑은 공매도 양이 전체 주식의 140%에 달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WSB 개미들 주가가 얼마나 올라야 헤지펀드가 버틸 수 없는지를 정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40달러부터 공매도에 참가한 헤지펀드는 주가가 175달러 넘어가면 버티기 힘들다는 추정치가 나오기도 했다. 만약 그 이상 올라간다면 공매도 세력이 공매도를 포기하고 주식을 돌려주기 위해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여야 한다. 기관이 숏(공매도) 포지션을 접고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다. 이를 숏 스퀴즈라고 한다.
게임스탑 가격은 레딧 개미들이 매수하기 시작하면서 한때 50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사진=구글 검색화면 캡처
과거 2008년 폴크스바겐 숏 스퀴즈 사태가 유명한 예다. 포르셰가 폴크스바겐 인수를 시도하면서 가격 괴리가 발생하자 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포르셰가 폴크스바겐 지분 74.1%를 확보했다고 발표하면서 공매도 세력은 패닉에 빠졌다. 포르셰가 확보한 지분 74.1%와 정부가 보유한 20.2%를 빼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5.7%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매도한 양보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수가 적어지자 주식을 돌려줘야 하는 공매도 세력은 높은 값이라도 무조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폴크스바겐 주가는 하루에 125%, 이틀 사이 500% 급등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숏 스퀴즈 폭등으로 폴크스바겐은 잠시나마 글로벌 시총 1위 기업이 되기도 했다.
WSB 등 개미투자자들은 높아진 가격을 보고 폴크스바겐 숏 스퀴즈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헤지펀드가 버틸 수 있는 가격 선을 넘어가 있고, 이 가격 이상 개미들이 안 팔고 버티면 기관이 다시 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매도 물량이 너무 많아서 숏 스퀴즈가 일어나면 폴크스바겐 이상의 엄청난 가격 상승이 예상되기도 했다. 전 세계 개미들이 게임스탑 매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게임스탑 공매도 이자비용도 폭증하면서 시간은 개미편이 되고 있었다.
WSB 등 개미투자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1월 초 200만 명대에서 1월 25일 이후에는 하루에 70만~80만 명씩 늘더니 29일 기준으로 500만 명에 가까워졌다. 개미군단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게임스탑은 한 달 새 18배를 넘었지만 상승은 끝이 없었다. WSB 개미군단의 진격 속에 헤지펀드 가운데 일부는 손을 들고 나갔다. 멜빈 캐피털은 약 40억 달러 손실을 보고 공매도 물량을 청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전체 물량의 120%가 공매도 된 상태여서 ‘털어먹을 기관은 많다’는 게 개미군단의 생각이다.
이들은 수익도 수익이지만 ‘설사 0원이 되더라도 공매도 세력을 털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절대 안 팔고 홀딩하겠다’는 글이 넘쳐난다. WSB에서 게임스탑 주식 얘기를 초기 꾸준히 올렸던 유저는 약 6000만 원 정도로 시작해 현재 재산이 300억 원이 됐다. 그는 ‘단 1센트도 팔 생각이 없다’는 글을 올렸고 ‘강철심장’이라며 레딧 회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WSB 등 개미투자자의 타깃은 게임스탑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매도 물량이 많고 공매도에 따른 이자비용이 높은 주식을 선별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블랙베리, 노키아 등 과거 IT기업이나 극장 체인인 AMC엔터, 마리화나 업체인 선다이얼 그로워스 등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개미투자자들이 게임스탑 다음 타깃으로 꼽은 AMC엔터는 하루 만에 400% 급등했다.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는 “게임스탑 주식이 현재 유통 주식 이상으로 공매도가 됐다는 점을 포착해 월스트리트의 허를 찌른 점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물 간 IT기업, 코로나 시대 극장 체인사업, 재정이 안 좋은 대마초 기업 등 장기 전망이 썩 좋지는 않은 기업들을 WBS 등 개미투자자들이 ‘닥치고 매수’했다. 공매도 세력을 털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았고 실제로 그들은 잭팟을 터트리고 있다. 이 와중에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27일 호주 주식시장에 상장한 광산업체 GME 리소스가 게임스탑의 약자인 GME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장 초반 53%가 오른 0.115달러(127원)를 기록하다 정오 기준 다시 0.09달러(99원)로 급락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번 사건을 일종의 계층 갈등이자 시위로 규정했다. 김 대표는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나 의회 난입 사건 등으로 알 수 있듯이 미국 사회는 현재 다양한 계층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가진 자의 대표인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들에 그 화살이 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08년과 다르게 더 이상 월스트리트에 당하지 않겠다는 개인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 같다”면서 “똑똑해진 개미들이 일종의 ‘돈으로 참여하는 시위’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하원의원은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매수를 중지시키자 청문회를 하도록 이끌겠다고 말했다. 사진=AOC 트위터 캡처
28일 게임스탑 가격이 400달러를 넘어서자 주식 앱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거래를 정지시켰다. 규제를 극도로 싫어하는 미국 특유의 문화와 정반대되는 결정이었다. 초유의 사태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등 미국 하원의원들은 청문회를 예고하기도 했다. 특히 게임스탑에 공매도 포지션이었던 멜빈 캐피털에 자금을 댄 시타델과 로빈후드는 수익으로 연결돼 있어 ‘공매도 세력이 빠져나오기 위해 로빈후드를 통해 수를 쓴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로빈후드 고객들은 로빈후드를 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28일 게임스탑 가격은 한때 500달러 근처까지 폭등했다가 29일 다시 125달러를 찍고 반등해 한국시간 새벽 3시 220달러 선에서 거래가 되고 있다. 현재 공매도 물량은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크게 변화가 없는 상황으로 약 120%에 달한다. 여전히 숏 스퀴즈가 발생해 다시 한 번 주가가 폭등할 가능성은 남아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008년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라더스 등 투자은행 파산처럼 영향이 크진 않지만 헤지펀드 파산이 증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8년 LTCM이란 헤지펀드가 파산하면서 경제에 큰 악영향을 준 바 있다. 최근 뉴욕 증시 급락도 파산 위기에 빠진 헤지펀드가 돈이 되는 자산을 매각하면서 발생했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언론에서도 WSB 등 개미투자자들을 일제히 다루면서 ‘공매도 함부로 하지 마라’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 대표는 게임스탑 같은 주식에 투자하는 것에는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높이 올라간 주가를 도대체 누가 감당할 거냐는 거다. 물론 앞으로 주가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현재 게임스탑의 주가가 그 회사가 가진 펀더멘털에 비해 고평가되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라면서 “결국 그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출구전략을 고민하게 될 텐데 눈치게임에서 패해서 큰 손실을 보게 될 누군가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