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같은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며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을 달성한 SK 와이번스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SK그룹이 프로야구단을 매각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난 25일 조선일보의 단독보도가 있었고 이후 SK그룹과 신세계그룹 양측의 발표가 바로 이어졌다. 매각이 공식화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이로 미뤄볼 때 이미 전부터 양쪽 간 극비리에 물밑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K 와이번스의 매각 소식이 나오자 야구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충격적이다”라며 놀라워했다. 한 야구계 원로는 “정말 놀랐다. 매각 작업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이뤄졌다”며 “SK 같은 구단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KBO 10구단 중 일부 구단의 ‘매각설’은 그동안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사유는 어려운 자금 사정, 팀 내 혼란, 성적 부진 등 다양했다. 하지만 SK 와이번스는 논외였다. 재계 3위 SK그룹이 이끄는 구단인데다 지난 20시즌 동안 한국시리즈 8회 진출, 4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린 명문이기 때문이다. SK 와이번스는 또 KBO 역사상 한때 ‘왕조’를 구축한 몇 안 되는 구단 중 하나였다.
다만 신세계그룹은 이전부터 야구단 인수 의사를 내비쳐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 대상이 SK 와이번스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구단의 구성원 그 누구도 매각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SK 와이번스는 지난 시즌 종료 직후 김원형 신임감독을 선임했고, FA로 최주환을 영입했으며, 외국인 선수들과 계약도 마무리 지었다. 최근에는 직원 채용 공고까지 냈다. 누가 봐도 의욕을 갖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매각 시기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스포츠 해설위원은 “새로운 시즌을 눈앞에 뒀고 스프링캠프도 SK 유니폼을 입고 해야 하는 이때 전격적으로 구단을 넘기다니, 시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해설위원은 이어 “통상적으로 한 스포츠 구단이 간판을 바꿔다는 것은 한 시즌이 끝난 직후 이뤄진다. 새로운 운영 주체가 자신들의 색을 입힐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SK는 선수 영입, 감독 선임 등이 모두 마무리된 상황 아닌가. 매각 계획이 있었다면 최소 외국인 선수 계약 작업이라도 일부 미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결국은 구단 매각과 인수는 두 그룹의 최고위층의 결단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야구 지도자는 “한국 프로야구 한 구단이 역사를 마감하는 일”이라며 “오너끼리 논의해 결정된 일이라고 하던데, 한두 사람의 의사에 의해 구단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SK 와이번스 매각을 바라보며 20년 전 이들의 창단 과정을 되돌아보며 비난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공짜로 얻은 구단을 비싸게 팔았다는 취지다. SK는 2000년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하면서 재창단 형식을 갖췄는데 창단 과정에서 인수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20년이 지난 지금, SK는 신세계에 야구단을 넘기며 13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쥐게 됐다.
2000년 당시 전북 연고지인 쌍방울 레이더스가 자금난에 처하자 SK를 향해 구단 창단 제안이 이어졌다. SK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쌍방울 인수는 거부했다. 결국 쌍방울이 해체됐고 SK는 재창단을 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쌍방울에서 웨이버 공시된 선수들은 SK와 개별적으로 다시 계약을 맺었다. 당시에도 SK는 창단 과정에서 일부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다. 물론 1300억 원이 넘는 이번의 매각 가격은 SK의 지난 20년간 운영의 결과지만 창단 과정을 되돌아볼 때 개운치 않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구단을 운영해온 SK텔레콤 측은 “아마추어 스포츠 후원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원론적인 내용만 오갔다. SK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신세계의 의지가 대단했다”며 “우리보다 훨씬 구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며 우리는 대신 아마추어·비인기스포츠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야구인은 “결국 프로스포츠를 비즈니스로 생각한 것”이라며 “SK그룹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면서 ‘먹을 것’이 많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과거 SK그룹은 또 다른 인기 프로스포츠인 프로축구단에서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바 있다. SK그룹이 운영하는 프로축구단 제주 유나이티드의 갑작스런 연고 이전으로 팬들의 큰 반발을 샀던 것.
이번 구단 매각을 두고 부정적 평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새 운영 주체인 신세계그룹에 대한 기대감이 이어지고 있다. 앞의 야구인은 “결국 야구판을 더 키울 수 있는 기업이 팀을 맡는 것이 좋다”며 “통신(SK)보다 유통(신세계)이 더 확장성이 있기에 야구와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이 나올 수 있다. 신세계의 공격적 투자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이들은 이번 매각을 아쉬워하고 있다. 김성근 전 감독, 선수 출신 정근우, 박재상 전 코치 등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SK의 4대 사령탑을 지낸 이만수 전 감독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밝은 목소리로 전화기를 들었지만 SK에 대해 묻자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어렵게 입을 뗀 그는 “아쉽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나는 프로야구 현장 밖에 있는 사람이기에 섣불리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며 “지금은 그저 새롭게 바뀔 구단이 잘 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작별 고하는 SK 와이번스가 남긴 기록 ◇통산 전적=2755경기 1437승 1331패 56무 승률 0.532 한국시리즈 우승 4회, 준우승 4회, 정규리그 우승 3회 ◇영구결번=26번 박경완 ◇타자 부문 △최다출장=최정 1781경기 △최다안타=최정 1762개 △최다홈런=최정 368개 △최다타점=최정 1180타점 △최다득점=최정 1102점 △최다도루=정근우 269개 ◇투수 부문 △최다승=김광현 136승 △최다패=김광현 77패 △최다세이브=정대현 99세이브 △최다홀드=정우람 128홀드 △최다등판=정우람 600경기 △최다선발=김광현 276경기 △최다탈삼진=김광현 1458개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