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부터 KT파워텔노조는 매각 철회를 위한 집회·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허일권 기자
#19년 만에 통신자회사 매각한 KT
지난 1월 28일 KT새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KT파워텔 매각이라는 중대한 경영 결정에 대해 노동자와 협의조차 없었다는 것은 문제”라며 “KT파워텔에 이어서 KT텔레캅, KT서브마린 등의 자회사도 매각설이 돌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들이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KT파워텔 노동조합은 매각 철회 주장하며 집회·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사측이 KT 본사로부터 고용·임금 관련 내용을 담은 협상안을 받아서 노조에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노사는 주 2회 정례회의를 통해 타협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앞서 1월 22일 KT는 이사회를 개최해 KT파워텔 지분 44.85%를 406억 원에 아이디스에 매각하기로 의결했다. KT와 아이디스는 3월 말까지 KT파워텔 주주총회, 규제기관 승인 등을 마무리하고 계약을 종결할 예정이다.
노조에 따르면 KT파워텔의 2020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53억 원, 43억 원이다. 825억 원의 당좌자산, 142억 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자산총계는 999억 원이다. 재무 상황과 실적, 자산 등을 고려하면 헐값에 매각했다는 것이 KT파워텔 노조의 주장이다.
박갑진 KT파워텔 노조위원장은 “신분이나 회사의 변동이 생기면 직원들과 협의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문구가 단체협약에 명시됐다”며 “직원들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561억 원이나 손해를 보고 매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회계법인이 기업가치를 평가한 금액 사이에서 KT파워텔과 아이디스가 협상을 통해 결정했다”며 “매각 관련해서도 KT파워텔과 아이디스가 협의할 부분이지 KT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구현모 KT 대표가 통신 자회사 KT파워텔 매각을 결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사업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사진=최준필 기자
#신호탄 쏘아 올린 구현모 대표
이석채·황창규 전 회장 체제에서도 대대적인 구조개편을 진행했지만, 본업인 통신 자회사들은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4년 황창규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830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KT렌탈과 KT캐피탈 등 비통신 계열사 17곳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석채 전 회장은 KT가 소유한 건물 39곳을 매각했다.
이번 KT파워텔 매각은 구현모 대표를 포함해 그룹 내 핵심 경영진 일부만 공유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전언이다. KT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정이란 반응이 나온다.
어느 정도 파열음이 예상됐음에도 일사천리로 KT파워텔을 매각한 것을 두고, 통신업계 내에서는 KT가 신사업 중심의 사업 재편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올해 신년사에서 구현모 KT그룹 대표는 “KT의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강점을 경쟁력으로 성장성이 큰 신사업에 도전하겠다”며 “KT를 단순 통신 기업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구현모 대표는 취임 이후 미디어·커머스·콘텐츠 등 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KT는 콘텐츠 전문 기업 ‘KT 스튜디오지니’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신설 법인은 KT그룹이 보유한 미디어 플랫폼과 콘텐츠 역량 간 시너지를 도모하고, 그룹 콘텐츠 사업을 총괄할 예정이다. 웹소설·웹툰 전문 자회사 스토리위즈를 통해 발굴한 원천 지적재산권(IP)을 중심으로 국내 제작사들과 협업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나선다. KT는 음원 유통 플랫폼 ‘지니뮤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즌’, 엔터테인먼트 채널 운영사 ‘스카이티브이(skyTV)’ 등도 자회사로 두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가 케이블방송 현대HCN까지 인수를 진행 중”이라며 “그룹사 간 협업을 통해 유료방송 시장 1위 사업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공급·유통까지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7월까지는 KTH와 KT엠하우스 합병을 마무리하고, 유통채널 및 상품 경쟁력을 확대해 모바일 중심의 신사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새로운 기업 간 거래(B2B) 브랜드 ‘KT엔터프라이즈’로 B2B 사업을 몰아줄 예정이다.
다만 KT파워텔 매각을 통해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사물인터넷(IoT)과 모빌리티 시장 부문은 전력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KT파워텔은 “KT그룹 내 모빌리티 IoT를 담당하며, 협력을 통해 모빌리티 분야와 저전력 사물인터넷 표준 기술(eMTC)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KT파워텔 매각으로 인해 사내 전담조직 ‘커넥티드카센터’만 남은 상황이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아이디스가 KT파워텔을 인수한 것도 IoT 기술의 방향성이 모빌리티를 향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KT 내에도 IoT, 모빌리티 조직이 있긴 하지만, 그 규모가 아직 KT파워텔보다는 작다. 앞으로 그룹 내부에서 해당 조직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사업 방향이나 규모가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