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2020년 9월 경남 창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던 50대 여성 김 아무개 씨가 사라졌다. 그녀가 살던 건물에 이상한 악취가 퍼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이 119에 신고했고 문을 개방하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까맣게 부패된 김 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김 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는 나란히 누워 있던 또 한 구의 시신이 있었던 것. 김 씨와 함께 있던 사람은 22세의 박수정 씨(가명), 그녀의 딸이었다. 모녀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딸애는 한 번도 못 봤어요. 나는. 둘이 죽었다 해서 누군가, 딸인지 그때 알았어요. 딸이 여기 와있다는 거.”
이사 온지 6년이나 되었지만 이웃도 낯선 딸의 존재 그리고 사망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도 몰랐던 모녀의 죽음은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게다가 시신 발견당시 현관문과 방문이 노끈으로 묶여있어 외부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데 밖과의 접촉이 차단되어 밀실이 되어버린 방, 그 안에서 모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은 타살과 자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특별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시신 발견 현장의 정황상 모녀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숨지게 하고 자살을 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부검 결과는 사건을 더욱 미궁에 빠지게 했다. 두 시신 모두에서 어떤 외상이나 독극물 반응도 나오지 않은 것. 끝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
가난했던 모녀의 재정 상태로 고독사 혹은 아사를 추정할 수 있었으나 시신 발견 당시 집 안에는 쌀을 비롯한 음식이 남아있어 한동안의 끼니를 해결하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전문가들은 굶어죽는 것을 스스로 택하는 것은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적으로 자살도 타살도 증명할 수 없는 밀실에서의 돌연사 모녀는 왜 이런 비극을 맞이하게 된 걸까.
유령처럼 그 존재를 이웃 사람들도 잘 몰랐던 모녀. 그런데 수소문 끝에 만난 수정 씨의 친구들은 예상 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정 씨는 평소 매우 활달했고 외국어 성적이 좋았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으며 그림 그리는 것 또한 매우 좋아했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사람 돕는 일을 하고 싶다며 요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데 밝은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던 그녀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취재결과 수정 씨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 고교졸업 후 성인이 되고나서 지난 2년간 엄마와 함께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 긴 시간동안 이웃도 몰랐던 수정 씨의 존재,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꿈 많던 소녀는 왜 그 방에서 나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지금은 아무도 발길을 들이지 않는 낡은 단칸방. 벽지처럼 도배되어있는 수정씨의 그림들만이 모녀가 이 곳에 살았다는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기괴하면서도 어딘가 애처롭게 보이는 그림들. 이 그림들은 엄마와 딸이 함께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를 밝혀 줄 단서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비슷한 시기 서울에선 단칸방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선 한 남자가 있었다. 맨손, 맨발로 지하철역 앞에서 팻말을 들고 앉아있던 37살 최동욱 씨(가명).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도와달라는 글씨를 보고 우연히 지나가던 사회복지사가 말을 걸었다.
“어머니의 영혼은 천국에 계시죠. 라고 해서 그럼 어머니의 몸은 어디 계시죠? 하니까 몸은 거기에 계시죠, 그러는 거예요. 거기가 어머님 방이에요? 그러니까 네, 라고 하더라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지사가 동욱씨를 따라 집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서벌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불에 싸여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렇게 동욱 씨 어머니는 사망한 지 반년 만에 발견되었다.
동욱 씨의 설명에 따르면 어머니 장 씨(가명)는 어느 날 팔이 아프다며 돌연 쓰러진 이후 숨을 쉬지 않았다고 했다. 성인이지만 발달장애가 있었던 동욱 씨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숨을 멈춘 어머니의 곁을 그저 지키는 것 뿐. 시간이 지나자 장 씨 주변으로 파리가 날아다니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더 아플까봐 동욱씨는 이불을 가져와 어머니 위에 덮은 후 가장자리를 테이프로 꽁꽁 싸맸다. 그렇게 거대도시 서울의 좁은 단칸방 안에서 동욱 씨와 이불 속 어머니는 얼마간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수정 씨 모녀와 동욱 씨 모자는 왜 단칸방 안의 싸늘한 유령이 되어 세상에 알려져야 했을까. 이번 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최근 발생한 두 사망사건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를 살펴보고 빈부격차의 문제를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