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부터다. 삼정KPMG는 보고서 ‘ESG 경영 시대, 전략 패러다임 대전환’을 통해 “코로나19로 기업은 대기환경 개선, 임직원 감염, 고객 가치의 본질적 변화 등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ESG로의 경영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ESG 경영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로 연결되는 성장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대기업들은 최근 눈에 띌 정도로 ESG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이 석탄 관련 신규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삼성전자 DS(반도체) 사업부문은 ESG를 사업장 평가 기준에 적용하기로 했다. SK그룹은 올해 수소전지 업체 플러그파워를 인수하고, 미국 브라이트마크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설비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친환경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기후 변화나 팬데믹 같은 대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먼저 무너뜨리고, 기업도 더 이상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최근 대기업에서는 ESG를 빼놓고 경영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다. 2020년 11월 열린 세계경제연구원-KB금융그룹 국제컨퍼런스 ‘2020 ESG 글로벌 서밋: 복원력 강한 경제와 지속 가능한 금융의 길’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ESG가 강조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ESG 관련 정책을 제도화하고 있다. 삼정KPMG에 따르면 글로벌 ESG 신규 규제·정책은 2013년 28개에서 2016년 51개, 2018년에는 210개로 증가했다. 최근 들어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점이 눈에 띈다.
해외 기관투자자들도 ESG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ESG 투자 규모는 2012년 13조 3000억 달러(약 1경 4889조 원)에서 2018년 30조 6830억 달러(약 3경 4350조 원)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1월 CEO 연례서한을 통해 “2020년 한 해 동안 ESG의 목적을 가진 기업이 여타 기업보다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확인했다”며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이 지속가능성 프리미엄을 누리며 다른 기업보다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나서 ESG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지난 1월 산업은행은 정책기획부문을 정책·녹색기획부문으로 개편하고, 산하에 ESG·뉴딜기획부를 신설했다. 기업은행도 경영전략그룹 전략기획부 내 ESG경영팀을 신설했다. 금융당국은 기관투자자 수탁자책임 범위에 ESG 요소를 포함하는 내용의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국내 민간 자산운용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ESG 관련 펀드를 출시 중이다. 국내 설정된 ESG 펀드 순자산 규모는 2018년 1451억 원에서 2020년 2월 3869억 원으로 2년 새 2.6배가량 증가했다. 투자 판단 및 기업 가치 측정에도 ESG가 중요 요소가 되고 있다. 삼성증권 ESG연구소는 “글로벌 ESG 투자는 2030년 100조 달러에 이를 전망으로 ESG 투자는 대세가 됐다”며 “주요 신용기관들도 신용등급 평가에 있어 ESG를 주요 요소로 고려하기 시작해 ESG는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봉주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미국, 유럽의 주요 연기금 및 운용사들은 ESG 등급을 포트폴리오 내 투자 비중 조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이에 관련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도 강화하고 있다”며 “이는 ESG 이슈가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 및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며 환경, 사회적 가치 등 ESG의 핵심 철학이 글로벌 이슈로 공론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연기금이 ESG를 투자 요소로 고려하면서 투자를 받는 기업들이 ESG를 외면하기는 어려워졌다. 일부 기업들은 ESG 경영을 추진하고자 ESG 채권까지 발행하고 있다. 일례로 2020년 12월, 삼성카드는 중소가맹점 금융 지원 등을 위해 1000억 원 규모의 ESG 채권을 발행했다. 올해 1월에는 SK하이닉스가 친환경 사업 투자를 위해 10억 달러(약 1조 1195억 원) 규모의 그린본드(친환경 프로젝트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수목적 채권)를 발행했다.
ESG 펀드와 채권이 우후죽순으로 출시되자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 1월, 현대제철이 2500억 원 규모 녹색 채권 발행에 대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을 진행한 결과 예정 금액을 8배나 넘긴 2조 700억 원이 몰렸다. 이에 현대제철은 발행 규모를 5000억 원으로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녹색 채권은 ESG 채권의 하나로 친환경 활동 등 녹색 산업 관련 용도로만 사용이 가능한 채권이다.
일부 기업들은 ESG 경영을 추진하고자 ESG 채권까지 발행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SK하이닉스가 친환경 사업 투자를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건물. 사진=일요신문DB
하지만 ESG 투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수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고, 평가기관들이 각자의 기준에 맞춰 ESG 등급을 매겨 ESG 관련 평가가 일관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되는 ESG 정보의 특성상 평가기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ESG 투자성과에 대해 일관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ESG 투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호나 불신의 편향된 시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SG 채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태훈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채권 사이트에서 ESG 채권 관련 보고·공시 자료를 찾을 수 있었지만 자금 배분 등에 관한 연간보고서는 찾을 수 없었다”며 “정작 중요한 사후 보고 기간이 제시돼 있지 않아 (ESG 채권) 발행 후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따라서 ESG 투자가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책과 명확한 평가 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박혜진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강화 움직임과 함께 향후 ESG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ESG 투자 성과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과 관련 증거의 축적, ESG 평가 체계의 표준화, 정보 공시 제도 개선 등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태훈 연구원도 “관련 지표의 정의, 데이터의 접근성 및 신뢰성 등 비재무적 요인을 통합하는 데 있어 엄밀한 규칙이 요구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법, 제도, 분류체계 등 ESG를 전담하는 일관성 있는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