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공분을 낳았던 양천구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사건(정인이 사건)을 투자사기 및 신종 다단계 등에 이용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사진=인스타그램 갈무리
박 씨의 후원 내역을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좋은 일을 했다”며 박수를 쳤다. 제보자 A 씨는 1월 31일 “SNS에서 정인이 관련 글을 보다가 우연히 박 씨의 인스타그램을 보게 됐다. 개인이 500만 원이라는 큰 돈을 선뜻 기부했다는 사실에 막연히 놀랐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돈이 많을까’하고 궁금해져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살펴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대부분은 명품 가방이나, 외제차, 쇼핑 사진, 기부금 인증 등 재력을 과시하는 내용이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박 씨가 이런 사진을 올리면서 “누구나 다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믿고 따라온다면 가능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 씨의 도움으로 수천만 원의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직접 계좌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A 씨도 박 씨의 재테크 비법이 궁금해졌다.
A 씨는 “간단한 재택근무로 한 달에 1000만 원까지 벌 수 있다고 했다. 조금 수상하기도 했지만 ‘좋은 단체에 후원까지 하는 사람이 사기를 칠까’라는 생각이 들어 박 씨로부터 재테크를 배워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평범한 20대 여성처럼 보였던 박 씨는 자신을 ‘재테크 상담사’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온라인 사이트 공략으로 대리베팅을 하면서 수익을 내드리고 있다” “100% 수익을 보장하는 유출픽이다” “원금 보장은 물론 5~10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등의 말을 쏟아냈다. 카지노, 바카라 베팅 사이트 가운데 보안이 약한 곳을 공략해 결과를 미리 알아내기 때문에 무조건 수익이 난다는 말이었다. 이어 A 씨에게 초기 투자를 얼마까지 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또 다른 제보자 B 씨에게는 “각 회차별로 실시간 진행하여 결과를 가리는 온라인 실시간 재테크를 소개해주겠다. 두 시간 안에 150~300%의 수익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안전거래소에 가입을 하라”고 했다. 회원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은행 계좌번호와 출금 비밀번호를 기재해야 했다.
박 씨의 수법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신종 투자사기의 일종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인스타그램 투자 사기는 투자 자체를 홍보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 사진, 혹은 부를 과시하는 사진을 꾸준히 올려 계정을 관리하면서 특정 팔로어와 친분을 쌓은 뒤 투자를 유도한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복수의 업체들이 원금보장을 약속하지만 투자금만 받고 잠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관련 피해 사례는 늘고 있다(관련기사 “1천 받으려면 3백 충전해” 주부 겨냥 인스타그램 부업 사기 극성). 최근에는 초기 가입비를 내고 다른 유료회원을 데려오면 수익을 떼어주는 유사 다단계 방식으로 회원을 확장하는 업체도 등장했다.
이렇게 ‘투자사기’를 당하면 현행법에서는 구제방법도 마땅치 않다. ‘투자사기’의 경우 은행 및 금융사에 계좌지급정지 신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4조 1항에 의하면 금융회사는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사기이용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면 즉시 해당 사기이용계좌의 전부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계좌지급정지의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박 씨가 올린 명품 가방과, 쇼핑사진, 외제차 사진은 대부분 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인스타그램 갈무리
박 씨가 대아협에 500만 원을 후원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기부 내역을 확인해 봤으나 박 씨로부터 500만 원을 기부받은 적이 없다. 다만 박 씨와 동일한 이름의 후원자가 지난해 9월 3일 5만 원을 기부하신 적은 있다. 박 씨에게 사실 확인 차원에서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정인이 사건과 무관하게 2020년 9월 5만 원을 후원한 박 아무개 씨는 존재하지만 두 사람은 동명이인일 가능성이 높다.
대아협이 박 씨에게 후원금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자 박 씨는 기존 계정의 이름을 바꾸고 협회 관계자를 차단했다. 협회는 더 이상 박 씨의 계정에 접근할 수 없었다. 복수의 제보자들에 따르면 박 씨는 지속적으로 계정 이름을 바꿔가며 후원 인증사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사진 도용과 대아협 후원금에 대해 물었으나 박 씨는 답하지 않았다. 이처럼 허위 후원 인증 사례가 늘어나면 이후 협회 운영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후원금을 정산하고 이용내역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박 씨가 기부한 500만 원은 어디 있냐?”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박 씨가 올린 명품 가방과 외제차 사진도 대부분 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2일 박 씨가 올린 사진의 실제 주인은 박 씨에게 “내 사진을 도용하지 말라”며 게시글마다 댓글을 남겨둔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박 씨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 모두 도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하고 있다. 현직 웹 디자이너 김예지 씨는 “500만 원 이체 내역을 보면 간단한 포토샵으로 조작이 가능한 부분이다. 이름 부분 픽셀이 깨져있고 어색함을 가리기 위해 스티커를 붙였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협회와 정인이 사건이 부적절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에 분노했다. 그는 “정인이 사건이 관심을 받으면서 협회의 이름이 조금 알려지자 이를 사적 이익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할 때는 정인이와 관련도 없는 게시글에 해시태그(#)를 달거나 멋대로 물품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SNS나 쇼핑몰에 ‘대아협에 후원을 했다’ 혹은 ‘수익의 일부를 후원하겠다’는 글이 올라온다. 협회에 문의나 연락 없이 협회와 정인이를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협회는 아동학대예방 및 근절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지 어떤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협회에서도 정인이의 사진이나 영상이 자칫 무분별하게 쓰이지 않도록 외부 유출을 금지하고 있다. 협회나 정인이를 이용해 사기를 치거나 홍보 및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시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