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 중인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 사진=연합뉴스
기업가치를 높게 잡으면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상장 때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98.04%를 가지고 있는 SK케미칼이 상장 때 주식을 팔아(구주매출)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당연히 공모가가 높을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SK케미칼이 꼭 ‘돈 욕심’ 때문에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앞서 상장한 그룹 내 또 다른 바이오회사 SK바이오팜이 너무 낮은 공모가를 책정하는 바람에 주식을 팔고자 하는 직원들의 대규모 이탈로 고생한 것을 지켜보았고, 그러다 보니 ‘적정 가치를 잘 책정하라’고 주문하고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7월 4만 9000원에 상장한 SK바이오팜은 한때 26만 9500원까지 급등했다. 우리사주 조합원은 최고가 기준으로 평균 26억 원의 평가이익을 얻었다. 조합원은 퇴사해야만 주식을 팔 수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임직원이 사표를 냈다. 약 35%의 직원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현재는 SK그룹이지만, 추후 계열분리될 가능성이 큰 기업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SK디스커버리란 회사의 손자회사다. 그리고 SK디스커버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40.18%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게이츠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미국 워싱턴대학 항원 디자인연구소와 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화제가 됐다.
#“주관사에 책임 물어야” 후유증 심각한 SK바이오팜
SK바이오팜이나 SK그룹 관계자들은 ‘낮은 공모가’로 인한 후폭풍이 상당했다고 설명한다. SK바이오팜 한 관계자는 “퇴사하려는 직원을 말리는 것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도 어렵다”면서 “‘지금 입사하는 것은 들러리를 서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우수 인재를 채용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SK그룹 한 관계자도 “SK바이오팜이 상장할 당시에도 공모가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혜택을 주자는 반론이 만만찮아 그대로 진행했었다”면서 “하지만 주가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오르고 그 여파로 직원 이탈이 잇따르면서 주관사에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는 목소리마저 나왔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 대표 주관사는 NH투자증권과 씨티증권이었고 한국투자증권과 모건스탠리가 공동 주관사, SK증권과 하나금융투자가 인수회사로 참여했다.
SK바이오팜은 2월 1일 기준 주가가 14만 원대로, 아직 공모가 대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는 좋지 않다. 보호예수가 풀리는 7월까지 이 주가를 지탱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은 직원들이 동시에 주식을 팔면 오버행 이슈(대량 물량 부담)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Xcopri)의 미국 판매가 올해부터 본격화될 예정인데, 시장에서는 22만 건(시장점유율 8%) 처방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 성적이 저조했던 수면장애치료제 수노시(Sunosi)도 올해는 마케팅을 강화해 시장점유율 상승을 꾀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치료제에 대한 기대치는 높다. 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목표주가를 대폭 하향 조정하는 리포트도 나왔다. 삼성증권은 지난 1월 28일 보고서에서 “기업공개(IPO) 이후 주요 제품 매출성장 대비 시장에서의 높은 기대감이 주가에 선반영됐다고 판단한다”며 목표주가를 현재 주가보다도 낮은 13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투자의견은 보유(HOLD)로 제시했으나 이는 사실상 매도 의견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확한 가치 산정 힘들어” 주관사들은 난색
SK바이오사이언스는 사촌기업의 패착을 반복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주관사들에 적정가치를 잘 책정하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인센티브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할 경우 퇴사하려는 인력이 속출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되 증권사의 IB사업부처럼 수년간 분할 지급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런데 적정가치를 잘 책정해야 한다는 회사 측 요구에 주관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바이오기업 특성상 아무리 꼼꼼히 분석한다고 해도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이 신규 상장한 지난해 7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포맥스 모니터에 주가 그래프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SK바이오팜은 시초가 대비 가격제한폭(29.59%)까지 급등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9월 상장한 항암면역치료제 개발업체 박셀바이오가 대표 사례 중 하나다. 박셀바이오는 기관투자자 대상의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94.18 대 1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면서 공모가가 3만 원으로 결정됐다. 공모 경쟁률 또한 96.44 대 1에 그쳤고, 상장 이후에도 개인투자자들이 손절매에 나서면서 한때 2만 450원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이후 간암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이 갑자기 부각되면서 1000% 넘게 급등, 연말엔 29만 9700원을 찍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요구하는 기업가치가 경쟁사 대비 너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 개발업체는 치료제 개발업체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는다. 또 SK바이오사이언스가 위탁생산(CMO)하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이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 우려 요인이다. 자체 개발하기로 한 백신 후보물질들은 아직 임상 1상 단계라 예단하기 어렵다.
한 증권사 IPO팀 관계자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요구하는 공모가가 주관사의 기업가치 책정 모델로는 나오지 않는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상장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진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주관사들은 올해 1분기 안으로 공모가를 책정할 계획이다.
민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