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 자본금 낮춘 이유는…
기존 관광사업자의 형태는 좀 복잡했다. 일반여행업과 국외여행업, 그리고 국내여행업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반여행업은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을 모두 알선할 수 있는 업종으로 영업범위의 제한 없이 모든 여행상품을 취급할 수 있고 자본금 1억 원이 필요했다. 또 국외여행업은 내국인의 해외여행만을 알선하는 업종으로 창업 시 자본금 3000만 원이, 국내여행업은 내국인의 국내여행만을 알선하는 업종으로 자본금 1500만 원의 등록요건이 있다.
일반여행업의 명칭이 종합여행업으로 변경되고 자본금도 1억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인하된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 여행카운터 안내판. 사진=연합뉴스
일단 이번 개정안을 통해 국외여행업과 국내여행업이 국내외여행업으로 통합된다. 내국인의 국외여행만 알선할 수 있었던 국외여행업 등록 사업자도 별도의 국내여행업 등록 없이 국내여행을 알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사실상 국외여행이 어려워진 현실에서 국외여행업자도 국내여행을 알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다. 내국인의 국내여행 알선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를 위해 자본금이 적은 국내여행업을 그대로 살려둔다.
다만 여행업계에서 반발하는 것은 종합여행업으로 이름을 바꾸는 일반여행업 관련 내용이다. 일반여행업은 기존에는 자본금 등록요건이 1억 원이었지만 종합여행업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자본금도 5000만 원으로 인하된다.
한 소규모 여행사 대표는 “가뜩이나 코로나19로 1년여 동안 운영이 어려워 여행사들이 대부분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문체부는 기존의 사업체가 폐업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신규 창업자에게만 혜택을 주려 한다”며 “자본금을 낮춰 창업 문턱을 낮추면 질 낮은 업체들이 양산되고 경쟁만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런 주장은 얼핏 ‘밥그릇 지키기’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업계가 더욱 비난하는 부분은 창업으로 폐업을 가리려 하는 문체부의 탁상행정이다. 다른 유럽전문 여행사 대표는 “왜 하필 이 시기에 갑자기 여행사 진입 문턱을 낮추려는 건가. 여행사들이 폐업해 나가는 자리를 새로 창업하는 여행사 수로 채워 통계를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꼼수 아닌가”라며 “지금 여행사의 창업 문턱을 낮춘다고 해도 누가 당장 여행업으로 들어오겠나. 여행업 생태계를 더 어지럽게 할 뿐”이라며 날선 감정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창업으로 폐업 가리기”라며 문체부의 탁상행정을 비판하고 있다. 폐업한 소규모 여행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체부 관계자는 “자본금 인하는 코로나19 이전부터 꾸준히 요구되어 왔던 안건이다. 규제완화를 통한 여행업 활성화 차원에서 시행된 개정안”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 대해 “현행 여행업 규제는 단체관광 중심의 종합여행서비스 규제에 적합하여 최근 개별여행 중심으로 변화하는 관광 추세와 단품이나 개인 취향 맞춤형 여행상품 수요가 증가하는 여행시장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이에 여행환경 변화에 맞추어 기존 여행 업종의 등록요건을 완화하고 업종 통합 등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소규모 창업을 촉진하고 영업 불편을 해소해 관광산업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업계에서는 소규모 여행사의 폐업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행업도 영업제한 업종?
여행업계는 지금 문체부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여행업계의 규제완화가 아니라 죽어가는 여행업계를 살릴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로 무너져가는 중소규모 여행업계에선 최근 정부의 3차 재난지원금에도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에서 연일 국내여행 자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데다 항공노선 중단 및 14일 자가격리 방침으로 인해 해외여행길이 막혀 국내·외 할 것 없이 사실상 여행업은 셧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행업은 집합금지나 영업제한 업종이 아닌 일반 업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때문에 이번 3차 재난지원금은 물론 1차와 2차 재난지원금에서도 여행업은 소외 대상이었다며 업계 내부에선 반발이 심하다(관련기사 ‘피해 1위인데 고작…’ 여행사, 버팀목 지원금에 뿔난 까닭). 여행 자제가 정부의 방침이니 여행사도 최소한 카페처럼 영업제한 업종으로 지정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카페나 식당, 체육시설은 제한적으로나마 운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여행업은 사실상 1년 가까이 아무런 수입 없이 모두 손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카페 등의 업종보다도 낮은 지원금을 받고 있다. 1‧2‧3차 재난지원금을 모두 합하면 몇 백만 원의 차이가 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소규모 여행사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릴레이 시위도 진행 중이다. 우리여행협동조합을 주축으로 한국공정여행업협회, 중소여행협력단, 중소 여행사 대표들이 1월 25일부터 국회의사당을 시작으로 부산시청, 광주시의회 등 지자체 앞에서 릴레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여행업의 영업제한 업종 지정과 함께 관광개발기금 무담보 신용대출 확대 및 대출조건 완화, 여행업 세금 납부 유예 및 감면 등을 요구하고 있다.
중소 여행사 대표들이 1월 25일부터 국회의사당을 시작으로 부산시청, 광주시의회 등 지자체 앞에서 릴레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위에 참가한 또 다른 여행사 대표는 “우리는 하나투어나 모두투어처럼 대형여행사가 아니다. 대부분은 5인 이하 사업장이고 1인 여행사도 많아 사실상 소상공인과 같은 처지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겨운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문을 닫았거나 문 닫기 일보직전인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우리도 택배나 대리기사 알바를 전전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현실을 전했다.
같은 여행업계라도 항공이나 호텔분야는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어 이들 중소 여행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정부가 여행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한 것도 소규모 여행사들보다는 직원이 많은 대형 여행사나 항공, 호텔 분야에 수혜가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제로가 1년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5인 이하 소규모 여행사들은 임대료와 직원들의 4대 보험료 등을 감당하며 버티기 힘든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직원들에게는 유‧무급 휴직에 대해 정부의 고용지원금이 있었지만 막상 여행사 대표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없었다.
소규모 여행사 대표들은 “문체부는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업체들에게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바운드가 많아져야 관광수지 흑자가 나기 때문”이라며 “인바운드를 하기 위해 등록해야 하는 종합여행업 자본금을 낮춘 이번 개정안도 백신 상용화가 되어 하늘길이 다시 열릴 때를 대비한 것 아니겠나. 같은 관광산업이지만 아웃바운드 업계는 늘 문체부의 관심 밖에 있다”며 씁쓸함을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진흥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번 관광진흥법 개정안에 대해 의견이 있는 기관·단체 또는 개인은 오는 2월 9일까지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 온라인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