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의 한 검사는 나를 보고 “저는 좌파 우파 어느 쪽도 아닙니다”라고 소신같이 말했다. 그는 소고기 협상대표의 명예훼손을 고소한 나를 우파로, 문화방송 측을 좌파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되물었다.
“검사는 헌법과 법률을 따라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하고 있지 않나요?”
엄상익 변호사
“제가 하는 건 수사가 아니고 솔직히 정무입니다.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하고 지침을 받으니까요.”
검사가 자기 입으로 정치의 하수인이 된 걸 고백하면서 뇌물죄로 걸라고 위에서 지침을 내렸다고 넌지시 암시해 줬다. 그 뇌물죄는 혐의가 없는 것으로 끝이 났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 검찰은 박근혜와 그 국정원장들을 뇌물죄로 구속했다. 나는 국정원장 변호인 중 한 명이었다. 역시 표적 수사고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생각이었다.
수십 년간 관행같이 해오던 국정원 예산의 청와대 전용을 뇌물로 만들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 많은 정보 기관장 중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만 핀셋으로 뽑듯 대상으로 삼았다. 검찰이 진실을 밝히고 인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정치의 도구인 느낌이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개인적으로 만나 잠시 얘기를 할 때였다. 그에게 대통령이 되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신념같이 말했었다. 일선의 변호사로 30년을 뛰면서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들이 덮으면 죄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 아들이나 측근 그리고 재벌의 비리가 그랬다.
표적이 되면 그 대상은 죽는 순간이었다. 봐주고 안 봐주고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여권의 중진 의원이나 도지사 등은 빠져나가기도 했다. 수사와 기소 권력 독점의 폐단이었다. 그렇게 칼을 휘두르는 그들은 사실상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비리가 걸려도 끼리끼리 봐주었다.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사법살인을 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권력기관은 그 이전에도 사실 간판만 달랐을 뿐 마찬가지였다.
자유당 때는 경찰과 특무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 그중 중앙정보부가 극을 달렸다. 5·16 직후 군정의 주체들은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할 조직이 필요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중앙정보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못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적 도구로 정보부를 이용했다. 1965년 7월 31일 국회에서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심사특별위원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다. 김대중 의원이 이렇게 발언했다.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중앙정보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는 말도 할 수 없고 사람 노릇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으로 중앙정보부가 그 힘을 잃고 침몰했었다. 전두환 정권에서 보안사령부가 정치적 도구의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정권들에서는 검찰이 그 역할을 맡았다. 권력기관 개혁의 상징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탄생했다. 공수처법을 보면 판·검사나 국회의원 고위공무원을 수사함으로써 과거 정보부에 못지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공수처가 권력의 부패에 맞서는 기구가 될지 아니면 그 도구가 될지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처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수단이어야 하며 정치적 독립과 중립이 철저히 보장되는 특별 사정기구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막 태어난 공수처가 제 식구 감싸기를 하는 여권이나 검찰과 법원조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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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