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에서 ‘뽀로로 극장판’ 플레이 중간에 성인물 영상이 등장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심각한 오류를 야기한 웨이브에 비난 여론이 집중됐지만 에로업계는 괜한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가정의 IPTV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VOD 시장이 활성화됐고 각종 웹하드 사이트에서도 제휴콘텐츠 제도가 안착됐다. 최근에는 OTT 서비스도 활성화되면서 성인물을 제작하는 에로업계도 비로소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했다. 1990년대 에로비디오 전성기를 구가하던 에로업계는 비디오 대여 시장의 몰락과 함께 동반 침몰했다. 이후 10년 넘는 기간 동안 에로업계는 케이블의 성인 유료 채널 등 매우 한정된 시장을 기반으로 힘겹게 명맥을 이어왔다. 다행히 IPTV, OTT, 웹하드 등 영상 콘텐츠 소비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에로업계도 겨우 제대로 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이 급성장하는 와중에도 에로업계는 불법 성인물 때문에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우선 몰카를 비롯한 리벤지 포르노가 가장 치명적인 상대였다. 연출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실제 상황이 몰래 유출돼 웹하드 사이트 등을 돌아다녔는데 이는 분명한 불법 행위이고 유출 피해를 입은 일반인들에겐 치명적인 사생활 유출이자 인권 침해였다. 그리고 합법적인 성인물을 제작하는 에로업계 입장에선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다행히 웹하드 카르텔이 무너지면서 이젠 웹하드 사이트 등에서 그런 불법 동영상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요즘에는 일본 등 해외에서 제작된 포르노의 불법 유통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불법과 싸우는 합법은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로업계 역시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다소 위험한 방법을 취해왔다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이다. 요즘 각종 웹하드 사이트의 성인 섹션을 들여다보면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로 보이는 성인물이 넘쳐난다. 예를 들어 ‘여친과 자취방에서’ ‘손만 잡고 잘 거라는 남자친구’ ‘친구와 ○○○ 직접 찍네’ ‘애교 넘치던 전 여친’ ‘베프가 촬영한 내 여친’ ‘드뎌 떴다 ○○○ 추가 영상’ 등의 제목들이다. 일반 성인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이런 제목들은 과거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가 유행하던 시기에 자주 활용되던 제목들이다.
그런데 해당 영상은 대부분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표시가 돼 있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까지 받은 합법적인 성인물들이다. 여전히 웹하드에서 사라진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마치 합법 성인물을 불법 성인물처럼 보이도록 제목을 정해 놓은 것이다. 심지어 심의 받은 정식 제목 대신 웹하드 등에 이런 종류의 제목을 붙여 놓은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로업계 관계자는 “제목뿐 아니라 요즘에는 촬영 자체를 마치 몰카이거나 리벤지 포르노인 것처럼 연출해서 찍기도 한다”라며 “그런 영상이 잘 팔리니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포르노와의 불리한 싸움을 위해 일본 포르노와 유사한 콘셉트를 가져오기도 했다. 웹하드 등에 엄마, 이모, 누나 등과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제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일본 포르노는 상상을 초월하는 형식과 소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국내 에로업계가 여기에 대응하는 성인물을 다수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형태의 제목들 가운데에도 실제 심의를 받은 제목이 아닌 웹하드용 제목이 따로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형태에 대해 앞에서 에로업계 관계자는 “사실 웹하드가 문제인데 에로업계가 그런 제목을 붙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라며 “웹하드 업로더들이 다운로드 수를 늘리기 위해 정식 심의를 받은 성인물에 그런 자극적인 제목을 붙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웨이브는 뽀로로 성인물 사건 직후 서비스 중이던 성인영화 전체를 노출 제한했다. 사진=웨이브 홈페이지 캡처
문제는 시장 위축과 심의 강화다. 우선 시장 위축의 경우 당장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이던 성인영화 전체를 노출 제한했다. 합법적으로 제작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심의까지 받은 성인물이지만 웨이브 자체 사고로 괜한 피해를 보게 됐다며 에로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 새 너무 자극적인 성인물을 연거푸 내놓은 에로업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심의가 강화될 경우 에로업계는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경찰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실제로 에로비디오 전성기가 이어지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몇 년에 한 번씩 경찰이 대대적으로 에로비디오 업계의 음란성 등에 대한 수사를 벌이곤 했다. 이후 에로업계가 극도의 침체기를 겪으며 경찰 수사 대상에서 멀어져 있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에로업계 관계자들은 실제로 경찰 수사가 시작된다면 그나마 근근이 버티며 합법적인 성인물을 제작하던 에로업계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