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의 처리 과정상 미흡했던 내용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운전기사는 경찰 측에 ‘폭행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있다’고 진술했던 내용이 드러났는데, 경찰은 이를 알면서도 외면했다. 또, 당시 차량 기어가 D(드라이브)에 놓여 있어, 주행 중으로 볼 요소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이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억울해 한다. “법무부 법조실장을 지낸 이용구 변호사인지 몰랐으며, 봐주려고 한 게 아니”라는 해명이다. 실제 적지 않은 경찰들이 “택시기사와 승객 간 다툼은 워낙 많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입건하지 않고, 택시기사들에게 ‘택시비 플러스알파’를 주는 선에서 갈등을 마무리하곤 한다”며 “행정부 고위직 출신이었다는 점을 알았다면 오히려 봐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하지만 상황은 경찰에게 불리하다. 검찰은 강도 높게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된 경찰의 수사 능력’을 문제 삼기 가장 적절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이용구 차관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모두 기소되는 불명예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1월 6일 밤 변호사가 택시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은 사건 하나가 경찰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이용구 법무부 차관. 사진=박은숙 기자
#경찰 ‘무혐의 처분 문제없다’더니…
경찰은 당초 의혹이 불거지자, 당당하게 나섰다. 지난해 12월 언론에 “동영상은 없었다”며 무혐의 처분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택시기사의 증언에 의존하다 보니, 사건을 내사 종결(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폭행을 당한 택시기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하나씩 사실 관계를 밝히면서 경찰의 설명은 거짓이 되고 있다. 해당 운전기사에 따르면 영상을 보기 전 담당 경찰 수사관은 이미 내사 결과 보고서를 대부분 써 놓은 상태였고 영상을 본 뒤에는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 사건은 다음날 곧바로 내사종결 처리됐다.
주행 중 폭행 여부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경찰은 당초 이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이 아닌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했다. 경찰은 택시기사가 목적지에 도착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진술했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단순폭행 사건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언론 등에서 “주행 기어가 D(드라이브)에 놓여 있었고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였다”고 밝혔다.
주행 중 폭행일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에 해당,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운행 중이라는 의미에는 여객의 승·하차를 위한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무엇보다 특가법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찰은 자세한 정황 파악 없이, 형법상 폭행죄를 적용한 뒤 합의한 점 등을 이유 삼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통상적 사건 처리”라지만…
결국 경찰은 뒤늦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1월 25일 경찰은 “지난해 12월 언론과 국민에게 ‘동영상이 없었다’고 잘못 설명하게 돼 송구하다. 당시에는 서울청과 본청 모두 영상의 존재 사실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보통의 사건 처리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형사팀 경찰은 “택시 기사와 손님 간 갈등은 하루에도 몇 건씩 서를 찾아오는 갈등이고 이 중 대부분의 손님은 술에 취해 기억이 없는 상태”라며 “보통 택시기사에게 손님이 택시비용 외에 운행 손실비용을 더 지불하고 합의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고, 이번 사건 역시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용구 차관 사건에서, 운전기사는 이 차관 측을 만나 ‘합의금’과 사과를 받은 뒤 경찰에 “블랙박스 영상이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추후 경찰 확인으로 블랙박스 존재 사실이 드러난 뒤 경찰은 이를 봤으나 “못 본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서초경찰서는 당시 피의자였던 이용구 변호사가 법무부 실장을 지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서초서 직원들 전부 이용구 변호사가 법무부 법조실장을 지냈다는 사실을 모르고 처리했다”며 봐주기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수사 종결권을 가지게 되면서 비대해진 경찰, 그리고 그에 대한 ‘우려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터진 ‘정권 실세 무혐의 처분 의혹’은 경찰에게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결국 서울경찰청은 1월 24일 수사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이 차관의 폭행 영상(블랙박스)과 관련한 조사에 나섰다.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은 대기발령 조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 내 진상조사와 별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서울 서초경찰서를 1월 27일 압수수색했고, 해당 수사관은 2월 2일 소환 조사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검찰 개혁으로 불만이 가득했던 검찰이 이번 사건을 통해 ‘경찰의 무능’을 강조하려 할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는 대목이다.
간부급 검사는 “이번 사건은 원칙적으로 처리할 경우 기소가 100% 이뤄져야 하고, 벌금 등 가벼운 처벌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며 “언론을 통해 논란이 커진 사건에 대해 ‘검찰 존재의 필요성’을 어필하려면 엄정하고 신속하게 처리를 하고 동시에 경찰 수사가 ‘빈틈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검찰 기소가 이뤄진다면 이미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까지 법무부 장·차관이 동시에 법정에 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이용구 차관과 주먹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이용구 차관 사건은 사실 ‘합의를 했다’는 점에서 엄중하게 처벌할 만한 내용은 아니”라면서도 “오히려 경찰이 보통의 경우처럼 사건을 지나치게 축소 처리했던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핵심이 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검찰 소환 조사가 임박한 가운데, 기소가 이뤄진다면 이미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까지 법무부 장·차관이 동시에 법정에 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이용구 차관과 달리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패스트트랙(Fast-Track·신속처리안건) 폭행 사건’으로 이미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박 장관은 2019년 4월 26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을 패스트트랙 처리 법안으로 지정하는 문제로 여야 간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및 관계자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직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법정에 피고인 신분으로 선 것은 박범계 장관이 최초로, 이 차관마저 기소된다면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재판을 받게 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