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하림타워 건물 전경. 사진=일요신문DB
#하림의 라면·HMR 신사업 성공할 수 있을까
하림이 라면 시장 진출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하림이 특허청에 신청한 ‘하림 순라면’ 상표가 공식 출원됐다. 신제품 라면이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시험·검사성적서 발급 절차도 밟고 있다. 지난해 말 라면 생산을 위한 설비는 완공했다. 하림은 전북 익산에 5200억 원을 투자해 지은 ‘하림푸드 콤플렉스’에서 라면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 공장은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등 인증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라면뿐만 아니라 가정간편식(HMR), 천연 조미료, 소스, 즉석밥 등을 생산하는 기지로도 활용된다.
앞서 2018년 하림그룹은 전북 익산에 ‘푸드 트라이앵글’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닭고기 종합가공센터는 2500억 원을 투자해 증축공사를 마무리했다. 지난해 11월 하림은 ‘하림푸드’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국가식품클러스터 내 최첨단 플랜트를 세우기 위해서다. 이곳에선 변화하는 식생활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식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하림그룹이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계획한 장기 프로젝트가 구체화된 셈이다.
신선육 중심의 매출 구조에서 매출 다변화는 하림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하림의 지난해 매출의 약 78%가 닭 신선육에서 나왔다. 문제는 단가가 저렴해지는 가운데 값싼 수입산과 경쟁해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1월 19일 기준 육계생계(1kg) 시세는 2290원으로 10년 전(2580원)보다 10%가량 더 저렴하다.
다만 후발주자인 데다가 기존 경쟁자의 면면이 만만치가 않다. 농심(54.2%)·오뚜기(26.6%)가 라면 판매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에서 입지가 견고하다. 빙그레도 15년 전 라면 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사업을 철수하기도 했다. 풀무원도 ‘건면’만 팔고 있는 상황이다. HMR 시장도 마찬가지다. 햇반 시장의 경우, CJ제일제당의 햇반(70.6%)과 오뚜기 ‘맛있는 오뚜기 밥(28.2%)’의 시장점유율이 99%에 달한다. 과거 농심은 즉석밥 시장 진출에 실패하고 2016년 결국 생산설비를 CJ제일제당에 팔았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생산설비에 투자해서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판매량을 확대해서 공장 가동률을 높여가는 선순환을 만들기가 쉽진 않다”며 “예전에 하얀 국물이 유행할 때 팔도가 생산라인을 확대했으나, 그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공장 가동률이 낮아진 게 한 예”라고 말했다. 이어 “입맛을 사로잡아서 시장에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하림타워 건물 전경. 사진=일요신문DB
#무리한 투자로 이자보상배율 1보다 작아질 가능성
하림그룹이 신사업 확장 속도전은 재무구조에 부담이 되고 있다. 하림은 2018년부터 전북 익산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순차입금은 매년 급증했다. 2017년 1434억 원 수준에서 2018년 2627억 원, 2019년 3519억 원, 지난해 3분기 기준 4019억 원까지 증가했다. 총차입금은 2017년 2128억 원에 지난해 3분기 기준 5016억 원으로 약 2.3배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부채총계(5855억 원)는 자본총계(2695억 원) 2배를 뛰어넘었다.
결국 하림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은 ‘좀비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낸다. 현재 하림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재무개선이 시급한 상태다.
실제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하림의 누적 매출액은 약 6733억 원이고, 당기순손실이 77억 원에 달한다. 2018년 당기순손실이 약 120억 원으로 적자 전환한 이후 이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적자 폭이 398억 원으로 확대됐다. 지난해 4월 한국거래소는 하림을 우량기업부에서 중견기업부로 강등시켰다. 이와 관련, 하림 관계자는 “업계 전체적으로 이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올해는 이익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난관도 적지 않다. 하림그룹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옛 한국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의 지연 책임을 두고 서울시와 대립 중이다. 하림은 “서울시가 고의로 인허가 절차를 4년 6개월간 지연해, 15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며 “주주와 직원들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고, 손해배상 청구도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며 서울시에 책임을 물었다.
지난 2월 3일 이정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은 유튜브를 통해 관련 브리핑을 열고 하림 주장을 반박했다. 이 국장은 “해당 부지의 도시계획 기준이 명확함에도 하림은 국토교통부의 도시첨단 물류단지 시범단지로 선정됐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도시계획과 배치되는 초고층·초고밀 개발을 요구한다”며 “상습 교통정체 지역인 양재IC 일대 극심한 혼잡과 특혜적 과잉 개발 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 하림 “업계 전반 이익 내기 어려워, 올해는 이익 낼 것”
서울시는 화물터미널 부지를 포함한 양재·우면동 일대 약 300만㎡를 연구개발(R&D) 혁신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이 일대는 상습 교통정체 지역이어서 용적률 400% 이하로 관리하고 있으며 용도를 R&D 중심으로 바꾸고자 지구단위계획 변경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하림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특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법률이 정한 인센티브(투자장려)에 ‘특혜’라는 나쁜 프레임을 씌운 것”이라며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조성사업은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사업 등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2020년 7월)’이라는 국가정책에도 포함돼 있다. 특히 국토계획법 제23조에 따르면 국가계획과 시 계획이 다를 경우 시는 국가계획에 맞추어 정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재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결정도 임박했다. 오는 3월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열고 일감몰아주기 등 부당지원 의혹을 받는 하림그룹과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제재에 나설 예정이다. 공정위는 김홍국 회장이 2012년 장남 준영 씨에게 하림의 비상장 계열사 ‘올품’ 지분 100%를 물려주는 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행위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올품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700억∼800억 원대의 계열사 일감을 받아 덩치를 키웠고, 이를 토대로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하림지주의 지분을 4.3% 보유, 지주회사가 아니라 체제 밖 계열사가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가 만들어졌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