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최근 ‘스튜디오지니’ 설립하면서 콘텐츠 제작 사업을 본격화한다. 사진=KT 제공
KT는 자본금 250억 원을 출자해 콘텐츠 투자와 기획, 제작, 유통까지 아우르는 신설법인 스튜디오지니를 설립한다고 최근 밝혔다. 스튜디오지니는 KT그룹의 미디어 플랫폼과 콘텐츠 역량 간 시너지를 도모하고, 그룹 콘텐츠 사업을 총괄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KT는 웹소설·웹툰 전문 자회사 스토리위즈를 통해 발굴한 원천 IP(지적재산권)를 중심으로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제작사들과 협업해 콘텐츠를 2023년까지 연간 10~20개 시리즈 수준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KT가 콘텐츠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유는 통신 시장이 포화상태에 직면한 가운데 글로벌 진출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료방송시장도 인터넷TV(IPTV) 중심으로 개편된 만큼, 통신과 IPTV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 콘텐츠 유통을 넘어 제작까지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통신업은 3사가 점유율을 나눠가져 시장이 더 크기 어렵고, 케이블TV 대부분이 IPTV에 흡수되면서 유선방송시장이 IPTV 중심으로 간다는 판단 아래 유통에 더해 제작에 나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통신 분야 담당 한 연구원도 “콘텐츠가 중요해지면서 그룹 내 여러 미디어 콘텐츠 계열사가 개별로 사업하기보다 함께 움직여 시너지를 내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도 “통신업은 내수시장에 국한됐다는 취약점이 있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사업영역을 확대하려면 글로벌 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글로벌 확장성이 가장 큰 것은 콘텐츠이기에 KT를 비롯한 모든 통신사가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고 했다.
KT의 무기는 다양한 미디어 유통 플랫폼과 가입자다. KT 유료방송시장 가입자는 지난해 말 기준 1259만 명으로, 올레TV에 873만 명,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에 257만 명, HCN 129만 명 등이 있다. 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즌과 음원유통 지니뮤직, 콘텐츠유통 KTH, 디지털방송광고사 나스미디어도 갖고 있다. KT가 만든 콘텐츠를 그룹의 다양한 플랫폼에 유통하고, 5G와 AI 등 IT 기술도 적용할 수 있다.
앞서의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는 자본력이 있어 제작에 진정성을 갖고 투자한다면 막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며 “미디어가 발달한 미국 시장에서 대형 통신사 AT&T 등이 콘텐츠기업들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며 급성장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최진봉 교수도 “방송의 소비구조는 제작, 분배(플랫폼), 소비(시청자)로 구성됐다”며 “KT는 분배에서 나아가 제작까지 투자한다는 뜻으로, 유통 플랫폼을 보유한 데 더해 콘텐츠까지 제작하면 경비도 절감되고 시너지도 일어날 것”이라고 봤다.
KT가 최근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지니’ 설립하면서 업계 관심이 쏠린다. 다만 콘텐츠 사업은 장기 투자가 필요한데, KT의 전문경영인 특성상 사업 지속성이 떨어지고 넷플릭스 등 경쟁자가 많아 성공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콘텐츠 제작은 유통과 달리 장기적 접근이 요구된다. 큰돈을 투자해도 적자 혹은 대박이 나는 도박성 성격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자본도 시간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T가 2012년 미디어사업본부에서 미디어콘텐츠 전담사업부 ‘미디어허브’를 분사했다가 2년 만에 다시 흡수한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통신업은 망을 설치하고 월정액 요금에 인터넷과 모바일서비스를 연계하는 마케팅으로 가입자를 늘리는 구조다. 그러나 당시 KT는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콘텐츠에 투자했을 뿐 제작 자체에 대한 의지는 없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OTT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사업은 CJ ENM처럼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우수 인력 끌어오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자리 잡는다”며 “통신사들은 안정적 니즈만 추구하다 리스크가 큰 사업을 해야 하니 접근법이 달랐을 수 있다. 당시 KT도 콘텐츠 사업에 대한 진정성 없이 단순히 방송유통시장을 장악하려 했기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KT는 오너 경영인이 아니라 임기 제한이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점에서 콘텐츠 제작 사업의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앞의 OTT 업계 관계자는 “KT는 임기가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인데 콘텐츠 제작사업은 리스크가 많다. 임기 내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끌고 나가기는 부담스러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경쟁 심화도 KT가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국내 미디어콘테츠 시장은 넷플릭스 독주 속에서 웨이브·티빙·시즌·왓챠 등이 고전하고 있으며, KT가 운영하는 시즌은 이들 중 점유율이 가장 낮다. CJ ENM과 JTBC의 콘텐츠 제공하는 티빙, 방송 3사와 SK텔레콤이 연합해 만든 웨이브처럼 콘텐츠 사업자와의 동맹도 없어 콘텐츠 수급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최근 인기 많은 웹툰·웹소설 IP를 기반으로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 네이버·카카오도 강적으로 꼽힌다.
앞서의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수급이 중요한데 웨이브나 티빙은 방송사들이 지분을 갖고 주도하는 플랫폼으로 그들이 보유한 많은 콘텐츠를 공급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며 “KT는 비교적 콘텐츠 경쟁력이 낮아 최근 행보는 좋은 시도지만 얼마나 규모와 뚝심 있게 사업을 밀어 가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KT가 콘텐츠 제작에서 성공하려면 꾸준한 투자는 물론 다른 국내 미디어 콘텐츠 사업자들과 협력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는 제언이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사업자끼리 우리나라에서 점유율 경쟁을 하는 건 시장 규모가 작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성이 없다”며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이나 여러 콘텐츠 사업자와 협력해 해외로 진출 가능한 발판을 마련하는 등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KT 측은 “스튜디오지니는 콘텐츠 제작에 직·간접 투자를 하는 형태”라며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고 K-콘텐츠 육성과 생태계 확장을 주도하며 콘텐츠를 KT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