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폐지’, ‘금융위원회 해체’ 등의 문구가 적힌 버스가 서울 시내들 달리고 있다. 이 버스는 공매도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주식투자연합회가 운영 중에 있다. 사진=임홍규 기자
#게임스탑 주가는 어떻게 올랐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Short Selling)다. 공매도는 빌린 주식을 되갚아야 해, 주가가 하락한 후 되사는 ‘쇼트 커버링(Short Covering)’이 필요하다. 100원짜리 주식을 2원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빌려서 팔아 100원을 챙긴 후 주가가 80원으로 떨어지면 다시 사서 갚는 방법이다. 공매도를 한 입장에서는 100원에 팔고 80원에 샀으니 2원의 비용을 빼고도 18원이 남는다.
게임스탑은 주가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를 실행했는데, 개인들이 대규모 콜옵션으로 대응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공매도를 한 입장에서는 100원에 주식을 팔았는데, 주가가 130원이 됐으니 30원을 더 들여야 주식을 되갚을 수 있게 됐다. 손실을 줄이려면 주가가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 이렇게 다시 매수가 유입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관련기사 “못 먹어도 홀딩” 개미 연합군 반란 ‘게임스탑’ 운명은…).
주목할 부분은 개인들이 주가를 끌어올린 과정이다. 현물주식만으로 매수했다면 자금력이 열세인 개인들이 단기간에 시세를 끌어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옵션을 활용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는 옵션거래량이 폭증하고 있다. 10계약 미만의 소규모 거래가 많다. 개인들이 주가상승에 베팅하는 콜옵션(Call Option) 매수에 적극적이다. 옵션은 가격변동폭만 거래하기 때문에 작은 돈으로도 많은 주식을 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최근 미국 상황에서는 기관이 파는 물량을 개인이 상당수 매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콜옵션 매매 구조는?
콜옵션은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한이다. 현재가 100원인 주식을 120원에 살 수 있는 권리가(옵션가격)가 5원이라고 가정하자. 파는 쪽이 B, 사는 쪽이 A다.
① B는 옵션을 팔면서 현물 주식을 사야 한다. 주가변동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래 상황을 살펴보면 왜 B가 옵션을 팔면서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지, 옵션으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② 주가가 130원으로 오르면 A는 권한을 행사해 120원에 주식을 사서 팔 수 있다. 비용 5원을 빼도 5원이 남는다. B는 100원에 산 주식이 130원이 됐지만, 차익을 남기지 못하고 A에 넘겨야 한다. 대신 옵션 판 돈 5원이 남는다.
③ 주가가 115원으로 오르면 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게 더 싸니 A는 권리를 행사할 이유가 없다. 옵션 산 돈 5원은 손해다. B는 주가 상승분 15원, 옵션 판 돈 5원 등 20원이 이익이다. 주가가 80원으로 하락하면 A는 ②의 경우와 같아진다. B는 주가하락으로 20원 손실이 나지만, 옵션 판돈 5원이 있으니 총손실은 15원이다.
④ B가 주가 하락에 대비해 콜옵션을 팔면서, 동시에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인 풋(Put) 옵션을 살 수도 있다. B가 90원에 주식을 팔 권리를 5원에 샀다고 치자. 옵션 판 돈과 옵션 산 돈이 상쇄돼 손익은 ①에서 ‘0’, ②에서 15원으로 각각 줄어든다. 하지만 ③에서는 손실을 10원으로 줄일 수 있다.
#‘매도’와 ‘보유’ 사이에서…개인투자자의 딜레마
헤지펀드들이 손을 들고 게임스탑에서 철수했지만, 이제 고민은 주식 또는 옵션을 산 개인들의 몫이 됐다. 매수 단가 또는 옵션 행사가 이상의 가격에서 주식을 팔거나 옵션을 행사해야 수익이 현금화된다. 단기간에 매도가 쏟아지면 주가가 급락한다. 낙하하는 주가를 감안하면 먼저 팔수록 수익이 커진다.
실제 1월 27일 347달러를 넘었던 게임스탑 주가는 급락해 2일 90달러까지 떨어졌다. 급등 전 시세인 20달러 선까지 떨어진다면 주식을 샀던 명분이 사라진다. 헤지펀드가 공매도로 멀쩡한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을 막겠다고 나섰는데, 결국 주가는 ‘그냥 저냥’인 셈이 되기 때문이다. 각종 투자게시판에는 “그래도 버티자”라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지만, “먼저 탈출하려고 상대를 붙잡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반박도 많다.
주목할 점은 게임스탑의 주가 하락을 촉발한 계기다. 미국의 주요 증권사들은 2월에 들어서며 게임스탑 매수를 제한했다. 옵션거래를 하려면 증거금이 필요한데, 거래 급증으로 증거금이 부족해졌다. 증거금을 더 내야 하는 이른바 마진 콜(Margincall) 상황이다. 매수를 제한하니 매도우위가 될 수밖에 없다. 증권사들은 거래수수료로 돈을 벌었고, 옵션을 판 기관들도 상당한 옵션프리미엄을 챙겼다. 주가 폭등 과정에서 고점에 매수한 개인들만 ‘피’를 본 셈이다.
#국내 증시 5월에 공매도 재개되면?
국내에서도 개별주식 선물·옵션 투자가 가능하다. 다만 대형주로 제한된다. 가장 유력한 공매도 대상인 셀트리온은 시가총액이 47조 원이다. 이번 사태가 있기 전 게임스탑 시가총액이 1조 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다. 외국인 등 기관의 공매도가 이뤄져 주가가 하락해도 개인투자자들이 셀트리온 주가를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 게임스탑보다 훨씬 시가총액이 큰 셀트리온은 선물시장에서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시장은 반짝 상승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미 게임스탑 사태를 본 기관들이 미리 준비할 가능성도 크다. 헤지펀드는 가장 수준이 높은 투자전문가 집단이다. 개인과 달리 기관들은 체계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 옵션 등을 활용해 먼저 주가를 끌어 올린 후 공매도를 실행해 주가를 급락시키면 더 많은 차익을 거둘 수도 있다.
시가총액이 작은 소형주에서는 게임스탑과 일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 파장이 시장 전체에까지 미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장에서 늘 있었던 테마형 작전 수준을 넘기 어렵다는 이유다.
#공매도 재개 후 주가지수 방향
시장의 관심은 공매도 재개가 과연 국내 증시의 상승세에 제동장치 역할을 할지로 쏠리고 있다. 현재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은 15배 미만이다. 금융위기 이전 수준이지만, 늘어난 시장 유동성을 감안할 때 고평가로 단정 짓기 어렵다. 미국 S&P500의 PER이 40배에 육박하고, 주요국 PER도 모두 역사적 고점을 대부분 경신한 점을 감안할 때 오히려 한국 증시는 덜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관건은 1분기 실적이다. 기업들의 실적이 1분기 양호하다면 가격 매력이 부각되면서 공매도 매력이 낮아질 수 있다. 실적이 예상에 못 미친다면 단기 급등에 따른 가격 부담이 부각되면서 공매도가 촉발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국내 개인들의 유동성이 공매도 물량을 얼마나 받아낼지가 관건이다. 낙폭이 제한된다면 공매도로 얻을 실익도 줄어들어 쇼트 커버링이 조기에 나타날 수도 있다. 게임스탑과 같은 ‘난리’가 국내에서 재현될 가능성은 낮지만, 높아진 개인들의 증시 영향력이 시장 변동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보다 더 관심을 끄는 부분은 개인들의 대주 활성화 조치다. 개인들은 기관보다 훨씬 더 투기적이란 점에서 오히려 이들의 공매도가 시장 변동성을 높일 수도 있다. 개인들의 어설픈 공매도는 오히려 기관 등 전문가 집단의 역공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