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올라온 여주교육지원청 홍보영상. 사진=여주교육지원청 유튜브
#‘부산행’ 패러디 하려다…
여주교육지원청이 일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합성 사진으로 교육지원청 홍보 영상을 제작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여주교육지원청은 2월 1일 지원청 유튜브 채널에 ‘선생님! 여주행이신데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구요?! [전입교원 홍보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3월 1일자로 발령을 받는 전입교사들을 환영하기 위해 제작된 홍보 영상으로 영상 소개란에는 “이 영상은 교사의 목숨을 걸고 제작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영상은 영화 ‘부산행’을 패러디한 ‘여주행’ 포스터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신규 교원들이 여주로 발령받아 오게 된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홍보 영상에 ‘전입교원 환영’이라는 본래 목적과는 무관한 노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주행’ 포스터 하단 출연진 명단에서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발견됐다. ‘부산행’ 포스터와 비교해 보니 원래는 배우 김의성 씨의 이름이 있던 자리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김의성 씨의 이름을 빼고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집어넣은 것이다. 또 포스터 왼편에는 노 전 대통령이 달리는 모습이 합성되어 있었다. 정식 포스터에는 비어있던 자리였다. 노 전 대통령 뒤로 달려오는 좀비의 얼굴도 노 전 대통령과 유사하게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문제의 이 홍보 영상에는 ‘전입교원 환영’이라는 본래 목적과는 무관한 노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사진=여주교육지원청 유튜브
여주교육지원청이 ‘여주행’ 포스터의 원본으로 사용한 영화 포스터는 공식 배급한 것이 아니었다. 이 합성 포스터는 2016년 7월 8일 일베에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에는 ‘여주행’이 아닌 ‘부산행’으로 올라왔는데 합성물을 본 일베 이용자들은 “너무 티 난다” “티 나는 게 재밌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즉, 일베에서 만들어진 ‘부산행’ 포스터를 여주교육지원청이 가져다 쓰면서 여주행으로 바꾼 것이다.
포스터에 등장한 건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배우 최우식의 몸에는 전원책 변호사의 얼굴이 합성되어 있었다. 배우 마동석 씨의 손도 변형하여 일베를 인증할 때 쓰는 손가락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식 포스터와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포스터 상단의 글씨도 교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정식 포스터에는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을 의미하는 ‘out of competition’이라는 문구가 상단에 적혀 있는데, 합성 포스터에는 해당 문구를 ‘out of competilbe’로 수정하기도 했다. ‘tion’을 일베를 뜻하는 ‘ilbe’로 바꾼 것이다.
2월 2일 오전 이를 제보한 A 씨는 “다른 기관도 아닌 교육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일베 표식이 다섯 군데나 있었다.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고 그 위에 글씨를 합성해 편집까지 했으면서도 잘못된 점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당시 영상 화면자료를 보면 패러디 포스터는 ‘여주행’이라는 글씨가 강조되어 편집된 샷과 포스터 전체 샷이 총 두 번 등장한다.
영상은 ‘일베 이미지가 들어간 것 같다’는 항의 댓글이 달리고 나서야 비공개 처리됐다. 교육지원청의 해명에 따르면 문제의 영상이 게재되고 삭제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2월 1일 밤 10시 40분 교육지원청 유튜브에 홍보영상을 게재했으며 11시 30분 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 ‘인사발령 사전 안내’ 게시글에 영상 링크를 첨부했다.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난 2일 새벽 3시 유튜브 비공감 개수가 증가하자 담당 장학사는 교육지원청 홈페이지 게시글에 홍보 영상 링크를 삭제했다. 유튜브 영상은 새벽 6시 17분 홍보담당자가 삭제했다. 영상이 공개된 지 7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영상은 교육지원청 장학관, 장학사와 일선 교사 등 3명을 거쳐 제작되었으며 제작기간은 1월 13일부터 29일까지 총 17일이 소요됐다. 영상에 사용된 사진은 무료 저작권 사이트 픽사베이(Pixabay), 구글 등에서 다운로드했는데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고 바로 저장해 문제점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교육지원청의 입장이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2일 “제작자의 단순 실수로 일체의 고의성이 없었다. 문제의 장면이 1초가량으로 짧았고 편집 프로그램의 미리보기 화면이 작아 영상 편집 과정에서 사진을 상세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주는 경기도 동남부에 위치한 비선호지역으로 전입교사들을 환영하고 보람된 교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취지에서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향후 교육지원청 및 학교 직원을 대상으로 SNS 운영 관련 재발방지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니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 빠른 해명에도 여론의 비판은 잠들지 않는 모양새다. 교육지원청이 문제의 사진을 단순히 가져다 쓴 것뿐만 아니라 글씨 합성 등의 편집을 거쳐 영상으로 제작한 까닭이다. 한 전직 편집디자이너는 “포스터에 있던 ’부산행’이라는 글씨를 ‘여주행’으로 바꿨다. 포스터를 보면 ‘여주’의 ‘주‘ 바로 밑에 노무현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를 편집하면서 못 봤을 가능성은 디자이너 입장에서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실수라고 해도 영상이 게재되기까지 최소 세 번의 검토 과정을 거쳤을 텐데 담당자 가운데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소지도
EBS 캐릭터 ‘펭수’를 따라해 만든 인사혁신처의 ‘펑수’. 사진=인사혁신처 유튜브
일각에서는 공공기관이 해당 영화의 저작권을 소유한 영화사를 통하지 않고 구글 등 온라인 검색을 통해 포스터를 구하려다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공공기관이 패러디 콘텐츠를 제작하려다 저작권 문제와 부딪혔다. 인사혁신처의 경우 2019년 12월 ‘2019 공직박람회’를 홍보하기 위해 EBS의 캐릭터 ‘펭수’를 패러디한 ‘펑수’를 만들었다가 저작권 침해 논란에 휩싸여 비판을 받고 “오래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로 패러디는 저작물 내용이나 형식, 제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또한, 이를 무단으로 배포하는 행위인 ‘복제권’, 기존 작품에 각색, 번역, 편곡 등을 적용해 변형시킬 수 있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에도 영향을 끼침으로 원작자나 저작권 소유자의 허락을 받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원저작자의 허락이 없어도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예외도 있다. 주로 교육의 목적이나 공공의 이익이 더 클 경우인데,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르면 보도, 비평, 교육, 연구의 경우 공정한 관행에 합치된다. 이 외에도 재판절차 등에서의 복제(제23조), 정치적 연설 등의 이용(제24조),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제24조의2), 학교교육목적 등에의 이용(제25조), 시사보도를 위한 이용(제26조),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제30조) 등이 해당된다. 이 범위 밖에서 이용하고자 할 때는 그 주체가 정부 또는 공공기관일지라도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받아야 한다.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권단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여주교육지원청 논란에 대해 “법원은 인용의 목적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일 때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루어지는 한 저작권법 제28조에 의해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주교육지원청의 패러디 행위는 ‘인용’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 목적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것이라 보기도 어려우며, 이러한 형태로의 이용이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부산행’ 포스터 저작권자가 권리 행사를 할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 건의 경우 포스터에 대한 복제권, 전송권 침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일베가 만든 합성 포스터 역시 2차적 저작물에 이를 정도의 창작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저작인격권이나 등장인물의 인격권침해 문제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저작재산권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도 패러디로 인해 저작자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인격적인 피해가 패러디라는 표현의 다양성으로 얻어지는 이익보다 크다면 저작인격권 침해가 성립될 수 있으므로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