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White: 45×95cm Acrylic on canvas 2016(세 작품 모두 동일)
모든 색의 바탕이 되는 색이 흰색이다. 흰색은 무채색이지만 그 자체로도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형성하며 회화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흰색은 작품의 모티브 혹은 주제로 회화가 발전하는 데 비중이 큰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상당수의 작가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흰색의 색채적 성질을 작품의 주제로 발전시킨 대표적 작가로는 모리스 위트릴로가 떠오른다. 20세기 초 독창적 풍경화로 파리 뒷골목의 우수어린 정취를 표현해 모딜리아니와 더불어 ‘에콜 드 파리’ 운동을 주도했다.
불우한 출생과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란 위트릴로는 10세 때부터 술을 가까이 했고, 이후 심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청년기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시작한 화업이 그를 미술사에 남는 화가로 만들었다.
다시… White: 72.7×72.7cm Mixed media 2020
위트릴로 하면 흰색의 건물로 이루어진 거리 풍경이 떠오른다. 흰색 덕분에 독보적 화풍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의 회화적 특징이 드러나는 이 시기의 흰색 풍경화는 파리의 랜드마크 그림처럼 여겨질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위트릴로에게 흰색은 정신 치료 때문에 생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병동의 흰색, 의사 가운의 흰색, 소박한 교회의 흰색. 이런 것들은 그에게 ‘속죄와 정화’의 상징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위트릴로에게 흰색은 알코올 중독과 방탕한 생활로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종교적 믿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흰색의 고유적 성격을 은유 없이 직설적으로 풀어낸 이는 러시아 절대주의 추상회화를 완성한 말레비치다. 그는 추상의 역사적 개념(추상화는 내용을 설명하는 그림이 아니라 색채나 선, 면 자체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으로 의미가 없는 미술이다)을 정립하는 데 무채색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흰색이 지닌 순수성이 가장 적절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색 캔버스 자체를 자신이 생각한 추상회화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고 작품으로 발표해 유명해졌다.
다시… White: 72.7×72.7cm Mixed media 2020
흰색 그림 작가로 알려진 남정임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을 끈다. 그의 그림은 흰색의 고유성과 상징성에 두루 접근하는 작업이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정서를 흰색과 도형으로 표현하는 주관적 추상회화다. 그래서 첫눈에는 흰색으로 구성한 무채색 추상회화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의 흰색은 미묘한 색채의 변화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흰색의 의미를 보여준다. 더불어 놓이는 색채 면들이 흰색의 성격을 북돋아주는 셈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공생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