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전 장관은 5년 전인 2016년 8·27 전당대회 때 친문계 옹립으로 민주당 역사상 대구·경북(TK) 출신 첫 여성 당수 자리에 올랐다. 친문계와 전략적 동거에 성공했던 전례에 비춰보면, 당 주류가 ‘다시 추다르크’를 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1월 2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장관 이임식을 마치고 나와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낙연이 지자, 추미애가 뜬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됐다. 핵심은 이낙연 대세론과 추미애 대안론의 ‘시소게임’이다. 추 전 장관 제3후보론과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 하락 시점은 묘하게 맞물렸다. 그간 이낙연 대세론의 지지층 역할을 했던 친문계 일부가 사면론 역풍 이후 추미애 대안론으로 옮겨 탄 것으로 분석된다. 이낙연 대세론에 균열이 가해지면서 추 전 장관도 제3후보론에 올라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 이 대표가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에 사면론을 제기하자, 당 게시판에는 ‘이낙연 아웃·추미애 추대론’ 글로 도배됐다. 친문 성향으로 추정되는 당원들은 당 게시판에 “누구 마음대로 사면을 요청하느냐”라며 이 대표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강성파 당원들은 이 대표를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대표·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 함께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며 탈당을 압박했다.
추미애 대안론은 그 자리를 파고들었다. 친문 성향 당원들은 “추미애를 추대하자”, “추미애는 대선 후보, 박주민은 당 대표”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이때쯤 당 안팎에선 친문계의 3대 후보·4대 후보론 등의 말이 흘러나왔다. 민주당 복수 관계자들은 ‘친문계 제3 후보론에 오를 인사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광재 의원,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그리고 추 전 장관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추 전 장관에 대해선 “강경파 친문계 지지를 받을 가능성 크다”며 차기 대선 도전에 베팅을 거는 인사들이 늘었다. 한 당직자는 “검찰 개혁을 둘러싼 갈등 막바지, 추 전 장관 측이 당 몇몇 인사들에게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시그널을 보냈다는 말이 있었다”면서 “잠재적 경쟁자였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장고 끝에 등판하면서 추 전 장관이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의 제3후보 가능성은 지지도 수치로도 증명됐다. 여론조사기관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를 받아 1월 19일 발표(조사 1월 16~17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여권 제3후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 전 장관은 두 자릿수(12.1%) 지지도를 기록, 정 총리(17.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추 전 장관은 핵심 지지층인 민주당과 호남 지지층에서 정 총리와 격차를 더 좁혔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정 총리(20.8%)와 추 전 장관(19.4%)의 격차는 1.4%포인트(p)였다. 호남에서도 4.5%p(정세균 20.0% vs 추미애 15.5%) 차에 불과했다.
나머지 후보들은 한 자릿수 지지도에 그쳤다.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7.4%를 비롯해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6.4%), 이광재 민주당 의원(2.3%), 이인영 통일부 장관(2.0%) 등이 뒤를 이었다. 원조 친문이 아닌 추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였던 임 전 실장과 원조 친노(친노무현)인 이 의원보다 본선 경쟁력에서 앞선 셈이다. 여권 제3후보 조사는 이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뺀 나머지 후보군을 대상으로 했다. 추 전 장관에게 지지층 일부를 뺏긴 이 대표(39.0%)는 이 조사에서 윤 총장(46.8%)과 일대일 가상대결을 한 결과,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3.1%p) 밖인 7.8%p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추미애 효과가 몰고 온 여파는 컸다. 윤 총장 지지도는 추 전 장관 퇴장 이후 반 토막이 났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이미지 하나로 높은 지지도를 기록했던 윤 총장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의도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의 반사체였던 윤 총장이 혼자 힘으로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발광체 포지션’ 구축에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사이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던 이 대표 대세론도 크게 흔들렸다. 이낙연 한계론과 추미애 효과가 맞물리자, 친문계 단일대오는 사실상 무너졌다. 당 주류는 차기 대선 ‘플랜B’로 정 총리부터 추 전 장관까지 제3 후보 퍼즐 맞추기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020년 7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를 마치고 정세균 국무총리와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 지지층도 분화됐다. 지난해 8·29 전당대회 때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으로 불렸던 이 대표의 연이은 헛발질에 민주당 지지층 다수는 이재명 지사에게 이동했다. 이 지사가 ‘이낙연·윤석열’을 따돌리고 1강 2중 구도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지지층 일부는 정 총리와 추 전 장관에게 옮겨갔다. 이들은 일부 여론조사에서 대선 바람의 바로미터인 ‘지지도 5%’를 돌파하면서 여권 내부 권력구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관전 포인트는 추 전 장관의 파괴력이다. 추 전 장관 강점은 친문 강경파에 대한 소구력이다. 친문계와 전략적 제휴를 꾀한 경험도 마찬가지다. 추 전 장관은 5년 전 전당대회에서 친노·친문계의 압도적 지지로 과반(54.03%) 득표를 획득했다. 민주당 계열 TK 출신 첫 당수인 그는 헌정사상 첫 지역구 5선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1996년 총선 때 서울 광진을에 터를 잡았던 그는 17대(2004년)를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이겼다.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이 127석으로 참패했던 2012년 총선에서도 55.2%의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특히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발탁한 추 전 장관은 호남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자신의 고향인 TK와 더불어 정치적 고향인 호남까지 아우를 유일한 여성 정치인으로 꼽힌다. 친문 강경파와 함께 탄탄한 지역 확보가 추 전 장관의 강점이라는 얘기다. 별칭에서 보듯이 강력한 리더십도 추 전 장관의 무기다. ‘조국보다 더 센 장관’이었던 그가 윤 총장과 장기간 벼랑 끝 대치 전선을 형성한 것도 이 같은 특유의 강단이 한몫했다.
여당 의원실 한 보좌관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것이나, 2009년 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민주당 의원을 (상임위원회에) 못 들어오게 하고 법안을 의결한 것 등이 추미애 리더십의 핵심”이라며 “그 때문에 비주류 길을 걷기도 했지만, 그 강단 때문에 지금껏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 약점은 중도층 포섭 능력이다. 이는 본선 경쟁력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불린다. 야당 한 관계자는 “(추 전 장관은) 강성 이미지에 대한 비토 심리 탓에 비호감도가 높다”며 “중도층을 잡지 못한 후보가 대선 고지에 오르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진보진영 대부였던 DJ도 1997년 대선에서 중원 공략을 위해 박정희 정권 2인자였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와 손을 맞잡았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2년 대선 때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중도층 포섭 전략을 썼다. 야당 중진 의원은 “추미애·윤석열 정국에서 추 전 장관의 내상이 깊어 회복할지 미지수”라며 “사실상 어렵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기회 요인은 있다. 이낙연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제3 후보 공간이 넓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국 변수에 따라 추미애 역할론은 언제든 부상할 수 있다. 최근 거침없이 질주하는 이 지사 지지도마저 빠진다면, 추 전 장관 몸값은 친문계의 제3 후보론 찾기와 맞물려 더 커질 전망이다.
제3후보론 내 경쟁은 추 전 장관의 위협요인이다. 이 경우 추 전 장관은 친문계의 플랜 A가 될 가능성이 큰 정세균 대망론부터 넘어야 한다. 여권 내 전무한 추미애계도 극복해야 할 산이다. 정 총리의 지지 기반인 SK계는 친문계 다음으로 가장 큰 계파인 반면, 추미애계는 사실상 전멸한 상태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추 전 장관은 자기 사람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