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K 신드롬이 연예계를, 아니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무려 15%를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일 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M.net의 <슈퍼스타K 2>는 케이블 채널의 시청률에 대한 세인의 인식을 바꿔 놓았을 정도다.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출연자들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면서 <슈퍼스타K 2>는 정말로 슈퍼스타를 만들어낼 태세다. 그렇지만 가요관계자들은 그들이 진정 스타로 등극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소 선정적인 방송으로 인해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지만 그럴수록 출연자들이 스타가 될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숨 막히는 경쟁이 거듭되고 날카로운 심사평과 점수가 공개되면 이에 따라 탈락과 합격의 희비가 교차한다. 이런 순간순간에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뿐만 아니다. ‘TOP11’(결선 생방송 진출자 11명)에 오른 이들 대부분이 개인적인 아픔을 갖고 있어 시청자들은 그들의 사연에 감정이입해 희비의 순간을 함께 느낀다. 이런 감정이입은 시청자들에게 중독성을 심어 놓으며 시청률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그런데 가요관계자들은 이런 형태가 요즘 연예계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요즘 연예계 트렌드는 ‘엄친’으로 끼와 재능은 물론이고 학벌과 집안까지 갖춘 ‘엄친아’ ‘엄친딸’들이 스타 되기가 쉬워졌다”며 “대중들이 한 편의 인생극장 같은 연예인의 아픈 개인사에 열광하던 것은 90년대 이전 트렌드로, 요즘엔 일부러 그런 개인사는 뜰 때까지는 쉬쉬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왕따를 당해 학교를 자퇴한 장재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을 떠나 아버지가 쌍둥이 형제를 키운 사연을 가진 허각, 외국인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앤드류 넬슨,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김지수까지 출연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슈퍼스타K 2>를 통해 소개됐다.
특히 가정사로 화제를 불러 모은 이는 마지막 심층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한 김보경이다. 심층 면접 과정에서 그의 가정사가 공개된 뒤 포털사이트에는 ‘김보경 가정사’라는 검색어가 뜰 정도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김보경의 입장이 다소 충격적이다. “심사 과정에서 참고 사항으로 집안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당연히 편집될 줄 알았다”는 김보경은 “가족들까지 너무 마음 아파해 재방송에서라도 그 부분을 편집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제작진은 안 된다고 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김보경이 심층면접을 통과하기 위해 스스로 가정사를 심사위원들에게 얘기한 것이므로 이를 편집하지 않은 제작진만 탓할 수도 없다. 좀 잔인한 관점에서 보자면 만약 심층면접을 통과했더라도 심층면접에서 가정사를 언급한 것을 후회했을까 라는 질문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김보경의 얘기는 다르다. 애초 지원서를 작성할 당시 그는 가족사를 묻는 질문에 아무런 내용도 기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를 해야 하는 이유’라는 항목에만 ‘내가 장녀니까 나만 바라보는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서’라고 적었을 뿐이라고 한다.
과연 지원서에 왜 가족사를 묻는 질문이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탈락자들에 의하면 지원서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더 있었다고 한다. <슈퍼스타K 2> 2차 예선 탈락자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은 1, 2차 예선이 실력보다는 사연 위주로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가 바로 지원서다.
<슈퍼스타K 2>는 가수들이 심사위원으로 나선 3차 예선부터 방송을 탔고 앞선 1, 2차 예선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1차 예선의 경우 지원자가 보낸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제작진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심사가 진행됐고 2차 예선은 제작진과의 면접을 통해 이뤄졌다. 지원서는 바로 2차 예선 과정에서 작성됐다. 2차 예선 탈락자들은 지원서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을 비롯해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경험, 심지어 죽을 고비가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 2차 예선 탈락자는 “이런 질문에 조금이라도 독한 답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3차 예선은 1인당 100초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동안 노래와 면접이 모두 이뤄진다. 뭔가 강한 임팩트가 없으면 탈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3차 예선은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에로 배우, 역술인 등 노래 실력과 무관하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다수 방송을 탔다.
또한 가족 가운데 유명인사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까지 있어 신철의 조카, 카라의 멤버 니콜의 사촌, 남규리 동생 등 스타패밀리들의 예심 과정이 방송을 탈 수 있었다. 이들의 탈락은 <슈퍼스타K 2> ‘인맥보다 실력 위주’라는 호칭을 선사하며 시청률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슈퍼스타K 2> 방송이 시작된 뒤 첫 번째 이슈 메이커가 된 인물은 3차 예선에 출전했다 탈락한 박우식 씨(28)다. 그는 동성애자로 <슈퍼스타K 2>를 통해 커밍아웃을 했다. 박 씨는 <일요신문>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박스기사 참조).
박 씨는 “<슈퍼스타K 2>는 실력보다 선정성 위주로 합격자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슈퍼워크에서 탈락한 김보경 역시 같은 얘길 들려줬다.
박 씨는 “탈락한 줄 알았는데 3차 예선에 합격한 뒤 제작진에게 내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에 3차 예선에 진출한 것인지, 아니면 노래 실력 때문인지 여러 번 물었지만 그들은 내 노래 실력 때문이라고 답했다”면서 “나중에 방송을 통해 다른 3차 예선 참가자들을 보니 난 노래 실력이 아닌 커밍아웃이라는 선정성 때문에 3차 예선에 진출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방송이 나간 뒤 “못생기고 노래도 못하는 애가 왜 <슈퍼스타K 2>에 나가 동성애자 망신을 시키냐”며 주위 동성애자들의 원성을 사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박 씨의 커밍아웃은 상당한 화제를 뿌리며 시청률이 저조하던 <슈퍼스타K 2> 방영 초기 확실한 홍보효과를 가져왔다.
왜 지원서에 노래와 무관한 개인사를 묻는 질문이 대거 포함된 것일까. M.net 홍보팀 관계자는 “지원서에 그런 다양한 질문들이 있는 이유는 그런 사항들이 노래를 부르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모든 참가자의 인생사를 전부 파악할 수 없어 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을 지원서에 쓰도록 한 것이니 노래와 무관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방송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개인적인 가정사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M.net 관계자는 “폴 포츠가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켰고 그의 노래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 역시 그가 살아온 풀 스토리가 알려졌기 때문”이라며 “부끄러워할 만한 과거가 아니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공중파 출연 힘들어질라’
M.net의 <슈퍼스타K 2>는 미국의 <아메리칸아이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심사위원이다. <아메리칸아이돌>의 경우 유명 프로듀서들이 심사위원을 맡아 선발된 이들을 직접 스타로 키워주는 데 반해 <슈퍼스타K 2>는 이승철 윤종신 엄정화 등 시청자들과 친숙한 인기 가수들이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박진영의 중도하차다. 그의 하차는 <슈퍼스타K> 시즌 1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중도 하차한 양현석과 비슷한 모양새다. 박진영과 양현석은 가요계 메이저 기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는 인기 가수 겸 유명 프로듀서다. 인기 가수 심사위원만으론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심사위원들이 연이어 중도 하차한 것.
M.net 홍보팀 관계자는 박진영의 하차와 관련해서 “원더걸스와 함께 미국에서 공연이 있어 부득이하게 빠진 것으로 스케줄을 조율해 다시 심사위원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예 전문 프로듀서나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 등을 심사위원으로 기용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M.net 홍보팀 관계자는 “공중파와의 관계 등을 놓고 볼 때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전문 프로듀서나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 등의 경우 M.net은 물론 공중파 방송사와도 두루 친분을 유지해야 하는 터라 출연이 쉽지 않다는 것.
이런 방송사 사이의 알력다툼은 <슈퍼스타K 2> 배출 가수들의 스타 등극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슈퍼스타K 2>를 제작하는 M.net 계열사 가운데에는 과거 이효리 등이 소속돼 있던 연예인 매니지먼트 담당 회사도 있다. 가요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M.net이 <슈퍼스타K 2> 배출 가수들을 직접 키운다면 그들의 스타 등극이 수월해질 수 있다. 이렇게 M.net이 배출한 가수의 스타 등극을 끝까지 책임지면 현재의 선정성 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M.net 관계자는 “불가능한 일”이라 못 박는다. “<슈퍼스타K 2>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공중파 출연이 쉽지 않은데 전속계약까지 맺으면 더욱 힘들 것”이라는 게 이유다.
실제 <슈퍼스타K> 1편에서 1등을 한 서인국의 경우 지난 5월 미니앨범 타이틀곡 ‘사랑해U’로 M.net의 가 요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 등에서 1위까지 올랐지만 공중파 음악방송에 선 그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이 <슈퍼스타K>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견제 차원에서 M.net 발굴 스타 서인국을 출연시키지 않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커밍아웃 박우식 씨 단독 인터뷰
“방송 이후 자살 생각도…”
도대체 연예인도 아닌 그가 방송에서 커밍아웃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월 30일 밤 기자와 만난 박 씨는 “나처럼 못생긴 사람도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것, 게이는 여성처럼 곱상하게 생겼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또한 노래를 좋아해 가수가 되고 싶은 한동성애자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슈퍼스타K 2>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평소 동성애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 관련 단체에서 일을 해왔다는 그는 조금이나마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소박한 인권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가족들조차 방송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됐다는 부분은 이해가 쉽지 않다. “가족들 중에는 남동생만 알고 있었다”는 박 씨는 “가족들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직접 말하기 어려워 어머니께 전화해 방송을 보시라고만 얘기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방송 이후 그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커밍아웃에 놀란 것은 어머니뿐 아니라 그의 일가친척, 그리고 지인들 전부다. 이로 인해 추석 연휴에 고향에도 가지 못했다고. 게다가 네티즌들의 극성도 그를 힘겹게 했다. 그의 미니홈피에 엄청난 네티즌이 찾아 들었는데 일부 네티즌은 그의 과거까지 캐내서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도 박 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목. 박 씨는 자신 때문에 곤란해진 지인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그는 바로 <슈퍼스타K 2> 방송 당시 그를 응원하러 온 한 지인으로 시청자들이 그를 박 씨의 연인으로 오인해 동성애자가 아닌 그가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 2> 2차 예선 탈락자 카페에서 알게 된 형님으로 실제로 만난 건 3차 예선이 있던 날이 처음”이라는 박 씨는 “인터넷에서 알게 돼 나를 응원하러 왔다가 응원 메시지를 담은 인터뷰를 해준 고마운 분인데 방송이 나간 뒤 그분이 괜한 오해를 받아 지금은 연락도 끊겼다”고 말한다. 박 씨는 제작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 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조차 모르던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고 인터뷰를 부탁한 것이 바로 제작진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방송이 나간 뒤 그가 마치 박 씨의 연인인 양 비춰졌던 것이 다. 이에 박 씨는 제작진한테 지인의 인터뷰를 재방송에서 편집해줄 것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자막으로 나간 최소한 이름이라도 빼달라고 부탁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박 씨에 따르면 제작진은 재방송일지라도 한 번 방송에 나간 뒤에는 편집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개인사를 얘기한 심층 면접 장면을 재방송에서 편집해 달라고 부탁했다 거절당한 김보경과 같은 상황이다. 연예인 요구로 재방송이 편집되는 경우가 흔한 방송계 관행으로 볼 때 이해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특히 그들에겐 사적인 영역이 침해당하는 인권 문제와도 연관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