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들이 5일 경찰청 공식 사과 입장에 거세게 반발했다. 사진=고석희 기자
“경찰청 공식 사과 입장을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모르겠네요.”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장동익 씨는 이날 오전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최인철 씨 역시 “정말 (피해) 당사자를 향한 사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며 “경찰청에 직접 항의 전화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경찰청은 과거 ‘낙동강변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장동익·최인철 씨에게 가혹행위로 누명을 씌운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럽다”며 사과 입장을 밝혔다. 장 씨와 최 씨는 이 사건으로 21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지난 4일 재심에서 31년여 만에 무죄를 받았다. 선고 하루 만에 경찰은 입장문을 통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징동익 씨와 최인철 씨는 경찰청이 당사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 씨와 최 씨에 따르면 자신들은 물론 가족 누구도 이번 경찰청 공식입장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한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직접 사과는커녕 전화 연락도 한 번 없이 기자들 앞에서만 사과하는 건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입장 발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동익 씨는 “2020년 1월 재심 개시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금이라도 경찰이 먼저 손을 내밀면 모든 걸 내려놓고 용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거 가해 경찰은 물론 지금의 경찰은 1년이 지나도록 모른 체했다”며 “선고가 나오니 등떠밀려 입장을 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최인철 씨는 “과거 우리가 억울하니 재조사를 요구했을 때 (그들은) 외면했는데, 공식 사과 입장을 내면서도 역시 외면했다“며 ”추후에 대면사과 등을 한다 하더라도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또 경찰의 이번 공식 입장에는 과거 다른 사건의 사과문에서 쓰인 표현들이 빈축을 사고 있다. 경찰청은 이번 공식 사과 입장에서 헌법 10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언급하면서 ”준엄한 헌법적 명령으로 경찰관의 당연한 책무“라며 “이번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수사 단계별 인권보호 장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에서 누명을 쓰고 복역했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 윤성여 씨에 대한 입장문에 담긴 내용과 같다. 4년여 전, 역시 재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온 삼례3인조, 약촌오거리 사건의 사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이들 사과문의 또 하나 공통점은 경찰청장 등의 피해자 대면사과, 당시 수사 관여자 특진 취소 등 구체적인 후속 조치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이다. 이들 사건의 사과문에는 모두 형식적인 문구는 담되 정작 꼭 담아야 할 내용은 다 빼놓았다는 것이다.
박준영 변호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와 가족, 심지어 변호인조차 사전에 연락을 받은 적 없다”며 “이번 공식 입장에 담긴 깊은 위로와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과 제대로 하고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며 “사과 전에 피해자들과 가족에게 위로의 전화 한 통만 했어도 이런 식으로 피해자 측이 반응하지 않는다. 국가기관의 보여주기식 사과는 피해 당사자들의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배려 등 놓친 부분들이 있었다”며 “관계부서와 신속하게 논의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