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8)의 비밀 궁전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푸틴의 정적이자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44)다. 지난 1월 19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은 흑해 연안에 뇌물로 지은 호화로운 비밀 궁전을 소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이 호화로운 저택이 궁전을 넘어 하나의 왕국과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가 영상에서 폭로한 것은 비단 호화 궁전뿐만이 아니다. 푸틴이 내연녀와 그 딸에게 비자금으로 생활비를 대주고 있다고도 폭로했다. 하지만 푸틴 측은 나발니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인 겔렌지크 인근에 위치한 거대한 리조트. 총 68만㎡ 부지에 세워졌으며, 건축 면적은 1만 7000㎡에 달한다. 사진=나발니 홈페이지
“나의 목표는 푸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외쳐온 나발니는 지난 수년간 러시아 권력층의 부정부패 혐의를 폭로해온 반부패 운동가다. ‘반부패재단’을 이끌고 있는 나발니의 폭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것은 지난 1월 19일이었다. 이 영상은 지난해 나발니가 독일에 머물고 있을 당시 녹화됐으며, 당시 나발니는 독극물의 일종인 ‘노비촉’에 중독됐다가 회복하고 있던 중이었다.
‘노비촉’은 구소련 시대에 사용됐던 신경작용제로, 서구 언론들은 이 독극물이 사용된 점으로 보아 러시아 정부가 나발니 암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월 17일 러시아로 돌아왔던 나발니는 귀국과 동시에 당국에 의해 체포됐으며, 현재 모스크바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2014년 사기 혐의로 집행유예 3년 6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2차 재판을 받게 될 나발니는 만일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수사관들은 나발니가 해외 휴가를 포함한 개인적인 용도로 3억 5600만 루블(약 52억 원)가량의 재단 기부금을 남용했다고 주장하면서 대규모 사기 혐의로 수사를 개시한 상태다. 만일 이 혐의가 인정될 경우 나발니는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호화궁전’ 의혹 제기에 대해 “편집된 영상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사진=AP/연합뉴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여기에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믿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나발니는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권력층에게는 눈엣가시와 다를 바 없었다. 러시아 고위관리들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데 주력해왔던 나발니는 특히 푸틴 대통령을 저격하는 데 집중해 왔었다. 이번에 공개한 폭로 영상 역시 이런 의도이긴 마찬가지였다.
‘푸틴의 궁전’이라는 제목의 113분짜리 이 영상에서 나발니는 흑해 연안에 위치한 거대한 리조트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왜 이 리조트가 푸틴 소유인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올라온 지 24시간 만에 2000만 회 이상 조회되면서 화제가 됐던 이 영상에는 궁전의 평면도와 함께 항공사진, 건설비용 등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밖에도 건설업체로부터 넘겨받은 평면도를 바탕으로 재현한 3D 모델도 있었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실내 공간과 인테리어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나발니는 이 궁전에 대해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뇌물로 건설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궁전”이라고 폭로하면서 “이건 단순한 별장, 오두막, 또는 저택이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하나의 거대한 도시, 아니 왕국이다. 그리고 여기엔 단 한 명의 차르(황제)가 산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바로 이 ‘차르’가 다름 아닌 푸틴이라고 주장했다.
‘푸틴궁전’ 속 극장. 사진=나발니 홈페이지
이 궁전이 “러시아 속 하나의 국가와 같다”고 비난한 나발니는 “이 호화로운 궁전은 난공불락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철통보안 시설, 교회, 심지어 국경 검문소까지 갖추고 있다”고도 말했다.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인 겔렌지크 인근에 위치한 이 거대한 리조트는 총 68만㎡ 부지에 세워졌으며, 건축 면적은 1만 7000㎡에 달한다. 이는 모나코의 39배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며, 버킹엄 궁전보다 크고, 베르사유 궁전보다 웅장하다. 더욱이 궁전 주변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개발 프로젝트의 공동작업자였던 세르게이 콜레즈니코프에 따르면, 이 리조트는 처음에는 단독 건물로 계획됐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최종적으로는 총 20개 건물로 지어졌다.
건설비용은 무려 1000억 루블(약 1조 4000억 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나발니는 “건설비용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과 내부 인사들이 제공한 불법 자금으로 조달되었다”고 주장했다. 가령 러시아 석유 대기업인 ‘로스네프트’의 최고 책임자인 이고르 세친과 억만장자 재벌인 겐나디 팀첸코 등 푸틴의 측근들이 자금을 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나발니는 영상에서 “푸틴의 측근들은 러시아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조리 훔칠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고, 이를 대가로 푸틴에게 감사를 표했다. 요컨대 1000억 루블을 모아 푸틴을 위해 궁전을 지었다”고 폭로했다.
‘푸틴궁전’ 속 실내 수영장. 사진=나발니 홈페이지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리조트에는 분수대가 있는 넓은 정원을 비롯해 포도밭, 헬기착륙장, 온실 등이 있으며, 리조트 내부에는 스파, 영화관, 손님용 객실, 침실, 카지노, 라운지, 폴댄스 무대, 체력단련실, 실내 수영장, 터키식 목욕탕, 스파, 마사지실, 미용실, 도서관 등이 있다. 또한 지하에는 교회, 아이스하키 링크, 와인저장고도 마련되어 있으며, 실내에서 직접 해변까지 도달할 수 있는 터널도 뚫려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구를 비롯한 인테리어 장식도 호화롭기 그지없다. 가령 러시아 시내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 가격보다 더 비싼 20만 파운드(약 3억 원)짜리 가죽 소파도 있다. 나발니는 이에 대해 “푸틴은 열렬한 소파 애호가다. 이 궁전에는 모두 47개의 소파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 눈길을 끄는 인테리어 소품 가운데 하나는 숨겨진 빌트인 바가 장식돼 있는 테이블이다. 이 테이블의 가격은 최소 4만 파운드(약 6000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리조트 주변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비가 삼엄하다. 영국의 ‘가디언’은 푸틴 소유로 추정되는 이 고급 리조트의 상공이 현재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조사 결과, 이 구역의 상공은 러시아연방정보국(FSB)에 의해 지난해 여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 FSB는 유럽 국가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스파이들로부터 러시아 흑해 연안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푸틴궁전’ 속 독서실. 사진=나발니 홈페이지
금지구역은 상공뿐만이 아니다. 리조트 주변의 영해도 통제구역으로 설정되어 있긴 마찬가지다. 흑해 연안을 지나는 선박들은 리조트에서 약 1.6km 이상 거리를 둔 채 운항해야 하며, 인근에서 조업을 희망하는 어부들은 반드시 대통령 경호실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리조트가 푸틴 소유라는 의혹은 사실 10년 전부터 불거져 왔었다. 2011년 로시야 은행 간부 출신인 세르게이 콜레스니코프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로시야 은행의 대주주인 푸틴의 측근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흑해 연안 리조트단지 건설에 투자를 집중했고, 이곳을 사실상 ‘푸틴 궁전’으로 조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또한 “로시야 은행이 지난 10여 년에 걸쳐 급성장한 배경에는 푸틴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 푸틴 측은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 리조트는 푸틴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나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영상 전부는 보지 못했고, 보좌관들이 가져온 선별 영상만 훑어봤다”고 말하면서 “이 영상에서 내 소유라고 주장한 재산 가운데 나와 내 가까운 친척들이 소유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런 의혹은 이미 10년 전부터 불거졌었다. 이 영상은 그저 편집된 합성 영상일 뿐이다”라고 비난했다.
‘푸틴의 비밀 궁전’ 의혹을 제기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현재 러시아에서는 나발니의 구속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논란이 거세지자 푸틴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69)도 거들고 나섰다. 푸틴의 유도 스파링 파트너이자 오래된 친구이며, 현재 러시아 최대 가스 파이프라인 및 전력 공급선 건설 회사인 SGM 그룹의 공동 회장이기도 한 로텐베르크는 “이 리조트는 내 소유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조만간 이 리조트를 러시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16개의 스위트룸이 있는 아파트로 개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텐베르크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 리조트는 훌륭하게 지어졌다. 앞으로는 이곳을 아파트식 호텔로 운영할 예정인데, 이 건물에 방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평론가는 로텐베르크의 진술에 대해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건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라고 비꼬았는가 하면, 또 다른 평론가는 “이번 궁전 스캔들에서 푸틴에게 쏠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로텐베르크가 몸을 던졌다”고 평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나발니의 구속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상태다. 단순히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폭넓은 의미에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푸틴 정부에 대한 반발심이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적 자유가 점차 줄고,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상황에서 경제적 고통까지 더해지자 푸틴 정부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컨대 나발니의 구속은 방아쇠였을 뿐 과연 앞으로 반정부 시위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그리고 얼마나 더 확산될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막대한 부 거머쥔 푸틴의 내연녀와 그 딸 나발니가 푸틴을 겨냥해 폭로한 의혹들 중에는 전 내연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17세의 딸에 대한 것도 있다. 푸틴의 딸로 추정되는 엘리자베타(17)라는 이름의 소녀가 그 장본인이다. 푸틴의 딸로 추정되는 엘리자베타. 사진=SNS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크리보노기크는 2003년 푸틴의 딸을 낳았고, 얼마 후 결국 헤어졌다.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그가 갑자기 돈방석에 앉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800만 파운드(약 120억 원) 상당의 로시야 은행 주식을 소유하면서 대주주가 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청소부로 일했던 평범한 여대생이 어떻게 갑자기 그런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됐는지 의아해했다. 이에 대해 나발니는 “여기 답이 있다. 1990년대 말에 푸틴을 만났던 크리보노기크는 2003년 푸틴의 딸 엘리자베타를 낳았다. 그 후 푸틴의 재벌 친구들을 통해 여러 채의 고급 아파트를 받았으며, 로시야 은행의 지분 3%를 포함한 많은 재산을 보유한 부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내연녀로 흘러 들어간 이런 자금에 국가 재원도 포함되어 있다는 데 있었다. 푸틴이 내연녀를 후원하기 위해 국가 기금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난한 나발니는 17세의 사생아를 포함해 내연녀 가족들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불법적인 목적으로 마련된) 비자금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푸틴의 오랜 내연녀이자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나 카바예바도 포함돼 있다. 나발니는 카바예바에게 흘러 들어가는 비자금에 비하면 크리보노기크의 경우는 소박하다고 주장했다. 가령 카바예바는 현재 푸틴의 측근인 유리 코발추크가 소유하고 있는 ‘내셔널미디어그룹’의 회장직을 꿰차고 러시아의 주요 신문과 TV 방송국을 장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나발니는 “카바예바는 공과 리본으로 점프를 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 최고지만, 푸틴과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방송국과 신문사를 관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비꼬았다. 현재 카바예바의 공식적인 급여는 월 780만 파운드(약 11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발니는 폭로 영상에서 푸틴의 이런 바람기를 조롱하면서 “일부다처제의 삶은 즐겁기도 하지만 골칫거리도 함께 불러올 것”이라며 경고했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