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부동산 시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모두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19년 강력한 규제 정책이었던 12·16 대책에 이어 2020년 2·20, 6·17, 7·10, 8·4, 11·19 등 연이어 주택 관련 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장 불안정은 계속됐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8.3%를 기록했으며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10.6%로 가장 큰 폭으로 오르면서 집값 상승세를 주도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주간매매가격 변동률 사진=KB국민은행
서울의 경우 2019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주택매매가격 상승폭이 추가 규제 및 공급 정책 등으로 지난해 상반기 다소 둔화되는 듯했으나 연말로 다가갈수록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강북의 주택매매가격 상승률은 11.1%로 강남 10.3%보다 더 높았다. 전세가는 임대차법 시행 이후 높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연간 10.2%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비수도권도 하반기 이후 대부분 상승세로 돌아섰다. 행정수도 이전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세종시와 대전시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2016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 상승률이었던 울산 집값마저 지난해에는 7.5% 상승했다.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매매전세비)은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서울의 경우 최근까지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매매전세비가 50% 초반대까지 내려간 반면, 기타 지방의 경우 70% 중반대를 넘어서는 모습이 나왔다는 통계가 나왔다. 매매전세비가 높을수록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줄어 투자자의 필요 자본이 적어지는데 이것이 갭투자를 유인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즉, 수도권뿐만 아니라 비수도권에서도 투자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는 위험신호가 나온 셈이다.
2016년 이후 큰 변동 폭 없이 안정세를 보이던 전세시장마저 임대차법 시행 이후 상승폭이 크게 확대됐다. 2019년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한 후 대폭 상승했다. 전세가격은 올해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한주 새 0.11% 올랐고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수도권(0.23%)과 지방(0.25%) 모두에서 상승폭이 확대되며 전주 대비 0.2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는 ‘귀하신 몸’이 된 반면 주택매매거래량은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매매거래량은 127만 9305건으로 2019년 한 해 동안 거래된 주택 매매량에 비해 58.9%나 많았다. 이는 2015년 119만 3691건이 거래된 이후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수치다. 주택 시장이 과열되면서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주택 거래가 활발해진 까닭이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꾸준히 상승했다. 사진=한국부동산원
2030 세대는 새로운 주택 구매계층으로 부상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에는 50대, 하반기에는 40대가 부동산시장의 주요 고객이었다면 2020년 상반기에는 50대, 하반기에는 30대가 적극적인 구매계층으로 떠올랐다. 특히 전체적으로 주택거래매매량이 하락세를 보였던 2020년 8월에도 30대의 거래량 비중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향후 주택 공급에 대한 불안과 가격 상승 우려가 매수심리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세난은 계속되는 반면 집값은 계속 오르니 지금 집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규제정책으로 공급물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불안감 역시 이들의 매수심리를 부추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정부가 시장에 풀었다는 물량은 많았으나 이를 체감하기는 힘든 한 해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주택공급량은 2005~2007년 36.3만 호, 2008~2012년 35.7만 호, 2013~2016년 45만 호, 2017~2020년 54.6만 호로 증가했지만 주택 건설 인허가 승인 실적은 2015년에 76.5만 호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20년 10월 인허가 실적은 32.6만 호로 2019년보다 7.8%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공급이 부족의 위기를 느낄 수 있는 셈이다.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런 이유로 25번째 대책 성공 여부의 핵심은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를 얼마나 진정시킬 수 있는가’였다. 정부도 4일 ‘역대급 공급’ 방안을 담은 이른바 2·4 대책을 발표하면서 그동안의 규제의 정책 기조를 ‘공급을 통한 안정’으로 선회했다. 정부는 2025년까지 공공 재개발·재건축, 역세권 개발 사업, 신규 택지 조성 등으로 대도시에 약 83만 호의 주택 공급부지를 확보하기로 했다. 핵심은 ‘공공 주도’다. 공공이 주도하는 개발에 참여할 경우 주민 동의 요건 완화, 초과이익환수제도면제, 실거주 2년 면제 등의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이를 두고 정부가 비로소 지난 대책들의 부족함과 현재 주택시장의 문제점을 인정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다만 대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갈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3년 전 9·21 대책에서 수도권 3기 신도시 30만 호 계획을 발표한 이후 최대 규모의 공급 정책”이라며 “물론 한강변 재건축 사업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소규모 혹은 기존 정비사업장들의 경우 사업성 개선에 일부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많은 대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공공 주도 사업이 얼마나 걸릴지, 역대급 공급 물량은 언제, 어디에 쏟아지는지가 빠졌다는 것이다. 2·4 대책 발표 이후 주요 부동산 카페에서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강남 지역의 한 재건축 조합원은 5일 “정부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민간 재건축을 포기하고 공공 주도 재건축을 선택할 만큼의 ‘득’을 주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개발의 경우 토지주들의 원만한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통상 재개발이 10년씩 걸리는 이유가 토지주 간 합의가 되지 않아서인데 공공이 주도한다고 갑자기 이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건설업계는 신속한 주택 공급을 위해선 민간 참여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16개 건설단체로 이뤄진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건단련)는 4일 공동입장문을 내고 “이번 대책의 성패는 민간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며 국토부를 중심으로 주택시장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 구성과 실무 TF 운영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